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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미사일과 우라늄, 그린란드의 선택은

딸기21 2021. 4. 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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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에서 7일(현지시간) 총선이 실시됐다. 야당이던 좌파 ‘이누이트 아타카치깃(Inuit Ataqatigiit, 사람들의 공동체)’ 당이 37%를 득표해서 처음으로 제1당이 됐다.

 

그린란드 의회를 이나치사르투트(Inatsisartut)라고 부르는데 전체 의석 31석 가운데 이 정당이 12석을 얻어 내각 구성권을 갖게 됐다. 공동체당은 1976년 덴마크에서 청년층 급진주의 물결을 타고 결성된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분류되며, 환경보호와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해왔다. 집권 시우무트(Siumut, 전진)당은 의석 10석으로 조금 뒤졌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공동체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당으로 밀려난 시우무트도 역시 사민주의 성향의 중도좌파 정당이고 둘이 연정 논의를 하게 될 것 같다.

 

People queue to vote, in the Inussivik arena in Nuuk, Greenland, Tuesday April 6, 2021. AP


공동체당의 승리를 이끈 무치 에어더(Múte Bourup Egede) 당대표는 올해 34살로, 그린란드 수도인 누크 태생이다. 2007년 의회 최연소 의원이 됐고 2016~2018년 그린란드 광물자원·노동시장 담당 장관 등 각료를 지냈다. 2018년부터 당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 자기 선거구에서 1500표를 얻어 당선자들 중 최다 득표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린란드의 최연소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에어더 대표는 승리연설에서 이번 선거의 두 가지 핵심 이슈를 짚었다. “첫째는 사람들의 삶의 질,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의 건강과 환경”이라고. 이번 선거에서 에어더 대표와 공동체당은 다국적 기업들의 그린란드 자원개발, 특히 우라늄 개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무치 에어더 공동체당 대표.  nord.news



북극해에 면한 그린란드는 면적 216만㎢로 호주와 남극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덴마크에 속한 자치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캐나다 북동부에 더 가깝게 붙어 있다. 4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이동해 거주했다고 하지만 정착의 역사는 그보다 짧다. 10세기 쯤부터 정착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그린란드 주민들의 선조는 13세기쯤 북미에서 사람들이 건너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는 북미쪽이 아니라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노르웨이가 이 섬에 정착지들을 만들었고 15세기에 잠시 포르투갈인들이 선박과 탐사단을 보내기도 했다. 17세기부터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협정을 맺어 공동으로 영유권을 가졌으나 1814년 덴마크 영토가 됐다. 덴마크는 1953년 헌법에 그린란드가 자국 땅이라 명시했다. 

 

위키피디아


자치가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는 덴마크가 1973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린란드인들은 1982년 주민투표를 통해 EEC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덴마크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주민투표를 주도한 것이 이번에 제1당이 된 공동체당이었으며 3년 뒤 예고대로 그린란드는 EEC에서 탈퇴했다.
1979년부터 형식적인 자치를 하기는 했지만 결함이 많았고 2008년에야 역사적인 자치법안이 통과됐다. 이듬해인 2009년 6월부터는 외교·국방을 제외하고 치안, 사법, 회계, 광업, 항공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덴마크가 연간 34억크로네(약 6000억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으나 자치 약속에 따라 앞으로 점차 줄어들 예정이다. EU 회원국인 덴마크의 영토라는 독특한 처지여서 EU도 ‘역외 지위(OCT)’를 주고 유럽개발기금(EDF)과 유럽투자은행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고 있다. 아직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지는 못했으나 그린란드인들이 믿는 구석이 있다. 우라늄과 희토류라는 광물자원이다. 이를 누가 어떻게 개발하고 이익을 가져갈 것인가가 그린란드 정치의 핵심 이슈인 것이다.

 

Giant icebergs float in the fjord in the southern Greenland town of Narsaq, the site of a controversial Australian-led uranium and rare-earth mining project. The open-pit mine has divided opinion on the island, which goes to the polls on Tuesday. NORDFOTO/AP


그린란드의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5만6000명인데 약 90%는 북극권 원주민인 이누이트 혹은 이누이트와 유럽계 혼혈이다. 주민 3분의 1이 수도 누크에 몰려 산다. 미래의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은 덴마크가 광물자원을 외국 기업들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자원을 미래의 자산으로 남겨둬서 독립 이후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긴다. 공동체당은 독립을 주장해온 반면에 2당이 된 전진당은 자치를 강조하면서 덴마크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표심은 공동체당으로 조금 더 많이 향했다.

 

특히 10년 넘게 우라늄 개발을 놓고 진행돼온 논란이 선거 결과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그린란드 남서부에 있는 쿠아네르수잇(Kuannersuit) 우라늄 광산 문제다. 덴마크식으로는 콰이네필드(Kvanefjeld)라고 한다. 덴마크는 콰이네필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우라늄과 희토류 채굴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린란드 의회는 환경파괴가 심한 방사능 광물 채굴을 금지한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2013년 전진당 정부가 이 법을 뒤집어버렸다.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래의 독립 기반을 외국 회사가 빼내가는 것인 동시에, 그린란드 안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환경 보전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콰이네필드 광산지대. proactiveinvestors.com.au

 

그린란드는 전체 에너지 수요의 70%를 수력을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한다. 그러나 콰이네필드 채굴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그린란드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5%가 늘어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게다가 우라늄 채굴은 방사성 폐기물들을 남기며 광산 일대를 황폐화한다. 이미 콰이네필드 부근에 녹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토양 오염이 심해졌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그린란드 안에도 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을 이번 선거 결과는 보여줬다. BBC는 전진당이 이번에 정권 잃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콰이네필드 채굴을 허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How an election in Greenland could affect China — and the rare-earth minerals in your cellphone

그린란드 선거를 보는 세계 언론들의 관심은 앞으로 그린란드의 광물 개발이 주춤할 것이라는 점에 맞춰져 있다. 콰이네필드는 우라늄뿐 아니라 희토류도 많이 매장돼 있는 곳이다. 전진당 정부의 허가가 난 뒤 ‘그린란드 미네랄스’라는 광산업체가 이곳 우라늄 채굴권을 가져갔는데, 이 회사는 호주 기업이지만 대주주는 중국 청두에 본사가 있는 셩허자원(盛和资源)이다. 

 

https://geopoliticalfutures.com/


셩허자원은 세계 곳곳에서 희토류를 챙기는 중국의 광물기업 중 하나다. 잘 알려진 대로 희토류는 휴대전화, 평면모니터, 전기차, 풍력발전용 터빈 등 첨단산업 곳곳에 쓰이는 물질이다. 그런데 세계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깊어지자 2019년 중국은 미국에 희토류를 수출하지 않겠다면서 이 자원을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자 미국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희토류 독립’을 선언하고 자국 희토류 생산기업들을 밀어줬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MP머티리얼스라는 회사가 알고 보니 중국 쪽 투자를 받은 걸로 드러나서 지난해 계획을 중단했다. 그 '중국 회사'가 바로 셩허자원이었다.

  
콰이네필드는 중국 밖에서 중국계 기업이 채굴을 하고 있는 가장 큰 희토류 생산지다. 선거 뒤 공동체당의 에어더 대표는 덴마크 DR 방송과 인터뷰하며 “이 채굴을 중단시킬 것이다, 이것이 시민들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중국의 희토류 생산에 이번 그린란드 선거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산다고?

 

[구정은의 '수상한 GPS']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산다고? 얼음 녹으니 곳곳에서 '눈독'

2017년 9월 프랑스 파리를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3만7000피트 상공에서 고장을 일으켰다. 497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는 다행히도 캐나다 래브라도의 공군기지에

ttalgi21.khan.kr

 

그러나 이미 셩허자원 아니더라도 다국적 기업들이 그린란드 자원 채굴에 투자를 많이 해놨기 때문에, 공동체당이 중심이 돼서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그린란드 측이 외부 투자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대거 무산시키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당도 자원 채굴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외부 투자가 위축되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 투표로 그린란드인들은 자원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며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중국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2019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구매하는 계획을 검토해보라고 백악관 측근들에게 지시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일로 덴마크와 갈등이 생겨서 트럼프는 예정됐던 덴마크 방문도 취소했다.  

 

An aerial view of Thule Air Base. 위키피디아


그린란드 사람들은 정말 분노했을 것이다. 덴마크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린란드 측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북극 다툼에 휘말리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의 발언은 그런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돌출 행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으나 70년 가까이 계속돼온 미군기지의 존재는 다르다.

 

그린란드는 전체 영토의 3분의 1에 가까운 97만㎢가 세계 최대 국립공원이라는 북동그린란드국립공원(Kalaallit Nunaanni nuna eqqissisimatitaq)으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 이 공원 말고도 민간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더 있다. 바로 북극점에서 1500km 떨어진 노스스타 만에 위치한 툴레 기지(Thule Air Base)다. 겉으로는 덴마크군이 통제한다지만 실제로는 미군이 운영한다. 미 육군 산하 우주군(United States Space Force)이 2020년까지 21 SW 글로벌 미사일경보시스템을 여기서 운영해왔고 미군 북미항공방위사령부(NORAD) 정찰프로그램도 이 기지에서 가동 중이다. 면적 약 660㎢의 이 기지에서 미군이 운영하는 항공기 3000대가 해마다 오르내린다.

 

Workers build the snow tunnels at the Camp Century research base in 1960. Image: U.S. Army Corps of Engineers


덴마크는 헌법에 ‘그린란드는 통합된 우리 영토’라고 명시한 바로 그 해, 1953년에 이 공군기지를 미군에 내줬다. 미군은 이곳 원주민 이누구이트 부족을 강제로 내쫓고 여기에 나이키미사일을 배치했다. 당시 미국과 덴마크 정부는 원주민들과 합의했다고 했으나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WELCOME TO THULE "THE TOP OF THE WORLD"


이 기지 외에도 미군 기지가 그린란드 여러 곳에 있다. 미군 기지는 이곳 사람들의 자치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부추기는 존재다. 1995년에는 비핵 국가를 천명해온 덴마크 정부가 비밀리에 그린란드에 미군이 핵무기를 가져다놓도록 허가해줬다는 폭로가 나와 정치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다. 실제로 미군은 그린란드 북부 빙하지대에 캠프 센추리(Camp Century)라는 기지를 만들어 1960년대에 핵폭탄을 배치했다. 기지에서 화재가 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데다 수소폭탄 한 개는 수거조차 되지 않아 아직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린란드인들이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덴마크 정부와 강대국의 행태에 반발하는 데에는 이런 역사들이 있는 것이다.

 

What a Glacial River Reveals About the Greenland Ice Sheet

 

그린란드는 요 몇 년 동안 여름마다 폭염과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얼음땅이 녹으니까 자원에 눈독들이는 국가와 기업들이 많지만, 결국 그린란드가 녹는 것은 지구 전체에 적신호다.

 

4월 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웹사이트에 올린 자료를 보면 기온이 올라가면서 그린란드의 빙하가 약해지고 얼음층에 '바닥을 알 수 없는' 싱크홀들이 생겨나고 있다. 녹은 물이 얼음층 밑바닥까지 흘러내려가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지게 만들고 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멕시코만한 면적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데,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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