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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편지

딸기21 2018. 1. 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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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편지 The Creation 

에드워드 윌슨.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읽은 책. 마무리를 할 것이 뭐가 있냐 싶지만, 로버트 카플란의 책으로 끝내려니 어쩐지 싫고 무언가 '좋은 책'으로 한 해를 끝내고 싶었다. 


이 책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것이 2007년이다. 그러니 10년 가까이 묵혀둔 셈이다. 윌슨의 'The Future of Life'를 읽고 나서 좀 헷갈렸던 것인지, '생명의 편지'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꺼내어 보게 된 것은 딸 덕분이다. 딸에게 책을 권해주면서 보니 밑줄이 하나도 없는 것이 어째 생소한 느낌.... 다 읽고난 딸이 "너무 좋다"며 내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것도 벌써 몇달 전의 일이었다.


책은 윌슨이 미국 남부의 어느 '목사님'에게 진화와 모든 생명체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고 종 다양성을 지키는 데에 종교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설득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윌슨 특유의 신랄함보다는 생명의 경이에 탄복하며 평생을 살아온 노학자의 마음이 묻어난다. 명료하면서도 따뜻하다.


미화된 사육장 안에 사는 소가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복잡하고 원시적인 세계를 쉽게 드나들 선택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보호하는, 그리고 1000년 전 조상들의 세계를 가른 지평선이 그대로 펼쳐진 대지를 가로질러 거닐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21쪽)


개미학자답게, 책에는 개미 얘기도 적잖이 등장한다. 윌슨의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그 중에 눈에 띄는 글 한 토막. 지난 추석 때 '살인불개미'라는 악명을 뒤집어쓴 붉은 '외래붉은불개미'에 대한 구절이다. 


다행스럽게도 개미 독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은 1퍼센트 미만의 소수입니다. (중략) 붉은유입불개미는 거의 막무가내입니다. 자신의 라틴어 학명대로 삽니다. 학명 인빅타(invicta)는 천하무적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 개체군이 형성되자 멕시코 만 연안 주를 거쳐 퍼져 나가, 온난한 기후에 맞는 생리 조건이 겨울 혹한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북쪽으로도 이동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불개미들이 들어오면서 난리가 났고, 윌슨은 대학 시절에 이 불개미들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늘 관심동물인 사불상 이야기도 나온다 ^^


구조작업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가능합니다. 가장 극적인 예는 뉴질랜드 동쪽 채텀 제도의 검은개똥지빠귀입니다. 1980년대까지 정착자들을 통해 도입된 쥐와 들고양이 때문에 한때 풍부했던 개똥지빠귀가 암수 한 쌍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올드 블루'와 '올드 옐로'는 갇힌 채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길렀습니다. 그것들의 자손은 채텀 제도 내 두 섬의 원래 서식처로 옮겨져 살고 있습니다. 보전 역사상 가장 긴박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 나사로 프로젝트에서는 한때 도도가 서식한 인도양의 섬에만 사는 작은 황갈색 매로서 세계적인 멸종의 상징인 모리셔스황조롱이를 되살려냈습니다. 1974년까지 살충제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에 야생 이주 개체군이 4개체로 감소했습니다. 채텀 제도의 마지막 검은개똥지빠귀처럼 포획된 새들이 번식해 지금은 그 자손들이 모리셔스 계곡의 경계를 이루는 자투리 삼림 지역에서 먹이를 잡으려고 급강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종 가운데 날개 너비가 가장 넓은 새인 캘리포니아콘도르는 포획되어 번식한 후 그랜드캐니언의 야생으로 복귀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불상사슴은 중국 북동부의 습지와 삼림에서는 사냥 때문에 멸종에 이른 후 동물원과 공원에만 서식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제도의 레이전오리는 7개체가 번식해 현재 성체 500마리 수준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중심부에 대규모로 서식한 미국흰두루미는 성체 14마리까지 감소했다가 1937년에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인정되었으나 지금은 200마리가 넘는 개체군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의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새인 상아부리딱따구리는 새로운 나사로 프로젝트 후보입니다. 지역에 따라 종종 어머나새(어떤 사람들이 그 새를 처음 보고 '어머나 저게 뭐람 the Lord God'이라고 말했겠죠)라고 불린 그 새는 1944년에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마지막 개체는 루이지애나주에서 목격되었습니다. 이따금 목격했다는 소문이 자연주의자들 간의 가십거리로 들려왔지만 입증된 예는 없었습니다. 희망이 사그라지면서 상아부리딱따구리는 조류학의 성배가 되어 집요한 사람들만 그 새를 찾아다녔습니다. 2005년 봄에 짜릿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상아부리딱따구리 수컷 한 마리가 아칸소 주 동부의 캐시리버 야생생물보호구역에 서식했다는 것입니다. 


울버린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구즈리'라는 동물인 줄은 몰랐다. 


땅딸막한 체형에 몸길이가 90~120센티미터이고 몸무게는 9~18킬로그램이며, 지구 먹이사슬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극소수 포식동물 중 하나입니다. 구즈리는 쥐에서 사슴까지 모든 것을 잡아먹습니다. 구즈리는 퓨마와 이리 떼를 그것들이 먹던 먹이로부터 쫓아 버릴 수 있고 자기 몸무게의 세 배나 되는 죽은 동물을 끌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보풀같은 두꺼운 검은 털을 지니고 있지만 목사님이 애완동물로 삼고 싶어 할 동물은 아닙니다. 날카로운 이빨과 포식동물 특유의 살 기이 파고드는 갈고리 발톱을 지니고 있고 얼굴은 작은 곰을 닮았습니다. 편평한 발로 지면 가까이 낮은 자세로 걷는데, 가만히 서 있을 때조차 금방 앞으로 달려 나갈 자세로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퍼온 울버린.


울버린(구즈리). _ 위키피디아


펼쳐든 책의 속표지에는 딸이 제 이름과 함께 제가 읽은 날짜를 적어놓았다. 내가 책을 펴들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한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엄마가 읽은 책에 줄을 치려고 보면 엄마가 이미 다 쳐놨잖아요." 그래서 이 책에는 자기가 먼저 읽고 밑줄 치면서 기분이 좋았단다. 속표지에 나도 내 이름과 읽은 날짜를 덧붙여놓았고, 그렇게 이 책은 엄마와 딸이 함께 나눈 글이 되었다.


"과학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대자연에 대한 인식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정신 발달 속에서 통합됩니다. 다른 생물에 대한 우리의 친밀감과 그 관계에서 문화 속으로 유입되는 모든 사랑, 예술, 신화, 파괴에 대한 우리의 친밀감은 본능과 환경 간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그 본능적 부분을 우리는 인간 본성이라고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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