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끼리가 선물을 줬어요" 세계의 크리스마스 풍경

딸기21 2019. 12. 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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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태국 방콕 근교 아유타야의 학교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코끼리와 조련사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아유타야 EPA연합뉴스

 

“코끼리가 선물을 줬어요.” 

 

인구 98%가 불교도인 태국에서 15년째 계속돼온 성탄 이벤트가 있다. 23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는 방콕 근교 유적지이자 유명 관광지인 아유타야의 한 학교에서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코끼리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가 올해에도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아유타야의 지라사르트위타야 초·중등학교에는 코끼리 4마리가 찾아와 학생들에게 선물을 건넸다. 학교 근처에 있는 민간 코끼리 이벤트 회사인 ‘아유타야 코끼리궁전’의 소유주가 해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아이들을 위해 하는 행사다. 선물을 받은 팟차라몬이라는 초등학생은 방콕포스트에 “코끼리도 귀엽고, 코끼리들의 춤도 귀여웠다”고 말했다.

 

하일라이트는 선물을 주고 난 뒤 코끼리가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민한 동물인 코끼리를 혹사시킨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지적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여주듯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계의 풍경도 제각각이다. 연휴 시즌에도 시위가 계속되는 곳도 있고, 외부의 핍박 속에 힘겨운 성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올해에는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터져나왔고 여러 곳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현재진행형이라, 성탄 표정에도 그늘이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이라크의 기독교도는 주민의 2% 남짓에 불과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오래됐다. 바그다드의 기독교도들은 해마다 도심에 거대한 원뿔 모양의 트리를 세우고 성탄 분위기를 냈고, 무슬림 주민들도 함께 예수 탄생을 축하했다. 그런데 올해 트리에는 예년과는 다른 ‘장식물’이 달렸다. 지난 10월부터 계속된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무력진압에 숨진 이들을 애도하는 사진과 글들이 트리에 걸린 것이다. 경찰과 치안군의 ‘총탄 진압’에 희생된 사람들은 340여명에 이른다. 이달초 이라크 기독교 지도자들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올해 크리스마스 행사들을 취소했다.

 

지난 5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알자우라 공원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에 반정부 시위 사망자들을 기리는 장식물이 걸려 있다.  바그다드 AP연합뉴스

 

이라크 기독교도들은 ‘칼데아파’라 불리는 종파가 대부분이다. 숫자는 적지만 2003년 미국의 침공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무슬림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왔다. 하지만 미군 점령을 거쳐 시아파 정부가 들어선 뒤 기독교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줄었다.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같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이 기승을 부릴 때에는 기독교도들과 기독교 시설이 테러공격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시아파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 뒤에 있는 이란의 개입에 반발한 시민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두 달 넘게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종파 간 나눠먹기 식으로 권력이 유지되는 것에 모두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바그다드 칼데아교회의 루이스 라파엘 사코 추기경은 AP통신에 최근의 시위와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전하며 “새로운 이라크가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난 4월의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소실된 뒤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 올해엔 성탄전야의 자정미사 장소가 주변에 있는 생제르멩 록스루아 성당으로 옮겨졌다. 노트르담의 성탄예배가 열리지 않은 것은 1803년 이후 216년만의 일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에서 23일 한 철도노동자가 산타클로스 차림을 하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오를레앙 AFP연합뉴스

 

지난해 성탄절을 ‘노란 조끼’ 시위와 함께 보낸 파리 시민들은 올해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내년 1월 9일에 노조들이 중심이 된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는데, 그때까지 파업과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장사에 타격을 입고 있는 소상인들에게 내년까지 4000만유로의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산타의 본고장’인 북유럽의 핀란드 정부는 올해 이색 크리스마스 선물을 공개했다. 올 하반기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으로서, ‘인공지능(AI) 온라인 강좌 무료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헬싱키대학이 운영 중인 ‘AI의 구성요소’라는 온라인 강좌는 7개 유닛으로 돼 있고 유닛당 5~10시간짜리 강의들이 들어 있다. 핀란드 정부는 지금까지 110개국 22만명이 수강한 인기 교육프로그램인 이 강좌를 영어, 스웨덴어, 에스토니아어, 독일어 버전으로도 만들어 공짜로 풀기로 했다. 앞으로 20개 언어로 확장할 계획이다. 핀란드가 제시한 목표는 2021년까지 EU 주민 500만명이 이 강좌를 듣게 함으로써 “AI가 소수 엘리트들의 손에만 맡겨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 밖 사람들도 물론 강좌를 들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근교에 이스라엘이 설치해놓은 철조망 앞에서 23일 산타클로스 차림을 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베들레헴 로이터연합뉴스

 

세계가 성탄을 기념하지만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고립과 핍박의 땅이 된지 오래다. ‘별의 거리’로 불리는 순례길이 최근 리노베이션됐으나 가게들은 닫히기 일쑤다.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베들레헴은 1993년 오슬로협정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화해 분위기 속에 반짝 관광붐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 이스라엘의 도발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봉기가 일어난 뒤로는 이스라엘 측이 수시로 봉쇄하거나 통금령을 내려 황폐해졌다.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주민 21만명 중 92%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도시 땅의 13%에 몰려 살고 있다.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을 에워싼 이스라엘의 분리장벽과 감시탑 앞에 23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서 있다.  베들레헴 UPI연합뉴스

 

그래도 2017년 이후로 관광객들이 늘고 있고, 올 성탄 시즌에는 140만명이 베들레헴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정작 팔레스타인 기독교도들의 베들레헴 순례길은 막혀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베들레헴을 비롯한 서안 지역으로 성탄 시즌에 이동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막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땅 곳곳을 난도질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을 형상화해, 총탄 구멍 아래에서 태어나는 아기 예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22일 공개했다.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총탄 구멍 아래에 탄생한 아기 예수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있는 ‘월드 오프(Walled Off) 호텔’의 매니저 위삼 살사가 22일(현지시간) 영국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의 작품 ‘베들레헴의 상흔’을 전시하고 있다.  베들레헴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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