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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티아 센, '불평등의 재검토'

딸기21 2007. 4. 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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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재검토
아마티아 센 (지은이) | 이상호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센이라는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길 몇차례, 결국 촌스런 편집에 목에 걸리는 번역의 책 두 권을 사버렸다. 하나는 제일 유명하다는 이 책 <불평등의 재검토>이고, 또다른 하나는 <윤리학과 경제학>이다.


 

불평등의 재검토- 제목에서부터 뭔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팍팍 난다. 예상대로 어려웠다. 개념이 특별히 난해해서가 아니라 잘 모르는 존 롤즈의 정의론 얘기를 계속 풀어내고 있어 어려웠다. 

그리고 예상대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평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평등인지가 중요하다. 돈을 똑같이 가졌으면 평등이냐? 기회를 똑같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기회만 같으면 평등이냐? 세상에 유리 천장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출세하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걸로 평등 끝인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를 비롯하여 내 것 내던지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핍박받으며 싸울 자유도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평등과 복지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간다. 평등/불평등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사회제도와 국가정책의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기회 균등이 곧 평등이다’ 라면서 자기네들이 평등사회에 산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그 사회의 뒷골목엔 마약중독자 거지가 넘쳐난다. 어떤 자들은 남녀평등이 지나쳐 남자들이 기를 못편다고 주장하는데 그 나라에서 남녀가 받는 월급 격차는 직장에 오래 다닐수록 커진다. 

저자는 평등 문제에 아주 실질적, 실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센에 따르면 

 
“평등주의의 핵심 쟁점 중 몇 가지는 정확히 공간에 따라 평등이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나타난다. 평등의 윤리학은 공간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폭넓은 다양성에 대해 적절하게 주목해야 한다. 중심변수의 다원성은 정확히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61쪽) 
 

그러니까, 인간들이 이렇게 제각각이니 거기서 평등을 논하려면 무엇에서의 평등인지, 그게 진짜 평등인지 짝퉁인지 요모조모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하듯 소득불평등만 가지고 평등 문제를 다루면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왜냐,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소수민족 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은 생사가 걸린 문제이고, 평등에도 너무나도 다양한 차원(저자의 표현으로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기초재와 자원을 마음대로 쓸수 있는지, 그걸 써서 얼마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 자기가 할수 있는/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와 능력 같은 것들을 따져보면서 평등을 하나의 잣대로 전환해버리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왜 평등/불평등을 재검토하느냐?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과정은 빈곤에 대한 것이다. 빈곤도 평등과 마찬가지로, 숫자놀음에 당하기 쉬운 항목 중 하나다. 대개는 파이가 커지면 파이 쪼가리도 커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센의 고향인 인도(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내놓은 이 나라 경제는 승승장구한다는데 여전히 지참금 적다고 살해당하는 여성이 연간 수천 수만명이란다)가 대표적인 예다. 

센은 빈곤의 실체를 따질 때에도 소득 하나만 놓고 말하지 말고 능력 실패/기능실패 같은 것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 특히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끊임없이 재발하는 성차별 전통과 관련되는 경우 때문에 소득을 특정 기능으로 전환시키는데 불리함을 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단지 소득 크기에만 주목한다면 결핍 수준을 과소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분명히 능력실패라는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202쪽) 
 


여자들이 기업체에서 최고경영자가 못 된다, 이런 류의 유리천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도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영양보충도 못한 채 물 긷다 쓰러져 죽고 딸아이들이 젖도 못 먹어 굶어죽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소득크기에만 관심이 있다면, 부유한 사회에서 굶주림이 지속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 굶주림은 수많은 파라미터와 연결되는데, 그 중에서 저소득은 단지 하나의 파라미터일 뿐이다. 건강은 사회환경, 의료혜택, 가족생활유형, 기타 수많은 요인들과 관련된다. 따라서 소득에 기반을 둔 빈곤분석은 중도에서 이야기를 그치는 셈이다.”(204쪽) 
 
 

마찬가지로 계급을 중심으로 한 맑스 식의 분석만으로는 한 계급 내 여러 집단(예를 들면 여성들)의 현실이 더 열악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한다. 

 
“상품과 소득에서 기능과 능력으로 관심 방향을 돌린다면 상대적인 특성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차이는 사회적 교육적 그리고 병리학적 조건의 차이와 상당부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223쪽). 
 

평등도 빈곤도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고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서 센 같은 ‘후생경제학’은 상대적으로 밀리는 처지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장의 손에 무엇이든 맡기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것에 엄밀한 분석틀을 들이대고 경제학의 영역으로 집어넣어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센의 공로였다. 숫자 놀음으로 전락해버린 경제학이 인간의 아픔을 바라보게끔 하자는 것이 센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복지를 말하는 모든 이들은 센의 분석틀 없이는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걸 보면 경제학이 주판알 놀이에 그치지 말고 인간 세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움직임이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몫을 찾아낸 사람이 센이라는 것, 그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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