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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딸기21 2004. 11.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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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리처드 파인만 (지은이) | 박병철 (옮긴이) | 승산 | 2001-08-09




파인만의 물리학 책들 중에 어려운 것(other six...)과 쉬운 것(six...)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더랬는데, 이 책은 특히 '쉬운 것'에 속한다고 강조라도 하듯 '일반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제목에 떡하니 박혀있는 QED. 하기사, 제목에 '양자전기역학'이라고 표기를 해놓으면, 웬만한 '일반인'은 이 책을 멀~리 피해가기 십상일 터이니. 미국에서 출판됐을 당시 원제목은 'QED by Richard P. Feynman'인데 국내 번역본에는 '일반인을 위한'이라는 구절이 붙었다. 양자전기역학의 중간 교주 정도로 봐도 될 파인만, 무려 이 이론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던 파인만 스스로가 양자전기역학을 '끔찍한 이름'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니, 출판사의 고충도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좋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파인만 특유의 '뼈대 플러스 농담'으로 구성된 설명. 파인만이 1984년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묶은 사람은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을 썼던 바로 그 사람(고등학교 물리선생님)이고, 국내 번역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 무식한 독자를 감동시킨 그 사람이었다.

저자/편자/역자가 삼박자를 맞추고 있지만 역시나 주역은 저자 겸 강연자인 파인만이 아닐 수 없다. 파인만의 말솜씨는 참 대단하다. 어째서 '뼈대 플러스 농담'이냐면, 곁가지 다 잘라내고 핵심만 얘기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슬렁슬렁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책의 뼈대는 물론 '양자전기역학(QED)'이다. 양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확률로밖에 묘사할 수 없다는 점, 그 확률은 화살표(이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개념)의 곱셈과 덧셈으로 결정된다는 점, 이 화살표를 돌리고 잡아당기고 줄이면 우주만물의 신비에 다가가게 된다는 점. 이것이 파인만 강연의 요지다. 파인만의 말을 빌면 책의 재료가 된 강연의 주된 목적은 '빛과 물질의 이상한 세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빛과 전자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었다고.

이 강연이 쉽냐고? 그건 물론 아니다. '일반인을 위한'이라고는 했지만, 일반인들은 전문분야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 원래 좀 졸게 되어 있다. 파인만이기에 이 정도라도 설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역시나 쉽지는 않다. 원래 이 분야가 어려운 분야이니깐, 하면서 읽는 수밖에 없다.

왜 어려운가? 보이는 세계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눈에 양자 세계는 너무나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인만은 '양자 세계가 이상하다는 점을 받아들여라!' 라고 말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쳐다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심리적 거부감은 없앨 수 있다. 강연은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책은 첫째날-둘째날-세째날-네째날의 강연을 나눠 정리해놨다. 첫째날 강연은 맛뵈기, 둘째날 강연은 신기하고 놀라운 발상의 전환, 세째날은 조금 어려워지고, 네째날 강연은 입자들이 많이 나와 좀 어려웠다.

뼈대는 그렇다 치고,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건질수 있는 플러스 알파, 즉 '농담'은 뭐냐. 노학자가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재미나게 들을 수 있는 농반 진반의 통찰력이다. 

양자전기역학은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때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자연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험치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연 자체가 터무니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좋을 것이다. (34쪽) 

훌륭한 이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들 하는데, 이 점에서 보더라도 양자전기역학이론은 훌륭한 이론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171쪽)

저런 농담을 던지면서 강연하는 물리학자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쉽게 썼는지는 모르지만 쉬운 주제는 전혀 아닙니다. 양자전기역학은 젊은 시절 파인만의 주 연구 업적이고, 20세기 초반 양자역학의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도구인 파인만 도형이 추후 입자물리학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인만 자신은 이게 모르던 걸 발견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말했지만, 엄청나게 어렵고 지저분한 것을 아주 알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에 추후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어찌보면 정말로 파인만다운 업적이라고 하겠네요. 
이 강연은 친구 부인이고 시인인가 영문학자인가 엘릭스 모트너의 기념 강연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물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파인만을 만날 때마다 과학에 대해 묻곤 했는데, 이 여자가 '당신의 주업적인 QED가 뭐냐'라고 물어도 도저히 설명해 줄 수가 없어서, 언젠가는 이걸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고, 이 강연은 이 약속의 실현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두어해(?) 전에 죽어서 이 강연을 못 들었다고 합니다. 
QED는 전공 대학원생 수준에서도 벅찬 것인데 그걸 이렇게 일반인한테 강연한다는 것은 사실 파인만만이 할 수 있는 마법입니다. 

위에서 화살표라고 하는 건 그냥 벡터입니다. 
빛이나 소리 같은 파동이 간섭을 일으켜서 맥놀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실 겁니다. 이걸 두 벡터가 방향이 거꾸로 되면 작아지고 방향이 같아지면 커진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이 두 설명 방식을 비교할 때, 앞의 것은 현상을 생생하게 설명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의 것은 추상적이지만 일반화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화살표 두 개를 두고 '이게 두 파도가 섞이는 걸 잘 설명한단 말이야' 하고 말하면 모두들 갸우뚱할 겁니다. 그래서 첫번째 방식으로 이 파도는 이렇게 굽이치고 저 파도는 저렇게 굽이치니까, 이런데서는 파도가 엄청나게 커지고 저런 데서는 파도가 거의 죽어버린다.... 하고 설명하면 좋을 겁니다. 

하지만 파도가 둘이 아니고 셋, 넷....1000개가 섞이면 이렇게 설명하다가는 쓰러집니다. 그때는 두 번째 방식으로, 모든 파도를 각각 벡터(화살표)로 바꾼 다음, 화살표에 화살표를 잇대는 벡터 덧셈으로 한 방에 모든 결과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똑똑하게 파도 속에서 벡터를 건져낸 게 파인만의 업적인가? 그건 아닙니다. 벡터는 수학자들이 훨씬 전에 만들어낸 것이고, 나중에 물리학자들이 써먹은 것입니다. 

한편으로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야 그렇다면 파도의 본질은 벡터가 아닌가... 파도는 현상일 뿐이고 벡터야 말로 본질이다..." 

이렇게 가면 수학적 플라톤주의가 됩니다. 자연의 궁극적인 본질은 수학이다. 피타고라스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지요. 저는 이런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우주 양자 마음>에서 펜로즈는 공개적으로 자기는 수학적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파도에) 둥둥 떠내려가기 끝

거사님 설명은 언제나 재미있어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항상 던져주시니깐요. 이상, 파도에 부딪쳐 철푸덕, 그래도 재밌어하는 딸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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