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 (2003)
매트 리들리 (지은이) | 김한영 (옮긴이) | 이인식 | 김영사 | 2004-09-13
재미와 유익함, 모든 면에서 매트 리들리의 저술은 과학서적으로서는 단연 A급이다. 리들리의 책에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재미있다. 생물학 유전공학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연관분야까지 모두 포함해, 다종다양한 연구 사례들을 들어 가며 주제를 펼치기 때문에, '일반인을 위한 과학개론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까지 항상 업데잇 되어 있다는 점은 리들리식 과학 저널리즘이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둘째, 개론서의 역할은 '소개'에 있다. 그러나 리들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논지가 명확하다는 것은 리들리 책의 또다른 특징이다. 민감한 주제를 피해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게놈연구 등을 필두로 한 인간 유전체 연구도 포함되고, 이 책에서 다루는 것같은 '유전과 본성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것은 리들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유전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분위기에서 서구 사회가 점차 벗어나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리들리는 저널리스틱한 글쓰기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과학과 저널리즘 양쪽에 발을 걸친 그의 경력을 볼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과학책 쓰는 사람 중에 그만큼 눈길 가게 글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놈'과 '이타적 유전자'로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도 글쓰는 재주를 아낌없이 펼쳐보인다. 다윈 이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매듭들을 만들었던 12명의 학자들을 동원, 본성 대 양육의 100년 논쟁사를 소개하는데 간간이 언급되는 과학자들의 '비사'(?)도 재미있고, 치열한 연구과정도 재미있다.
저자는 첨예하다면 첨예했던 이 논쟁을 설명하면서, '유전정보의 전달 단위'라는 유전자의 정의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유전자는 '환경(양육)으로부터 오는 자극들을 받아들여 상호작용하기 위한 우리 몸의 스위치'라는 것이다. 본성과 양육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 양립한다는 것, 어느 한쪽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 리들리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미 저자의 전작들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리들리가 이런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들리의 주장, 즉 본성과 양육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둘 다 필수적이며 대립하는 요소들이 아니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별로 새로운 얘기가 아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얘기다. 우선, 아이가 있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본성 즉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과 환경(교육)에서 만들어지는 부분이 공존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내 주변의 두 엄마(누구일까요)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딸을 둔 한 엄마는, 아이가 너무 '공주스럽게'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아서 사내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칼을 사주었다. 결과는? 이 엄마의 딸은, 사내아이들처럼 칼을 들고 결투를 하는 인형 곁의 '소품'으로 칼을 갖고 노는데 그쳤다. 반면 아들을 둔 엄마는 인형을 사주었는데, 아들은 인형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역할을 시키더란다.
70년대의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나 환경주의자들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아이들이 제각각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이 타고난 체질처럼 저마다 독특한 성격과 재능을 타고 난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자기 아이에게 교육이나 환경이 전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본성과 양육 모두 아이들에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리들리의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부모라면 누구나 알만한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들리의 주장은 또한 새롭다. 새롭게 드러나는 유전자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설명해줌으로써, 위에서 말한 '뻔한 결론'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개인에게 발현되는지 단면들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약지와 검지의 길이가 비슷한 반면 남자들은 약지의 길이가 더 길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본성과 양육의 양립'이 실은 최근에 와서야 인정받게 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본성과 양육은 함께 간다--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고? '엄마아빠는 다 안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도한 양육론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는 20세기 중후반 내내 나치즘과 전체주의로 대변되는 '과도한 결정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의 역할'을 큰소리로 말하는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서구의 콤플렉스에서 나온 환경결정론이었다면, 요즘 우리 주변의 환경결정론은 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아이에게 이만큼 주입하면 이만큼 산출할 수 있다, 그러니 두배로 주입하면 두 배로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식의 환경결정론. 이 질병의 이름은 '교육열'이고, 증상은 조기교육 영재교육 학원뺑뺑이돌리기로 나타난다.
물론 이 책은 교육이론서는 아니다. 한국의 부모들에게 '아이 잘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출판된 책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자폐증 아이를 '무심한 엄마' 탓으로 돌릴 수 없듯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입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교육으로 내 아이를 이러저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부모들에게 리들리의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양육은 뜻밖의 깨달음을 준다. 한 인간의 성격을 멋지게 조각하고 감독하겠다고 달려들지만 결국에는 무기력한 방관자 겸 운전사로 전락한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삶을 분리시킨다. 학습은 이 환경에서 저 환경으로 짊어지고 갈 수 있는 배낭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의 특수성에 좌우된다... 따라서 부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식의 영구적 특성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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