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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원,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딸기21 2019. 11. 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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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경신원. 파람북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1964년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살던 런던 중심지에 중산계층이 진입하여 나타난 주택시장과 사회 계층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다. 직영하자면 '신사 계급화되다'란 의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런던 사람들은 더 나은 거주환경을 찾아 런던 외곽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교외화로 인한 도심공동화가 활발하게 이뤄진 1960년대에, 사회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계층이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지역에 들어가 노후된 건물을 새롭게 복원하고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켰다. 그러자 지역의 임대료가 점차 상승하였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노동자 계층이 밀려나게 되었다. (15-16쪽)

 

영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저자가 서울의 변화를 보면서 이태원을 케이스로 골라 분석한 책. 얇지만 꽤 괜찮다. 첫머리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길고 생소한 영어임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뉴스에 매우 자주 등장했던 단어(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 실정은 역시나 원래의 단어 의미와는 참 다른 듯. "오늘날 젠트리피케이션은 서구사회뿐 아니라 아시아와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서 나타나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시설이 카페나 레스토랑 또는 부티크 같은 상업시설로 건축물의 용도가 바뀌는 주거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부분이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일대에서 시작된 주거지역의 상업화 현상은 2000년대 중반 급속하게 증가해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7쪽) 이 설명이 더 정확하다. 

 

같이 도시공부하는 웹디자이너님들은 폰트를 좋아하던데 내 눈엔 표지 별로임

 

저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문화와 연결짓는다. "미국의 인구조사국에서는 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밀레니얼을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밀레니얼은 2018년 기준 1296만 명으로 총인구 가운데 약 25%를 차지한다." (24쪽)

 

저자의 말을 빌면 밀레니얼은 "강남의 매끈한 건물이 주는 느낌보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주택에서 빈티지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주택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내 스타일'의 사업을 꾸려간다. 이들은 비교적 제한된 경제자본을 소유했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상품을 소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기존의 세대와 구분된다."(30쪽) 밀레니얼이 "1990년대 신인류로 불리던 X세대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자기 취향이 뚜렷"(24쪽)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잠시 딴길로 새자면,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 한 토막. 어쩐지 이 편이 한국의 밀레니얼들에겐 더 적나라한 현실이 아닐까 싶기도. 

 

[오! 평범한 나의 셋방] 친구 초대는 2평, 요리는 3평부터…1평은 잠만 자는 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진단은 유효하다. 한 세대를 통틀어 말하면 늘 모순에 휩싸이게 되는 법이다. 그 안의 다양성을 묵살하게 되니까. 세대/집단 안의 다양성과 분화를 인정하되, 어쨌든 서울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인 것은 분명한 듯.

 

저자는 "이미 오랫동안 존재했던 임대료를 둘러싼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이 다소 생소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학술용어로 설명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0년 홍대입구역 부근의 작은 식당 두리반의 강제 철거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부터였을 것"(31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두리반 사건처럼 '젠틀'하지 못하다. 2016년 국립국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대신하는 순우리말로 '둥지 내몰림'을 제안했다."(32쪽)

 

공급 측면 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닐 스미스로,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 유입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도시 공간의 변화과정 즉 '도시 공간의 재구성화'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 근교화로 나타나는 임대료 격차를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발생원인으로 보았다. 도심공동화는 도심 지가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임대료를 현저히 낮아지게 했다. 도시 근교화로 낮아진 지가와 임대료는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임대료 격차가 충분히 벌어졌을 때 이윤을 창출하려는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물주 그리고 투자자의 관심이 도심의 저평가된 지역에 쏠리게 되고, 상승한 임대료를 지급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새로운 임차인을 위한 재개발 사업이 이뤄진다. 

소비 측면 이론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중산계층인 젠트리파이어의 사회 문화적인 특징과 동인을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인문지리학자인 데이비드 레이는 엄청난 규모의 소비 능력을 지닌 새로운 중산계층의 인구통계학적 그리고 소비패턴의 변화가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33-34쪽)

 

저자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강북에 공방과 갤러리가 생기고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1단계', '유동인구가 급증하고 대형 개발업자들이 진입하는 2단계', '임대료가 올라 영세 상인과 원주민 그리고 낡고 좁은 골목길을 핫플레이스로 변화시킨 예술가들이 쫓겨나는 3단계'로 구분한다. 

 

 

[도전하는 도시]“시장 논리 재개발 안돼” 골목문화 지키는 예술인들

▲ 법인 만들어 시에 협상 제안골목 보존하며 개발하기로임대료 인상 등 여전히 ‘숙제’ 조각을 하는 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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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몇 해 전 연재했던 도시 시리즈를 살포시 링크;;)

 

저자는 성공회대 이기웅 교수의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인용하는데, 이 교수는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을 수요 요인(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대규모 정리해고와 자영업자 증가), 투자요인(2000년대 말 글로벌 경제위기로 서울시 뉴타운 정책이 실패하면서 유휴자본이 구도심 상가 건물로 집중), 문화요인(청년 창업자들의 세련된 취향이 반영된 독특한 상점들), 정책요인(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으로 도심의 관광지화를 촉진)으로 구분했다고. (36쪽)

 

저자가 설명하는 '영국의' 젠트리피케이션과 서울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보헤미안적이고... 집 주변의 어메니티를 꿈꾸는... 따위는 서울과 달라도 사실 너무 다르다. 책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태원을 사례로 '한국식 젠트리피케이션'을 살핀다. 이태원은 외국인이 많은 동네이고, "거대도시로 성장한 서울이 경험한 역동적인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성장 과정과 관련 있는"(47쪽) 곳이다.

 

다만 이곳이 '글로벌 엘리트'와 관련 있는지는... 이태원에서 먹고 노는 사람들 중에는 글로벌 엘리트 혹은 적어도 '글로벌 노마드'들이 많고 또 이국적 취향을 지닌 한국의 '외국 물 먹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여기 사는 사람들, 해방촌 사람들과는 구분해야. '초국가적 사회적 연결망'이나 세계도시로서의 성격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어느 정도나 드러나는지, 어느 정도나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는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을 듯. 오히려 저자가 이어진 부분에서 지적한대로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이 도시가 지난 50년 동안 경험한 압축된 양적 성장과 200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세계화와 탈산업화와 관련이 있다"(51쪽).

 

한마디로 압축성장 시대에 건물을 무지막지하게 지었는데 일자리 줄고 성장이 정체되면서 자영업이 늘고 도시변화로 이어진 얘기라는 뜻. 이런 설명을 하면서 학문적 근거와 이론의 흐름을 소개하는 건 좋은데 제발 부르디외 얘기는 그만들 했으면... ㅠㅠ 강북의 개발을 "신흥 프티부르주아지의 욕망"으로 설명하는 건 좋지만, 결국 모두 강남 땅이 너무 비싸서 그런 거 아닌가. 

 

이제 본격적으로 이태원 이야기. 미군부대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 용산구 이태원 1.2동과 한남동, 서빙고동, 이촌1동은 거주 외국인 수가 600명 이상인 동네라고. 이렇게 보자면 대림동과 비교분석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책도 그 지점을 지적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가 용산구에서 영등포와 구로구로 바뀌었지만 가장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은 용산구"(62쪽)다. 역설적이지만 미군이 있어서 외국인들이 많아졌는데, 미군이 상당수 빠지고 '다른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이태원은 다양성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곳이 됐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들도 유입됐다.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11) 한국에서 아프리카인으로 산다는 것

‘아프리카 거리’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 지난 3월 이곳의 한 아프리카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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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는 아주 오래전에 이태원 아프리카 골목 취재하고 썼던 글 ㅋㅋ)

 

2001년 한국을 떠났다가 2016년 돌아와서 이태원을 방문한 저자는 달라진 풍경에 꽤나 놀랐던 것 같다. 하긴, 이태원 근방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도 놀랄 판인데. 그런데 책에 나온 '우사단로, 회나무길, 경리단길' 같은 곳들을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난 꼰대니까... 2030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태원 일대가 길지 않은 기간에 많이 분화됐다는 점은 누구나 느낄 듯. 미군들에게서 시작된 전통의 이태원 유흥가와 그 골목들 사이사이에 형성된 다국적 거리(이슬람 골목, 아프리카 골목, 아시아 골목 등등 주로 cuisine의 종류로 구분되는), 경리단길로 대표되는 빈티지한 카페 어쩌구저쩌구들이 있는 지역, 그리고 부티나는 한남동 쪽. 몇년 전 '꼼데가르송'을 잘 모른 채로 가게에 들어갔다가 ㅅㅂ 뭐 이렇게 비싸, 하면서 나왔는데 조선비즈에서 '꼼데가르송길 효과'라는 기사를 썼다는 것은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았다. 2017년 기준으로 이태원역이 지하철 6호선 전체 구간 가운데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이라는 것도.

 

책이 얇다는 점, 글씨도 매우 크다는 점, 더불어 여백도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알찬 편이다. 이태원의 공시지가 상승세와 주민등록인구 즉 내국인수 변화, 외국음식점과 의류점 증가 등을 수치와 그래픽으로 소개(79~84쪽)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2005~2015년 서울 전체 1.6배 상승한 것에 비하면 이태원은 1.95배라니 생각보다 대단히 많이 오른 것 같지는 않다

-이태원1동과 한남동은 내국인/외국인 증감에 큰 변화는 없는데 이태원2동과 보광동은 외국인이 늘어남. 다만 인상적인 수치는 아님

-외국 음식점은 이태원역 근처에 집중돼있다가 2010년 이후 범위가 넓어져 경리단길까지 확장. 그런데 2011~2015년에는 요식업보다 옷가게가 많이 늘었다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해보니 이태원 핫플레이스를 찾은 사람들 중 소셜미디어를 통한 경우보다는 주변 사람 소개가 56.2%로 가장 많았다고. (112쪽) 

 

'이태원 사람들' 부분은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지역 젠트리파이어들 중에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많다고 했는데, 'OECD 교육지표 2019'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25~64세 고등교육(대학 이상) 이수율은 49.0%이고 특히 청년층(25~34세)은 69.6%로 2008년 이후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이태원 젠트리파이어들뿐 아니라 어느 지역 어느 분야의 청년창업자들을 분석해도 '70%는 대졸자'라는 얘기. 물론 교육수준이 높아진 것이 소비패턴의 변화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저자가 이태원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본업인 전문직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투잡을 뛰다가 나중에 본격 사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방송인, 광고회사, 의류회사, 금융회사 출신들이 많았다고(95쪽). 이 정도 되지 않으면 이태원에 가게 열기는 힘들 것 같다. 이태원이 서울의 다른 지역들보다 아무래도 더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도 분명 사실이고.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지리아 골목'이 서울 어디에 생기겠냐고.

 

가게 주인들과 손님들을 여럿 만나 인터뷰했는데 그 부분은 대충 건너뜀. 마지막 부분, 너무나 빨리 소비된, 한마디로 인기가 순삭된 이태원의 최근 변화야말로 한국적이고 서울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이태원 뜬다'고 난리더니 2017년부터는 또 갑자기 빈 점포들 많다고 아우성. 이 부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진정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보여주는 임대료 상승. 저자가 지적했듯, 사드 이후 삼청동에서 이미 봤던 현상이다. 임대료를 엄청 올려놨는데 사드 여파로 중국 관광객들이 줄어드니 찬바람 맞은 삼청동. "최근에는 경리단길의 쇠퇴에 이어 경의선숲길 조성으로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던 연남동의 연리단길과 망원동의 망리단길에도 경리단길의 징조가 나타났다." (152쪽)

 

그렇다면 "이태원의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소비자들을 다시 찾고 있"는, "예술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소상공인들과는 구분되는, 자신들의 상업적인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소비자들과의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인 윤택함보다 삶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문화적 신계층"인 이태원 가게 주인들은? "이들의 독창적인 상업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속시켜 변화를 확산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킨 새로운 소비자 계층"(108~109쪽)은? 떴다 지고 문열었다 망하는 건물주 세상의 임대료 폭망 케이스들과 이태원의 차이점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자영업의 5년 생존율(약 20%)과 비교할 때 경리단길과 이태원2동의 생존율은 아직 높은 편"(153쪽)이라는 것에서 이태원의 지속가능성과 생존력을 평가해줘야 한다는 것인가.

 

책 말미에 써있듯이 도시는 생태계이고 먹이사슬은 변화한다. 다만 그 먹이사슬이 유지라도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후다닥 읽었는데, 다 넘기고 나니 허망하다. "우리가 만약 극도의 이윤 추구보다 우리를 위한 민주주의, 사회 공익과 정의에 더 가치를 둔다면 자본주의는 지금처럼 폭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161쪽) 허망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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