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샐리 그린들리, <깨진 유리조각>

딸기21 2016. 6.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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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리 조각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크리켓 공을 잡았을 때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드디어 새 일터에서 첫 삽을 뜬 것이다. 나는 그 유리 조각을 살그머니 자루에 집어넣고 새로워진 힘으로 다시 쓰레기 상자를 뒤졌다.

그러나 머지 않아 샌딥과 나는 깨진 유리 조각을 모으는 일은 아무 보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비카스가 자기 자루에 알루미늄 캔을 차곡차곡 모으는 사이에 우리는 유리 조각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벌써 도로 여러 곳을 뒤졌는데도 우리 둘의 자루에는 유리 조각이 조금밖에 차지 않았다.

"이러니 유리 조각을 모으던 아이가 플라스틱으로 바꾼 건 당연해요. 플라스틱이라면 우리도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등허리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내내 숙이고 있었더니 허리가 쿡쿡 쑤셨다.

"여기는 플라스틱을 모으는 사람이 따로 있어. 요즘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고 무게가 별로 무겁지 않아서 인기가 많지. 그런데 유리 조각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것도 있어. 유리병. 유리병은 사람들이 재사용해서 쓰레기로 나오지도 않고, 쓰레기로 나와도 무게가 엄청나거든."

어느덧 해가 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 있는 골목길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어둠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도시의 뒤편에서 부끄러운 비밀처럼 꼭꼭 감춰진 채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도시 생활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일이었다. 길거리에 쌓여 있는 엄청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이제 샌딥과 나는 그 거대한 재활용 기계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가 없으면 이 도시는 쓰레기 더미에 깔려 질식할 것이다.

- 샐리 그린들리, <깨진 유리조각>(이혜선 옮김. 글항아리)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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