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23)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투표일 전날까지도 잔류냐 탈퇴냐를 가르는 유권자들의 표심은 아슬아슬하게 엇갈렸다. 23일(현지시간) 실시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전날부터 내리던 폭우는 그쳤으나, 투표일 날씨는 흐렸다. 런던 2구역에 있는 스위스코티지의 투표소는 오전까지 한산했다. 공휴일이 아닌 까닭에 직장과 학교가 마친 뒤에야 투표소가 붐빌 것이라고 투표소 관계자는 말했다. 투표를 마친 캐럴라인 랜은 “영국은 EU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EU도 완전히 개혁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투표를 하러 왔다”고 했다. 도심 의회광장 부근 투표소에서 만난 스테파니의 생각은 반대였다 그는 “탈퇴할 경우 너무 많은 혼란이 벌어질 것이니 점진적으로 바뀌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브롤터의 382개 선거구에서 시민들이 한 표를 행사했다. 등록된 유권자는 4650만명이었다. 투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한국시간 23일 오후 3시부터 24일 오전 6시)까지 치러졌다. 투표용지에는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잔류(Remain)’와 ‘탈퇴(Leave)’라는 글자가 적혔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영국인들은 마침내 둘 중 하나를 택했다. 공식 출구조사는 없고, 투표 종료 직후에 투표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업체가 조사한 예측결과만 발표된다. 최종 결과를 알게 되는 것은 24일 오전 7시(한국시간 오후 3시) 이후다. 이브닝스탠더드·입소스 모리가 23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잔류가 52%, 탈퇴가 48%였다. 같은 날 오피니엄 조사에서는 탈퇴가 45%로 잔류보다 1%포인트 많았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가 7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발표한 수치는 잔류 48% 대 탈퇴 46%였다.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투표 직전까지도 여론은 극명히 갈렸다. 22일 도심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엿새 전 살해된 조 콕스 하원의원 추모행사가 열렸다. 살아 있었다면 이날은 콕스의 42번째 생일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가수 보노도 참석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경호원 없이 조용히 군중 속에서 애도한 뒤 돌아갔다. 그러나 콕스의 남편이 추모사를 읽는 시간 추모행사장 위에는 ‘탈퇴’와 ‘주권회복’이라고 쓴 대형 배너를 단 항공기 2대가 나타나 상공을 돌았다.
투표일 전날까지 ‘잔류’를 호소하기 위해 분주히 뛰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개표 결과에 따라 명운이 갈린다.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며 공포마케팅을 펼친 ‘탈퇴’ 캠페인 측은 일단 세몰이에 성공했고 유럽회의론을 퍼뜨리는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탈퇴로 결정이 난다면 유럽은 물론 세계의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이고, 유럽의 경제중심이 대륙으로 이동하게 된다. 영국은 EU뿐 아니라 세계 각국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최대 패자는 자충수를 뒀다가 궁지에 몰린 캐머런도, 잔류를 주장해온 야당인 노동당이나 스코틀랜드 정치권도, 런던의 금융가도 아닌 EU 자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는 물론이고, 박빙의 차이로 잔류가 결정되는 경우라 해도 유럽의 분열과 EU 지도부의 무능이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영국의 미래만이 아니라 유럽의 정치지형 전체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가혹한 긴축 요구에 반발했던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서는 탈EU 목소리가 강해질 것이 뻔하다. 반 EU 정서가 강한 네덜란드, 잇단 테러에 극우파들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프랑스, 난민 사태를 겪고 있는 독일과 동유럽국들에서 줄줄이 원심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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