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카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저/정혜용 역 | 생각의나무 | 원서 : Ecologica
프랑스 사람들의 책은 내 취향이 아니야, 하다가도 이렇게 반짝반짝하는 책을 만나면 ‘이게 그들의 힘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스위스 로잔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렉스프레스>를 거쳐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창간하고 유럽 신좌파 이론가로 활동하며 68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는데, 그 명성대로다.
더 이상 이익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금융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돈을 먹는 헛구르기만 계속하는, 궁지에 몰린 자본주의. 파괴와 낭비만 남은 자본주의의 탈출구는 ‘정치적 생태주의’라고 고르는 말한다.
굳이 ‘과학적 생태주의’과 ‘정치적 생태주의’를 구분해서 후자에 방점을 찍고는 있는데, 거창하게 부를 것 없이 전자는 기술발전으로 생태파괴를 막아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예 통째로 세상의 체제를 바꿔 생태주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니 전자보다는 후자로 가야 자본주의라는 체제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에 ‘에콜로지’를 덧붙였다.
이반 일리히에게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자동차 문화와 도시생활의 확대에 대한 부분(자동차 때문에 점점 직장에서 먼 곳에도 살 수 있게 되고 결국 이동 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는)이나 해커의 사회학에 대한 접근(인터넷 초창기에 많이 나타났던 해커 예찬 같은 느낌도 들지만)은 재미있었다.
오늘날 넘쳐나는 ‘비정규직’의 비생산성을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결지어 설명한 것도 눈에 띄었다. 지금 우리는 생존권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고르의 통찰에 따르면 넘쳐나는 비정규직- 서비스직 일자리들은 자본주의의 막장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비생산적인 노동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자리라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의미하는 대로 ‘생산적’인 것은 아닙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다시 말해 자본증식을 낳는 일자리만이 ‘생산적’인 거죠. 특히 미국 경제활동인구의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용역이 그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그 일자리들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며, 창출된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죠. 이들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그들의 고객이 생산적인 노동을 하여 올린 소득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러니 ‘2차 소득’이며, 1차 소득의 일부를 2차적으로 재분배한 것입니다.
... 용역 서비스 업종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활동들을 보수를 받고 제공하는 용역으로 변모시킨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일자리로 변모시킨다고 해서 실제로 노동시간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고 전 사회 차원에서 시간을 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사고파는 서비스들의 비생산적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지요.”
그리하여 생산성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수많은 서비스직, 비정규직, 용역직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워킹푸어’가 되고 만다.
100쪽 조금 넘는, 그나마 글씨도 엄벙덤벙 크고 여백이 운동장만한 책에서조차 프랑스식 글쓰기의 특징인 ‘중구난방 어법’이 마구마구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될 것을 참 어렵게도 한다. 지금은 당연한 듯도 들리는 그 쉽고 흔한 이야기에까지 이르는 생각의 길이 굽이굽이 길고도 험난했기 때문일까. 2차대전에 68혁명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고르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여 년 간 간호하다가 2007년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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