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잠수함이 실종됐다.
지난 21일 발리 섬 부근에서 인도네시아군 잠수함 승무원 53명이 타고 있는 KRI낭갈라402호의 교신이 끊어졌다. 인도네시아군에 따르면 잠수함은 발리 북부에서 어뢰 발사 훈련을 준비하던 중에 실종됐다. 22일 실시할 예정이었던 훈련은 취소됐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TV로 중계된 연설에서 “53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잠수함 2척을 포함해 군함 20여척과 군용기 5대가 파견돼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낭갈라호가 훈련하고 있던 곳은 발리 섬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이후 발리에서 96km 떨어진 해상에 디젤유가 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잠수함 연료로 추정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유도 마르고노 해군 참모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잠수함의 산소 탱크 용량이 72시간 분량이라고 밝혔다. 실종 시점부터 계산하면 토요일인 24일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생존하기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유도 참모총장은 “24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전에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ailors on missing KRI Nanggala submarine have oxygen until Saturday
아직은 승무원들이 살아 있을 수 있지만, 잠수함이 온전한 상태일 때의 얘기다. 해저 200~250m 까지의 깊이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건조된 잠수함이어서 그 아래로 내려가면 선체에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파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주 잠수함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해저 500m 정도까지는 잠수함이 온전한 상태일 수 있겠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자카르타포스트는 군 발표를 인용해 이미 잠수함이 600~700m 심해로 가라앉았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서는 잠수함 위치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인도네시아 해군 운용시스템은 해저 1000m 지점에 있는 잠수함과도 교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위치를 찾더라도 만일 잠수함이 너무 깊은 곳에 있으면 구조작업이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해양 구조시스템은 최대 해저 600m 까지에서 가동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44명을 태운 아르헨티나 잠수함이 남대서양에서 실종됐는데 1년이 지난 뒤에야 800m 심해에서 잔해를 찾았다.
The Type 209: a German submarine sold around the world
실종된 낭갈라402호는 1300톤짜리 디젤 추진 잠수함이다. 1978년 독일에서 제작돼 1981년 인도네시아군이 인수했다. 만들어진 지 40년이 넘은 것이다. 1989년 독일에서 한번 수리를 했고 2009~2012년 한국 대우조선에서 추진력을 높이고 음파탐지장치와 내부구조 등을 다시 한 차례 업그레이드했다.
'타입 209'라 불리는 이 모델은 독일에서 2차 대전 시기의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1960년대에 개발됐다. 정작 독일군에서는 쓰인 적은 없고 61척이 그리스, 인도, 터키, 이집트 등 14개국에 팔렸다.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군이 영국과 말비나스섬(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을 벌일 때에 이 모델을 배치하기도 했다. 잠수함이 건조된 조선소는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는 독일 티센크루프 소유다. 군사전문매체 제인스에 따르면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최근에도 이 모델의 개량형 잠수함 3척을 건조했다.
잠수함이 실종되자 이웃나라들도 일제히 도움을 보태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이미 구조선을 출발시켰으며 24~26일 사이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호주도 구조선을 보내기로 했다. 인도는 인도네시아와 군사협력 관계이고, 몇년 째 해상 공동훈련도 하고 있다. 미국은 군용기를 보내 수색을 도울 예정이다. 프랑스, 러시아, 터키도 구조 협력을 제의했으며 한국 국방부도 "인도네시아 측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라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India joins search for Indonesian submarine
2000년 8월 북유럽 바렌츠해에서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가 훈련 중 폭발했다. 당시 러시아는 서방의 도움을 거절했고 그 사고로 118명이 숨졌다. 이 참사 뒤 국가의 이해관계에 상관 없이 잠수함 재난시에는 구조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커졌으며 2003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중심이 돼 국제잠수함탈출구조연락사무소(ISMERLO)를 만들었다. 영국 노스우드에 사무소가 있는데, 세계 어디서든 잠수함 운항 중 문제가 생기면 여기에 각국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게 했다.
알자지라방송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해군도 21일 낭갈라호 교신이 끊긴 직후 ISMERLO에 연락을 취했고 ISMERLO는 싱가포르와 호주 해군에 상황을 전달했다.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군에는 없는 심해구조잠수정(DSVR)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응엉헨 국방장관은 2012년 잠수함 사고 시에는 구조 돕기로 인도네시아와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싱가포르는 호주, 한국, 베트남, 미국, 인도와도 비슷한 협정을 맺고 있다.
[알자지라] Facing ‘morale blow’, Indonesia steps up search for submarine
인도네시아는 한때 옛소련에서 사들인 잠수함 12척을 운용했으나 지금은 독일산 209 모델 2척과 한국산 3척 등 5척만 가동 중이다. 2024년까지 총 8척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밖에 프리깃함 7척, 대잠 초계함등 초계함 24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체계가 전반적으로 낙후해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낡은 군용기들의 추락사고가 잇달았다는 것이다. 2015년 군 수송기가 추락해 100명 넘게 숨졌고, 2016년에도 역시 군 수송기가 떨어져 파푸아에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고로 낡은 무기의 문제가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군사력 확충 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의 분쟁 때문이다. 중국이 이른바 '남중국해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는 많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네이, 대만 등이 모두 관련 당사국이다. 그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는 최근 2~3년 새 중국과 마찰이 심해졌다. 인도네시아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 주장하는 해역과, 중국이 공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이 남중국해의 인도네시아 섬인 나투나 제도 부근에 접근한 것이 인도네시아를 자극했다. 지난해 1월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이 중국 어선들의 조업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일주일 뒤 조코 위 대통령은 나투나제도를 방문해 주권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 뒤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해군력을 증강한다고 발표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해군 산하 전투부대(Guspurla) 제1함대의 사령부를 수도 자카르타에서 나투나 제도로 옮겼다.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중국의 해저 드론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20일 언더워터 드론이라고 흔히 부르는 무인수중이동장치(UUV)를 술라웨시섬 남쪽 셀라야르 섬 부근 바다에서 어부들이 발견한 것이다.
중국 해저드론이 인도네시아에서 포착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3월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리아우섬 해역에서 발견된 데 이어 지난해 1월에는 보르네오 섬과 자바섬 사이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내해(內海)인 순다해협 부근에서 발견됐다. 작년 말 어부들이 드론을 찾은 곳은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확인된 것만 이렇게 3차례다.
2016년에 미 해군 수중드론을 포획한 중국은 거세게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잇달아 발견된 중국 수중드론들은 중국이 아시아 바다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군사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해양 갈등이 커진 것은 물론이고, 호주와 아시아를 잇는 길목에서 2.2미터 길이 드론이 발견됐다는 점에 호주도 몹시 경계했다.
남중국해 갈등만 놓고 보면,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면서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유럽국들까지 군함을 보내 남중국해를 통과시킴으로써 미국이 강조하는 이른바 ‘항행의 자유’를 과시하는 데에 가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프랑스 핵잠수함 에메로데는 지난 2월 ‘마리안느 임무’라는 이름으로 남중국해를 지나갔다. 영국도 올가을 퀸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보내 일본과 합동훈련을 하기로 했는데, 이 때 항모가 남중국해를 지날 계획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2019년에도 항모와 군함들을 남중국해로 보내 중국이 거세게 반발했다. 오는 8월에는 독일도 호위함 한 척을 보낸다. 다만 독일 군함은 중국과 주변국들 간 첨예한 분쟁지대인 스프래틀리제도(남사군도)와 인접한 수역은 통과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FRANCE24] France wades into the South China Sea with a nuclear attack submarine
남중국해 갈등은 아시아 국가들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남중국해 분쟁지역 상황을 위성사진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스프래틀리의 산호초들에 중국이 기지를 짓는 상황 등등을 매번 발표하는 곳이 이 연구소다. 이들의 지난 3월 분석을 보면 베트남 역시 최근 2년간 스프래틀리에 군사시설을 지어왔다. 베트남이 접안시설, 해안벙커 등을 지은 산호초가 최소 10곳이다.
[VOA] China’s not the Only Country Fortifying Tiny Islets in a Contested Asian Sea
인도네시아 역시 군비확장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올 국방예산은 137조루피아, 약 10조5000억원이다. 세계 10위권 수준인 한국의 올해 국방예산 약 52조원에 비하면 훨씬 적은 액수이지만 코로나19 와중에도 전년 대비 16% 이상 증액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군은 지난 4일에는 나투나제도에서 제일 큰 섬인 풀라우 나투나 베사르에서 잠수함기지 착공식을 했다. 제인스에 따르면 면적 1050제곱km의 이 기지를 짓기 위해 이미 2016년 의회 승인을 받았다.
[Janes] Indonesia begins construction of submarine base in South China Sea
이렇게 갈등이 커지고 군사훈련이 늘어나는 가운데 잠수함 사고가 일어났다. 조업권을 비롯한 경제적 이권만이 문제라면 중국과 남중국해 주변 6개국이 협상으로 풀 수도 있다. 실제로 어업을 둘러싼 협상이 몇 년 째 진행중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주변국들과 맞부딪치는 것인데다 미-중 대리전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해양 주도권 싸움이 사그라들기는 어렵다. 군사적 갈등이 도발에 의해서든 사고에 의해서든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수상한 GP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시험대의 바이든 (2) | 2021.05.14 |
---|---|
[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로나19와 콜롬비아 유혈사태 (4) | 2021.05.07 |
[구정은의 '수상한 GPS']미사일과 우라늄, 그린란드의 선택은 (0) | 2021.04.09 |
[구정은의 '수상한 GPS']군부 vs 소수민족, 다시 부상한 미얀마의 싸움 (2) | 2021.04.02 |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 운하가 막히면? 이집트의 무기, 수에즈 (1) | 2021.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