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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쇼 출연자 자살... 계속되는 불행

딸기21 2011. 8. 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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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얼리티 쇼 출연자가 자살을 했네요.

발단은 이랬습니다. 미국 케이블TV 채널인 '브라보TV'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베벌리 힐스의 주부들(Real Housewives of Beverly Hills)’에 나왔던 출연자 부부가 최근 이혼 소송에 들어갔습니다. 테일러 암스트롱이라는 출연여성이 남편으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이혼 소송을 낸 겁니다.

그러자 올해 47세인 남편 러셀 암스트롱이 지난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숨지기 전 남편은 리얼리티쇼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공격감이 돼왔고, 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숨진 남편의 변호사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리얼리티쇼에 폭로된 사생활, 그로 인한 타블로이드 언론들의 공격, 부인의 이혼 요구에 따른 정신적 충격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죠. 그러니 리얼리티쇼 때문에 죽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림 ecofield.com.ar]



문제의 프로그램은 ‘상위 1% 미세스 베버리 힐즈’라는 거였는데, 그 안에서 숨진 러셀은 아내를 학대하는 사람으로 묘사됐습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다고는 해도 일종의 캐릭터를 잡는달까... 뭐 그러잖아요. 하필이면 러셀은 아내를 박대하고 못살게구는 사람으로 캐릭터화된 모양입니다. 실제로 아내가 남편의 학대를 들어 소송을 냈고 여러 인터뷰에서 남편과 별거하게 되어 이제야 평화가 왔다고 말했는데, 그 후 소송에서 자기를 방어하느라 러셀이 수백만달러를 쓰는 상황이 됐답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어느 부부의 이혼소송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겠지만, 그게 알려진 데에는 분명 리얼리티쇼라는 프로그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요. 미국 언론들은 리얼리티 쇼의 부작용에 대해 다시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리얼리티 쇼 출연자가 숨진 경우는 한두번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리얼리티쇼 자살 닷컴'이라는 웹사이트가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 들어가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리스트와 사연이 쫙 올라와 있던데요. 모두 실화이니 리얼리티라면 리얼리티인데, 리얼리티라는 이름을 내건 '쇼'가 만들어낸 엽기적인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자살기도는 더욱 많고요. ’틴맘(Teen Mom)‘, ’슈퍼내니(The Supernanny)‘,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Idol)‘, ’러브 서바이벌(Paradise Hotel)‘ 등 미국에서 인기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거의 대부분 출연자의 자살 시도, 폭력 등의 스캔들에 휘말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심한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자의 자살기도 장면이 방영된 적도 있었습니다. 2004년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3'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해서 유명해진 가수가 있습니다. 판타지아 바리노라는 여가수인데요. 열아홉살에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우승해 각광받았는데 가수로 데뷔해 내놓은 앨범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더군다나 유부남과의 섹스비디오가 유출돼 가정파괴범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실패한 연예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판타지아가 택한 것은 자기 자살기도 사건을 상품화하는 거였습니다. “Fantasia for Real”이라는 리얼리티쇼를 만들어서, 자기 자살기도 당시의 후송 모습 등을 공개해버린 겁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과연 정상적인지는... 참 뭐라 말하기 힘듭니다.

진행자의 독설 때문에 숨진 것으로 보이는 케이스가 지난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독설가로 유명한 고든 램지라는 주방장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죠.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Kitchen Nightmares)’이라는 건데, 거기 출연했던 사람이 지난해 자살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고든 램지가 그 전인 2007년에 진행했던 ‘헬스 키친(Hell’s Kitchen)’의 출연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진행자는 독설가로 유명한 사람이고,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이름만 봐도 지옥의 부엌, 부엌의 악몽, 이런 식이었습니다. 독설 자체를 캐릭터화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봐야죠.

출연자들 스스로가 원해서 출연했다고는 하지만, 그 뒤 고든 램지는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7년 자살한 출연자의 경우는 진행자 램지에게서 너무나 잔인할 정도의 혹독한 지적을 받은 다음에 목숨을 끊었거든요. ‘욕쟁이 주방장’으로 유명한 램지는 다혈질 성격에 무자비한 독설로 인기를 얻었는데, 그의 프로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다 램지처럼 유명 요리사가 되고 싶어하는 요리사들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은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기싸움과 갈등을 보면서 자극을 얻는다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져버린 겁니다.

더 엽기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캐나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인 백만장자가 미국 TV 백만장자 리얼리티쇼에 출연해서 만난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모델 출신의 아내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하게 살해됐고 시신도 유기됐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인 남편을 수배하고 추적했습니다(숨진 모델 출신 아내의 유방 성형 수술에 사용된 보형물의 일련번호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남편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해서 세간의 가십으로 취급되기도 했죠).

결국 남편도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습니다. 백만장자와의 결혼이라는 리얼리티쇼는 이런 비극으로 끝난 겁니다. 2009년의 일입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극적인 리얼리티쇼들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올초 인도에서는 남자배우, 여자배우들이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서로의 외모를 가지고 비하하고 폭언을 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 있습니다.

2007년에는 인도 영화계 이른바 발리웃의 특급 스타였던 여배우 쉴파 셰티(31)가 영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셀러브리티 빅 브러더 시즌5’에 출연했는데, 영국인 출연자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모멸을 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됐습니다. 유일한 동양계 출연자였던 셰티를 영국 출연자들이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비하발언을 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전달되면서 영국과 인도 간 외교문제가 됐고, 인도 정부가 나서서 항의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가 인종주의에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영국 경찰이 백인출연자들 발언을 수사하는 상황까지 갔었죠.

리얼리티쇼라는 특성상 돌발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걸 여과없이 보여주되 특히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그 쇼가 갖는 상업성의 핵심인 거고요. 그러다보니 인종차별 발언이든 사람 마음을 후벼파는 독설이든 다 내보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리얼리티쇼 출연자를 찾아주는 한 에이전시의 전 직원은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심지어 출연자들의 돌발행동 같은 눈길 끄는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프로그램 제작사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들은 대개는 대중 앞에 공개된 생활을 해왔거나 유명세에 익숙해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상 밖의 파장에 부딪쳤을 때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상상 못할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개인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일들까지 프로그램에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 TV는 TV일 뿐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출연료가 거의 없는 일반인들을 끌어들여 제작비를 낮추면서 자극적인 내용을 이끌어내어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들이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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