딸기네 책방

신대철, '그냥 돌이라고 말하려다'

딸기21 2003. 6. 18. 11:27
728x90

(바람구두님 홈에 올렸던 글입니다)


그냥 돌이라고 말하려다

신대철


"산책 좀 합시다"
고비 노인이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다,

사막에서 무슨 산책을? 사막에도 갈등이? 하고 말하려다 나는 흔쾌히 따라나선다, 걸어서 한시간 삼십분, 낮을 대로 낮아진 구릉들 흐르다 문득 사라진 곳에 검푸른 바위들 반들거린다.

"운석입니다, 별똥별이지요,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길 산책하고 나면 살아가는 일이 신비롭습니다,
여기선  무엇이든지 들립니다"

무엇을 들었지요? 하고 물으려다 구릉 사이 분지형 바위들을 가리키며 성소 같군요 했다, 내 얕은 탐석체험에 의하면 이 바위들은 경도 5도쯤 되는 변성암이고, 그의 신비체험에 의하면 생의 비의가 서린 바위 이상의 장소이리라, 그는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혼자 얼마나 많은 말을 주고 받았을 것인가, 수없이 자책하고 포기하고 용서받고 화해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푸른 하늘 아래에서 눈물 흘리고 마음 가벼워졌으리, 그가 성소를 거니는 동안 나는 바위 밑 염분선을 따라 태백으로 철암으로 떠돌다 구문소 부근에서 산비탈에 박힌 삼엽충과 암몬조개를 돌아보았다, 우주적인 시간, 서로 마주칠 때마다 푸른 기운이 돌았다,



망명지에 글 안 올린다고 구박하는거 아닌가 싶어, 뭐라도 올려야지 하고 기껏 생각해낸 겁니다. 신대철의 시를 구두님이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사실은 저도 신대철이라는 시인에 대해서 잘은 모른답니다. 다만 제겐, 혼자 간직한 추억이란 것이 있답니다.
어린 시절 연립주택 바로 위층에 신대철 시인 부부가 사셨습니다. 그집 딸이 제 동생(말 안 해도 누군지 아시겠죠)과 동갑이었는데, 이름이 '다흰'이었어요. 신다흰, 이름 이쁘죠?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이룬'이라 지었더군요. 
수도사같은 인상을 한 그집 아저씨, 신대철 시인에 대해서 국민학생인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1년만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가끔씩 엄마와 "그 교수네 집" "다흰이네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적은 있습니다. 우연히도, 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는데 다흰이네 엄마를 만나셨다는 겁니다. 알고보니 바로 우리 학교 국어선생님이셨어요. 그 선생님이 수업시간 박두진 시인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 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선생님께서 선물로 신대철 시인의 시집을 주셨습니다. 어쩌면 시골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꼼꼼히 읽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회사 들어와서, 신문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신대철 시인이 몇년 전에야 두 번째 시집을 냈다는 것을.
그러니 제가 받았던 것은, 그 분의 첫 시집이었습니다. 신문기사 내용으로는, 지적이고 고뇌 많았던 시인이 17년이었나 아무튼 오랜만에 침묵에서 벗어나 새 시집을 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수도사같던 윗집 아저씨가 70년대에 고민 많은 한 시대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주적인 시간, 서로 마주칠 때마다 푸른 기운이 돌았다'는 저 시의 마지막 구절에, 가물가물 아련하게 시인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