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생리를 했다. 아마도 현대식 일회용 생리대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여성들이 그 뒤처리를 놓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미 고대부터 ‘생리대’라는 것을 언급한 문헌이 있었다고 한다. 4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여성 철학자 겸 수학자인 히파티아 Hypatia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남성을 쫓아버리기 위해 사용한 생리대를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있다.
전통적인 생리대는 쓸모가 없어진 낡은 천을 잘라 접어서 쓰는 것이었다. 요즘도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약품을 꺼리는 이들은 천 생리대를 쓰곤 하는데 그것이 일회용 생리대가 나오기 전에 여성들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에는 넝마나 버리는 천(rag)을 주로 썼기 때문에 지금도 여기에서 유래한 표현이 남아 있다. 영어에서 ‘생리 중(on the rag)’임을 표현하는 말에 그 단어가 들어가 있다.
쓰고 버리는 생리대를 고안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뜻밖에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에게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피뢰침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출혈을 막기 위해 일회용 패드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상업화돼 1888년 ‘사우스올패드 Southall’s pad’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출시됐다. 미국에서는 ‘리스터타월 Lister’s Towels’이라는 게 나왔는데, 제조사는 존슨&존슨이었다. 사우스올패드와 같은 해에 시장에 나왔다. 코텍스도 같은 해에 펄프로 만든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이런 제품들은 값이 비쌌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문제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여성들도 상점에서 생리대를 살 때 ‘터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생리는 감추고 가려야 할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 탓이었다. 그래서 상점에서 상자 안에 조용히 돈을 올려놓으면, 점원들은 ‘생리대를 주세요’라는 뜻으로 알고 상품을 건네주곤 했다. 이런 묘안을 내놓은 사람은 독일 태생의 미국 기업가로서 ‘광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버트 라스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구 절반의 불편함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이런 물건이 언제까지나 쉬쉬 하며 팔리는 상품으로 남아 있을 리 없다. 1956년 메리 케너 Mary Kenner라는 미국 여성이 방수재가 들어 있는 생리대의 특허를 신청했다. 하지만 케너의 특허 신청은 거부당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케너가 흑인이라는 것이었다. 여성의 역사 뒤에 숨겨진 흑인의 역사들은 이렇게 겹겹의 포개진 차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방수재를 넣은 생리대는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생리대는 면같은 천연섬유를 사각형으로 잘라 만든 것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이 쓰던 속옷인 가터벨트에 고정시켜야 했다. 몹시 불편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다가 생리대 뒤편에 접착용 띠를 붙여 속옷에 고정시키게 만드는 혁신이 이뤄졌고, 악명 높던 ‘가터벨트용 생리대’는 사라졌다.
접착띠가 붙은 상품이 나온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그 전의 생리대들은 두께가 2cm에 이르거나 흡수력이 떨어졌다. 생리혈이 새어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여성들이라면 다 아는, 생리대의 ‘날개’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직사각형 생리대의 양옆에 날개를 붙여 속옷을 감싸게 한 것이다. 석유에서 추출한 폴리아크릴 젤로 만든 흡수제를 넣어, 흡수기능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덕택에 두께는 얇아졌고, 여성들의 활동은 훨씬 편해졌다. 겉면 재질도 역시 석유화합물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흡수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폴리에틸렌 필름을 입혀 생리혈이 새어나오지 않게 했다.
이 무렵부터 한국에서도 생리대가 TV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생리대를 사는 것은 터부가 아닌 일이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리대 광고에 ‘생리’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18년에 이르러서였으니,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금기 분위기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이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광고에서는 생리혈을 붉은 색이 아닌 파란 물감으로 표시했으나 2017년 전후로 세계 곳곳에서 빨간 피를 묘사한 광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휩쓴 ‘미투 Me, Too’의 물결과 함께 젠더 의식이 고조된 것과도 맥이 통한다.
1980년대 이후 세계 대부분 지역에 생리대가 퍼졌지만 저개발국의 빈곤층에게는 여전히 생리대는 ‘매달 쓰기에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다. 국제 구호기구 월드비전은 2015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름으로 저개발국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당시 위생용품이 없어 학교에 결석해야 하는 여학생이 세계에 6억 명에 이르렀다.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생리대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다는 통계도 있었다.
인도의 아루나찰람 무루가난탐 Arunachalam Muruganantham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판 중인 생리대의 3분의 1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저가 생리대 생산기계를 만들어 인도 곳곳에 보급한 사람이다. 영국 BBC방송은 ‘인도의 생리대 혁명’이라 불렀고, 2014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무루가난탐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명단에 올렸다.
인도 아대륙 남쪽 끝 타밀나두 주의 코임바토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무루가난탐은 가난 때문에 열 네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식품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다. 1998년 결혼을 한 그는 아내가 못 쓰는 천들은 물론이고 신문지까지 모아 생리대로 쓰는 걸 보고서 기업들이 파는 생리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생리대의 원재료가 되는 면 값은 10루피에 불과한데 기업에서 생리대라는 상품으로 둔갑하면 값이 40배로 뛰었다. 무루가난탐은 스스로 면으로 패드를 만들어 건넸지만 아내와 누이들은 불편하다며 쓰지 않았다. 동물 피를 자기 몸에 바르고 남성임에도 스스로 생리대를 착용해보면서 개선했지만 가족들에게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직접 만든 생리대들을 지역 의과대학의 여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제품을 알리고 고쳐나갔다. 직접 기계를 고안해 만들고 뭄바이의 펄프 사업자에게 재료를 공급받고 인도의 자랑거리인 마드라스의 명문 공과대학 IIT(Indian Institutes of Technology)를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결국 그의 상품은 호응을 얻었으며 사회적 기업가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여러 기업들이 그의 생산 설비에 눈독을 들였지만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풀뿌리 단체들에 기계를 공급하며 저가 생리대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무루가난탐뿐 아니라 뉴델리의 군지 Goonj 라는 단체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들이 저가 생리대를 빈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군지는 2015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안슈 굽타 Anshu Gupta가 1999년 창립한 단체다. 이런 흐름들을 받아들인 인도 정부가 나서서 저가 생리대 보급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생리대 면세 운동이 벌어졌다.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은 생리대에 붙은 부가가치세와 소비세 등을 탐폰세 Tampon tax, 월경세 period tax 등으로 부르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여성들의 생리는 원하지 않는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리대는 여성들의 인권과 관련된 필수품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여성들이 평균 잡아 30년 동안 생리를 한다고 하면 그로 인해 들어가는 생리대 비용은 적지 않은 돈이다. 따라서 필수품이 아닌 소비재에 붙는 세금과는 다른 세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케냐, 캐나다, 인도, 콜롬비아, 호주, 독일, 르완다, 아일랜드 등은 생리대의 세금을 없애거나 줄였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도 비슷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2019년 미국의 그레이스 멩 Grace Meng 하원의원은 ‘모두를 위한 생리의 평등’이라는 법안을 발의했다. 학교, 수감시설, 보호소는 물론이고 모든 연방정부 건물에 연방정부 기금으로 생리대를 비치해 여성들이 무료로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법안은 아직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지만 지방정부들은 한걸음 앞서 나갔다. 뉴욕시는 이미 2016년 공립 중·고교에 무료 탐폰·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몇몇 나라들이나 지방정부들은 이미 이런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영국에서 2019년 생리대가 없어서 월경 때면 학교에 가지 않는 여학생들 문제가 제기됐다.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결석한 학생이 연간 14만 명에 이르렀다. 젊은 여성 4명 중 1명은 돈을 아끼기 위해 휴지나 탈지면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리 빈곤 period poverty’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결국 정부가 나서서 모든 학교에 생리대를 무상 비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어떨까. 영국에서 생리 빈곤 문제가 떠오른 것과 비슷한 시기인 2016년 한국에서도 ‘깔창 생리대’가 이슈가 됐다. 생리대가 없어 신발 깔창을 대용품으로 쓰는 여학생들의 실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여학생들의 아픈 사정이 계기가 돼서 ‘부끄러운 일’,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로만 여겨지던 생리 문제와 ‘생리대’라는 말이 뉴스의 중심이 되고 공론화됐다. 몇몇 기업들은 재빨리 포장을 줄인 ‘반값 생리대’ 등을 내놨다. 서울시는 공공기관에 무료 생리대를 비치하기 시작했고, 여주 시의회 등 몇몇 지방의회들은 무상 생리대 보급 조례를 채택했다.
2017년 한국에서는 한 기업의 생리대를 쓴 여성들이 생리불순 등 부작용을 겪었다고 호소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안전 문제는 관리와 규제로 해결할 수 있지만 생리대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바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생리대는 화학물질로 이뤄져 있다. 안전문제도, 환경문제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생리대 58억 개가 소비됐다. 여성들이 평생 쓰는 생리대가 1인당 1만 개에 이른다는 추정치도 있다. 생리대는 그 자체에 고분자흡수재 같은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접착띠와 포장재 등에도 폴리프로필렌을 비롯해 썩지 않는 성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여성들에게는 해방의 청신호였던 생리대의 성분들이 지구 환경에는 막대한 피해를 미치는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일회용 생리대 보급에 앞장 선 미국과 유럽에서는 환경을 파괴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재사용 가능한 면 생리대로 돌아가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논란 등으로 면 생리대를 쓰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나 여성의 생리 주기와 지구를 화해시킬 편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는 일은 아직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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