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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 이제 좀 나가지...

딸기21 2011. 6. 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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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말로 궁지에 몰렸네요.


12~13일 이탈리아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안건은 3개 분야 4건. 그 중 핵심은 원전 건설을 재개할 것인가였습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원전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57% 투표율에 94%가 반대표를 찍었습니다. 야당은 “이번 투표 결과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시민들과 이반돼 있다는 걸 보여준 심각한 신호”라면서 총리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Berlusconi‘s nuclear power plans crushed /가디언

Vittorio Cogliati Dezza, president of the environmental organisation Legambiente, said: "The era of nuclear [energy] is coming to an end today. Definitively. A new season of development for the country is beginning."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집권 국민자유당은 “국민들이 구체적인 안건에 투표한 것일 뿐 정부에 대해 찬반투표를 한 게 아니다”라면서 총리를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뜻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핵정책을 추진하려던 베를루스코니는 아주 곤혹스런 처지가 됐습니다.

People celebrate following results in Italian referendums on water and nuclear power in Rome
People celebrate following results in Italian referendums on water and nuclear power in Rome. /AP



베를루스코니 측도 국민투표 결과는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실시되고 있는 투표결과에 따라 이탈리아는 원전과 이별해야 할 것”이라며 미리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사실 베를루스코니가 너무 무리하게 핵발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원전 사태 이듬해인 1987년 국민투표를 통해서 원전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2014년부터 신형 원자로 건설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원전 재추진의 불을 붙인 것이죠. 하지만 올들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원전 반대 여론이 90%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결과가 불보듯 뻔했는데 국민투표까지 간 것도 사실 좀 우습죠. (한국에서도 국민들 다수가 반대하는 삽질을 굳이 하겠다는 정권이 있습니다만) 

여론을 무시하고 베를루스코니가 원전 재개를 추진하자 정치권에서 국민투표 요구가 일었습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원전 신설을 당장은 하지 않겠다는 식의 제스처를 쓰며 국민투표를 피하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국민투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소송까지 가게 됐습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국민투표를 하라고 판결을 했고 그래서 예정대로 실시됐습니다. 국민들의 뜻대로 된 거죠. 이탈리아에서는 주요 정책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교황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을 허용한 1974년 법안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됐고요. 또 1981년 낙태를 합법화할 때도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하지만 1995년 이후로는 국민투표 투표율이 낮아서 계속 무효가 됐는데 이번에 모처럼 유효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지지자들에게 투표 ‘불참’을 촉구하는 등 막판까지 투표율 낮추기에 안간힘을 썼는데 그런데도 투표율이 과반을 넘겼다는 건, 국민들의 불만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겠죠. 

원전 재개와 관련된 안건 외에도 수도 민영화 계획 2건, 그리고 총리 등 내각 관료 등에 대한 면책법을 존폐시킬 것인지가 국민투표에 부쳐졌습니다. 베를루스코니가 내놓은 수도 민영화 방안은 95%의 반대로 부결됐습니다.

Analysis: Berlusconi‘s 17 years of dominance draw to a close /로이터

Massive defeat in four referendums on nuclear energy, water privatization and trial immunity for ministers last weekend were the biggest blow in an annus horribilis for the prime minister that many analysts say signals the start of a new era.

"He will not come back up. We cannot say how long the descent will take but certainly it will be fairly rapid," Professor Gianfranco Pasquino of Bologna university told Reuters. 




A new poll shows Mr Berlusconi's personal approval rating at 29 per cent. /Reuters




마지막 안건인 면책법은 사실은 말도 안 되는 법안입니다. 2008년 7월에 이탈리아 상원이 통과시켰던 법안인데요. 대통령, 총리, 상·하원 의장 등 4명의 최고위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재임기간 최대 18개월 동안 검찰 소추를 받지 않도록 하는 초강력 면책 특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오로지 베를루스코니를 위한 면책법안입니다.


베를루스코니는 2006년에 부패 관련 스캔들에 휘말렸고, 재판의 증언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조작하는 대가로 1997년 변호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가 드러나 기소됐습니다. 그래서 계속 소송에 쫓기게 되자 자기가 면책법안을 고안해내서 여당이 주도하는 상원에서 통과시켰던 겁니다. 이번에 이 법을 계속 둘 것인지를 놓고 표결했는데 국민들은 역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베를루스코니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를 비롯해 4건의 재판에 계류돼 있습니다. 총리를 위한 ‘방탄법안’이라고 불렸던 면책법안이 없어지게 되면 베를루스코니는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는 거죠. 

Berlusconi support hits record low: poll /로이터

The survey by the IPR polling institute for the left-leaning La Repubblica daily showed Mr Berlusconi‘s personal approval rating at 29 per cent in June, down from 31 per cent in April and 40 per cent at the start of 2011. 


국민투표가 끝나고, 베를루스코니 지지율은 최저치인 29%를 기록했습니다. 응답자의 60%는 베를루스코니에게 "had little or no confidence" 라고 했네요. 지난달 30일 밀라노 등 북부 주요 도시 시장 선거 결선투표가 치러졌는데 집권 우파를 제치고 중도좌파 후보들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런 차에 섹스스캔들 재판까지 겹쳐 있고 국민투표에서는 참패를 당했으니, 제아무리 질긴 베를루스코니 총리라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앞날이 의심스런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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