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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스티글리츠, '거대한 불평등'

딸기21 2019. 8. 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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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의 책은 이전에도 읽었고 또 여기저기에 코멘트한 것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딱히 내용이 새롭거나 낯설 것은 없었다. 그래도 듣다 보면 또 맞는 이야기이고. 불평등에 맞서 이렇게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유명한 학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불평등 THE GREAT DIVIDE>(조지프 스티글리츠.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은 배니티페어와 프로젝트신디케이트,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 스티글리츠가 기고했던 걸 묶은 책이다. 2008~2009년 경제위기부터 시작해서 그 후로 계속되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 과정, 그 전에 이뤄졌던 불평등을 촉발한 정책들을 되짚는다. '기회의 땅 미국'이라는 신화는 꺼졌고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나라가 되고 있다면서, 부자감세와 정부지출 줄이기라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도 강요했던 정책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개탄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로서 그는 시장의 힘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은 완전하지 않으며, 시장이 '잘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치가 개입해야 한다고, 그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세금은 나쁜 행위에 더 많이 매겨야 하는데, 환경파괴 등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는 물론이고 경제를 망가뜨리는 지대추구 같은 행위에 매겨지는 세금이 오히려 적다.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부자들의 힘이고, 그걸 따라가는 게 정부의 부패다. 책에 거듭 등장하는 용어는 '지대추구'다. 저자는 지대추구를 통해 부자들이 부당하게 더 돈을 벌 뿐 아니라,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일에 돈이 쏠림으로써 경제 자체가 무너진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가 약해지면 다시 불평등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모든 챕터들에서 스티글리츠가 내리는 결론은 '불평등은 불가피한 게 아니며 우리가 선택한 정치의 결과'라는 것, 그러므로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세계화와 그 불만'

스티글리츠,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몇몇 글을 묶으면서 그 앞에 당시 글을 썼던 배경과 그 후의 상황 같은 것을 짧게 요약해놓는 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논지가 명확한 대신 내용이 계속 반복돼서 쓰윽쓰윽 읽었다. 스티글리츠가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짧게 소개해놓은 부분이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대공황기에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셨는데,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보험 사업을 도우셨다. 어머니가 일하러 가실 때문 우리는 미니 피 엘리스라는, 자상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도우미의 손에 맡겨졌다. 나는 열 살 무렵, 어린 나이에도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미국은 만인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풍요로운 나라라는데 어째서 그분은 6년밖에 교육을 못 받았는지, 어째서 그분은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고 우리를 돌보아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득과 관련한 통계를 연구하게 된 것은 몇십년 뒤의 일이지만 나는 당시에도 미국이 기회의 땅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24쪽)


얼마전 나는 상위1%의 일원이 주최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어떤 갑부는 다른 갑부와 마주보고 앉아서 남들에게 얹혀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는 게으른 미국인들이 문제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이들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조세 도피처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모순이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그곳에 모인 부호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단두대 이야기를 몇번이나 들먹이며 불평등의 심화를 방치하다간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두대를 기억하라'가 그날 만찬의 주된 논조였다.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그 사람들이 말했던 그 구절 속에 녹아 있다.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경제법칙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가 초래한 결과다. (22쪽)


정치와 경제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정치와 경제의 유착관계, 특히 미국의 정치 시스템 내에서 경제 불평등이 정치 불평등을 심화시켜 가진 자들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쥐어주고, 정치 불평등이 다시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파헤쳤다. 

지난 십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거대한 균열 즉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거대한 불평등과 부실한 경제관리, 세계화, 국가와 시장의 역할, 이렇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은 거시경제적 곤경 즉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 이어진 장기불황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다. 세계화는 성장의 가속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세계화 과정을 부실하게 관리할 경우에는 이런 영향이 더 강력해진다. 우리 경제에 대한 부실한 관리와 세계화 과정에 대한 부실한 관리는 우리 정치에서 특수 이익집단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돼 있다. 우리 정치는 갈수록 상위 1%의 이익을 반영하는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정치는 곤경을 빚어낸 원천 중 하나이지만 정치를 통하지 않고는 곤경을 해결할 수 없다. 시장은 자체의 힘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정부가 국민 '모두'를 더 책임감 있게 대하고 국민 모두의 이익을 더 충실히 반영하도록 민주주의를 개혁하는 것, 사회의 거대한 균열을 치유하고 번영을 공유하는 국가를 되살릴 방도는 오직 이뿐이다. (30-32쪽)


국가 간 소득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을까? 빈곤국들과 중간소득 국가들 내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을까, 완화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더 공평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훨씬 불공평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을까?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진행한 연구에 의지해서 해답을 찾아보자. 세계적 차원의 격차는 2차 대전 무렵까지 갈수록 확대되었다. 지금도 국가 간 불평등은 국가 내부의 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공산주의가 붕괴할 무렵부터 경제의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국가 간 격차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의 시기에는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불평등이 완화되었다.'

아시아와 서구의 선진 경제 사이처럼 일부 지역에서는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거대한 격차가 여전히 상존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가별 평균소득은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격차가 크게 좁혀져왔다. 주로 중국과 인도의 급격한 성장 덕분이다. 그러나 전 인류 차원에서 소득 평등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모든 나라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방치돼 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밀라노비치는 1988년부터 2008년 사이에 세계 인구 중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이 60%에 이르는 소득 증가를 본 데 반해서 하위 5%는 소득변화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190-191쪽)


경제적 불평등과 범죄 또는 시민폭동에 의해 측정되는 사회적 안정 사이에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폭력은 지니계수나 팔마 비율(상위 10%의 소득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하위 10%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로 나눈 값)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경제계층과 인종, 민족, 종교, 지역을 결합시키는 '수평적 불평등'과 폭력 사이엔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한 인종이나 종족, 종교, 지역 출신인 경우에는 안정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역학관계가 나타나기 쉽다. 

라스에릭 시더맨과 닐스 와이드먼, 크리스티안 글레디치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탈냉전기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 종족집단별로 1인당 경제생산량을 구하기 위해 경제생산 총량을 각 종족집단의 인구수로 나누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종족집단들과 부유한 종족집단들 모두가 내전을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406-407쪽)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8가지 목표(극심한 빈곤과 기아의 퇴치, 보편적 초등교육의 달성, 양성평등 촉진과 여성 권리 강화, 유아사망률 감소, 모성건강 개선,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질병과의 전쟁, 환경 지속가능성 보장, 개발을 위한 세계적인 동반관계 구축)에 '아홉번째 목표'를 더할 것을 제안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모든 나라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일소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부 목표를 제시한다.

-2030년까지 모든 국가에서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을 감소시켜 상위 10%의 세후 소득이 하위 40%의 이전소득 반영 후 소득을 넘어서지 않게 한다.

-2030년까지 모든 국가에 국가적인 불평등의 파급 효과를 평가하고 보고하는 공공위원회를 설립한다. 

두 가지 세부목표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목표다. 다시 말해 2020년까지 각국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는 목표다. (409-411쪽)


어째서 미국은 이처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선택해 온 걸까?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우리의 경제모델과 겨룰 만한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국제무대에서 경쟁상대가 사라지자, 우리 시스템이 대다수 국민들의 후생에 기여할 수 있음을 과시할 필요성 역시 사라졌다. (420쪽)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독트린>에서 제프리 삭스가 러시아를 상대로 밀턴 프리드먼식 시장자유주의를 팔아먹었던 사실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클라인의 삭스 비판은 가혹하기보다는 애잔함을 안고 있다. 클라인은 삭스가 러시아에 '시장자유화를 하면 서방이 도울 것'이라 약속했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삭스를 만나 그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클라인이 지적한 것이 '냉전이 끝났으므로 서방은 더 이상 착한 척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삭스는 이를 포착하지 못했고, 그것이 결정적 오판이 됐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미국 내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냉전 붕괴 이후의 인식 변화를 꼽지만, 클라인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도 똑같은 요인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세후 자본수익률을 경제 성장률보다 높게 유지하는 자산보유자들은 어떻게 이런 성과를 올리는 걸까? 그들은 게임의 규칙에 손을 대서 반드시 이런 성과가 나오게 만든다. 즉 정치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경제적 지리적 격리 덕분에 부유층은 나머지 계층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옛날옛적 군주들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천부적 권리라고 여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벤처사업가 톰 퍼킨스가 한 발언(그는 상위 1%에 대한 비난이 나치 파시즘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이나, 사모펀드계의 거물 스티븐 슈워츠먼이 한 발언(그는 금융업자들에게 노동자와 동일한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에 비유했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421쪽)


어떤 경제를 평가하는 진정한 시금석은 갑부들이 조세도피처에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아놓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여유있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빈곤퇴치를 위한 새로운 전쟁과 동시에 중간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을 해야 한다. 굳이 새로운 수단을 강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가장 적절한 출발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불평등은 경제학 기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와 관련된 문제다. 부유층에게 마땅히 내야 할 몫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 투기업자들과 기업들 그리고 부유층의 특권을 없애는 일은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공평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물론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다시 시도해볼 필요조차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 불평등과 우리 민주주의를 상품화하고 부패시켜 온 정책에 있다. 불평등을 확대하고 심화하는 원동력은 불변의 경제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어온 법률이다. (423-424쪽)


싱가포르 정부는 저소득층의 임금이 착취 수준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정부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임금 중 무려 36%를 '적립기금' 형태로 저축하도록 강제했고, 이 기금을 적절한 의료 혜택과 주택, 퇴직연금을 보장할 재원으로 활용했다. 둘째, 정부 프로그램들은 보편성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누진성을 추구했다. 

셋째, 싱가포르 정부는 세전 소득의 분배에 개입했다. 목적은 저소득층을 돕는 데 있었다. 정부는 노동자들과 기업의 협상에 개입하되,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협상의 저울추를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옮겨주었다. (447쪽)

 

미국의 엘리트들은 이런저런 변명을 내세워 현실을 합리화한다. 예컨대 (스칸디나비아 등지의) 이런 나라들은 동질적인 사회이며 이민자 수가 극소수라는 식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스웨덴은 많은 이민자들을 수용해왔다. 스웨덴 인구의 약 14%가 외국 태생이다. 영국은 11%, 미국은 13%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 언어가 혼재하는 도시 국가다. 인구 규모가 다르다고? 인구 8200만의 독일은 인구 3억1400만인 미국보다 기회 평등성이 훨씬 높다. (452쪽)


(덤으로, 스티글리츠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최근 올린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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