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믈라디치, 헤이그 구치소로

딸기21 2011. 6. 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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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붙잡힌 보스니아 학살자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뒷얘기들이 나오고 있네요.
 
유고 내전 당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무슬림 남성 및 소년 약 8000명을 무자비하게 죽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죠. 학살이 벌어진 날은 1995년 7월11일. 그런데 학살 몇시간 전에, 당시 세르비아계 군 지도자로 ‘학살 책임자’였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믈라디치가 미소를 띤 채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다독이던 모습은 당시 TV 화면을 통해 방영됐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대학살이 저질러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TV에 방영됐던, 믈라디치에게 초콜릿을 받아먹은 소년이 어제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The memorial cemetery, Potocari, near Srebrenica, where 8,000 were killed in 1995
Bosnian Muslim Izudin Alic touches the name of his father at the memorial cemetery, Potocari, near Srebrenica, where 8,000 were killed in 1995. Photograph: Almir Alic/AP


16년 전 학살자인줄도 모르고 믈라디치에게서 초콜릿을 받아 먹었던 소년은 이제 24살의 청년이 됐는데요. 이름은 이주딘 알리치. 지금도 스레브레니차에서 가까운 프로히치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알리치는 그 때 8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믈라디치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거겠죠. 아이에게 초콜릿을 안기고 머리를 쓰다듬은 뒤 마을 남성들을 끌고가 죽이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학살 당시 알리치는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들과 같이 유엔 소용소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믈라디치가 아이들을 들판으로 불러모아서 초콜릿을 나눠주자 따라갔다고 합니다.

알리치가 초컬릿을 받아먹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믈라디치 부하의 손에 살해됐습니다. 전날 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산 넘어 도망쳤지만 믈라디치 부하들에게 붙잡힌 겁니다. 


가까스로 학살을 피한 알리치의 가족들은 내전이 끝난 뒤 지금 살고 있는 프로히치에 정착했습니다. 알리치는 건설노동을 하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며 살아왔다고. 알리치는 몇년 전 공동묘지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합니다. 알리치는 “믈라디치의 체포 소식을 듣고 기뻤다”면서 “내 아버지와 삼촌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믈라디치는 최고형을 선고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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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슬픈 역사- BBC


학살자 믈라디치는 어제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송환됐습니다. 믈라디치가 헤이그로 가지 않으려고 세르비아 특별법정의 송환결정에 맞서 항소를 했다가 기각됐고요. 그래서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항공편으로 헤이그에 보내졌습니다. 변호인에 따르면, 세르비아를 떠나 헤이그로 가기 직전에 믈라디치가 아내와 누이를 만나 눈물을 보였다고 하고요. 또 감옥에서 잠시 나와서 자살한 자기 딸의 묘지를 찾기도 했답니다. 

믈라디치의 딸은 아버지가 내전 기간 저지른 범죄에 충격을 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믈라디치 쪽에선 반대로 무슬림 적들이 자기 딸을 죽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수많은 이들을 학살한 주범이면서도, 딸의 무덤 앞에서는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네요.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로 이송된 믈라디치는 곧바로 유엔 구금시설로 보내졌고요. 건강검진을 받은 뒤 재판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믈라디치가 들어가 있게된 유엔 수감시설은 헤이그 근교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셰베닝겐 구치소입니다. 옛 유고연방 전범들은 ICTY라는 재판소에서 별도의 재판을 받지만,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반인도범죄자들은 대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죠. ICC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들도 셰베닝겐 구치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믈라디치 말고도 다들 희대의 학살자들입니다. 1990년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때 입에 담기도 끔찍한 학살범죄를 저질렀던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도 이곳에 수감돼 있습니다. 찰스 테일러는 예전에는 시에라리온 전범재판소에 수감돼 있었는데요. 제가 2006년 그 수감시설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운영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경비 부담이 있어서 헤이그로 옮겨졌습니다. 

믈라디치와 함께 보스니아 학살을 주도한 라도반 카라지치도 이 구치소에 있고요. 이 구치소 감방에서는 TV도 보고 책도 보고 컴퓨터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학살의 피해자들은 지금도 악몽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반면, 오히려 학살자들은 신세가 편하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Bosnian Serbs gather in Pale near Sarajevo to support Mladic 

앞으로 남은 재판 절차가 또 얼마나 긴지... 

우선 전범재판소 쪽에서 재판을 맡을 판사를 지명하게 되고요. 그러면 믈라디치는 곧바로 법정에 출두해야 합니다. 믈라디치는 1992년부터 95년 사이에 일어난 보스니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군사령관으로서 스레브레니차 무슬림 주민 8000여명을 학살한 혐의로 95년 기소됐죠. 사전심리에서 믈라디치가 혐의를 인정하면 바로 판사가 선고공판 기일을 잡습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면, 사전심리 재판관이 배정돼 협의 절차에 들어갑니다. 기소내용이 일부 수정될 수도 있고요. 그러면 다시 기소내용을 확정해서 재판이 이뤄지게 됩니다.

전범재판소 측은 2014년까지 믈라디치 재판을 끝낸다는 계획이지만, 예정대로 된다 해도 앞으로 3년이네요. 보스니아 내전 3대 학살자 중 한명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전범재판 도중 죽어서 심판을 받지 않았고, 2008년 체포된 라도반 카라지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은 아직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막대한 재판비용만 잡아먹고 있고...

마지막으로 붙잡혀 이송된 것이 믈라디치인데, 이번에도 재판이 길어질 것으로 보여서 전범재판에 대한 비판론이 계속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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