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아옌데의 연설이나 일화 정도만 읽었지, 인물 전체를 다룬 책은 처음이다. 스크랩을 열심히 해두려고 했는데... 중간에 덮어두고 휴가를 다녀오니 책이 없어졌다. 아옌데를 아는 사람(즉 상당한 연식이 있는 사람), 그러나 남의 책을 책상 위에서 과감히 훔쳐갈 용기가 있는 사람의 소행이다. 젠장.
칠레인들은 일종의 섬나라 사람 같은 정서를 갖고 있다. 지리적 고립과 세계적인 사건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감 탓에 칠레인들은 스스로 조금은 촌스럽다고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자국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람에 대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원주민인 아라우칸 마푸체족은 300여 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의 용기와 지적 능력은 스페인 침략자들조차 탄복했을 정도다. 16세기 스페인 시인 알론소 데 에르시야는 칠레 사람들에 대해 “대단히 탁월하고, 자부심이 강하며, 용맹하고, 기상이 넘친다. 단 한 번도 왕에게 지배당한 일이 없고, 외부 세력의 침략에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고 썼다. 칠레는 개척자의 나라였고 전쟁과 무역 등을 거치며 원주민과 스페인계의 결혼으로 새로운 ‘메스티소’ 칠레인이 태어났다.
1818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 급격한 산업화로 몸살을 앓던 유럽 대륙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절대다수는 독일 현신이었지만, 아옌데의 외할아버지 아르센 고센스 같은 벨기에 출신도 있었다. 이민자의 급격한 유입에도, 칠레 인구의 압도적 다수는 여전히 칠레 출신으로 채워졌다. 1907년까지 칠레 인구 기운데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단 4%에 그쳤을 정도다.
(23쪽)
당시 논쟁에 뛰어든 아옌데는 외국의 경험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대학생들이 졸업 뒤 전문직 종사자가 될 텐데, 이들까지 배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 탓에 아옌데는 결국 아반세 Avance(전진)에서 쫓겨났다. 아옌데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그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나는 학생으로서 나중에 전문직 종사자가 됐을 때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었다.”
(53쪽)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95쪽)
체 게바라가 차를 보내왔다. 아옌데는 아바나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18세기에 지은 라카바냐 요새에서 그를 만났다. 책이 빼곡히 들어찬 방 안에서 게바라는 호흡기를 손에 쥔 채 야전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식 발작이 왔던 것이다. 게바라는 이렇게 말했다. “동지, 어서 오세요. 의사시니까 잘 아실 테죠? 잠시만 기다리시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세와 칠레와 쿠바가 처한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아옌데는 라울 카스트로를 만나러 갔다. 머리를 땋아서 묶은 라울은 각료 회의를 주재하고 있던 피델 카스트로에게 아옌데를 데려갔다. 아옌데는 형식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회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피델은 일어선 채 말하고 있었다. “회의장 한쪽에서는 농민들이 바닥에 누워 체스를 두거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에는 기관총을 비롯해 이런저런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아옌데에게 익숙한 의회정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옌데와 카스트로는 이날 긴 시간 토론을 통해 개인적인 친분을 다졌다. 두 사람의 우정은 아옌데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이어진다.
(129쪽)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 생존자들이 칠레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민족해방군을 위시한 칠레 좌파 진영 전체가 그들을 맞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같은 시각 칠레 정부도 최대한 빨리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보안군을 동원하는 둥 혈안이 됐다.
아옌데는 일단 생존 게릴라들이 도착하면 일시적인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칠레령 이스터 섬을 거쳐 프랑스령 타히티로 이동한 뒤, 프랑스 당국의 협조를 얻어 게릴라들이 최종 행선지인 쿠바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모든 여정을 아옌데가 게릴라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칠레 주류 매체는 그야말로 소풍날 초둥학생처럼 흥분했다. 아옌데에게 ‘게릴라 상원의원’이란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정치인 아옌데의 이미지가 통째로 날아갈 판국”이었다28 궁지에 몰릴 때마다 아옌데는 더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해왔다. 이번에는 아예 여러 주류 신문사 편집국장들에게 TV와 라디오로 방송되는 공개토론을 제안했다.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공개토론에서 아옌데는 각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그야말로 박살을 냈다. 먼저 그는 시청자들에게 〈엘 메르쿠리오〉 편집국장이 칠레 나치당 출신이라는 점을 알렸다. 보수 신문 편집국장들은 공개 토론에서 완패했고, 아옌데의 인기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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