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이런저런 리스트

개발과 원조에 관한 책들

딸기21 2023. 9. 1.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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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의 책 <세계시민주의 전통>을 읽은 김에. 구호/개발/원조에 대한 책들을 모아봅니다. 개발경제학 공부하는 분들, 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더 전문적인 책들을 읽을 것이고, 여기 소개한 것들은 그저 저같은 '일반 독자'들이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만한 책들입니다.

 

REUTERS/Morteza Nikoubazl


먼저, 맛뵈기로 읽어볼만한 책. '실천윤리학자'로 유명한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입니다. 물에 빠진 아이는 구해야 하죠. 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다면 '누가 쐈나' '화살 쏘기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막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일단 화살을 빼고 치료를 해줘야 하고요. 실은 이 얘기는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나온 거에요. 아프리카, 빈곤 등에 대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일단은 <꽃으로도>를 읽으라고 권합니다. 이론이니 뭐니 하는 것들 따지기 전에 아픔에 우선 공감부터 하자는 뜻에서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이런 종류의 책으로는 김현주님이 쓰신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를 추천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픔에 대한 공감, 세계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 원조를 해줘야 하는 이유, 원조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두툼하게 담은 책이라면 단연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삭스는 참 선량하고 좋은, 존경스러운 학자입니다. 물론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습니다.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진 뒤 러시아에 시장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하며 저지른 실수 말입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읽어보세요). 또 하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 '세계의 선의'에 기대어 이른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 혹은 아프리카 우물파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원조를 주장했다는 겁니다. 삭스의 아프리카 구호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성과에 대한 예찬과 그 뒤의 혹평까지 여러 측면에서 평가가 진행됐지요.

구호/개발/원조와 관련해서 이밖에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국경없는의사회(MSF)를 소개한 댄 보르토로티의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파키스탄 빈곤지역에서의 경험을 그린 그레그 모텐슨과 데이비드 올리버 렐린 <세 잔의 차> 같은 것들이 생각나고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도 유명한데, 아마 꽤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만 말하는 이유는, 저는 그 책을 안 읽었거든요. 하지만 지글러의 <유엔을 말하다>는 매우x200 재미있었습니다.

카너 폴리의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는 제목이 좀 낚시성이긴 합니다만 인도주의를 빙자한 서방의 개입이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매우 타당한 지적을 담고 있습니다.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존 머터의 <재난 불평등>은 재난/보건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내용은 좋은데 글을 아주 잼나게 쓰지 않았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개발경제학의 금자탑;;이라 할만한 것은 이 책이죠. 폴 콜리어의 <빈곤의 경제학>. 이름하여 바텀 빌리언, 밑바닥의 10억명. 참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놓은 탓에, 이 책이 나온 뒤에야 속시원하게 말 좀 할 수 있게 된 이 분야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리도 좋은 책이 국내에선 절판입니다. ㅠㅠ

이 책과 관련해 저 혼자서 괜시리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어요. 꼴랑 이거 하나 읽고 나이지리아 교수를 만나 책의 내용을 가지고 안 되는 영어로 블라블라 아는 체를 했어요. 그런데 듣자마자 교수님이 '너 콜리어 읽었지' 하셔서 밑천 다 드러냈다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기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몹시도 읽고 싶어 했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최근 스캔들이 불거져서 체면이 깎인;;;;; 빌 게이츠는 구호개발 분야의 구루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 외국 언론에 '게이츠의 책꽂이'에 대한 글이 실린 적 있어요. '착한 자본가' 게이츠에게 영향을 미친 책으로 이 기사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윌리엄 이스털리의 <백인의 의무>, 프라할라드의 <피라미드 밑바닥의 부>, 그리고 콜리어의 책을 꼽았답니다.

그래서 이 책들을 기다렸어요. 저 가운데 <도덕감정론>은 안 읽었고, 나머지 세 권은 읽었습니다. 윗줄에 쓴대로 콜리어의 책은 겁나 훌륭했습니다만 'The Bottom Billion'이 <빈곤의 경제학>이라는, 알맹이 쏙 뺀 한국식 제목으로 변해서 나왔지요.

한국식 작명법은 다른 책들에서도 그대로 보입니다. 이스털리의 <백인의 의무>의 원제는 'The White Man's Burden: Why the West's Efforts to Aid the Rest Have Done'입니다. '백인의 짐'은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해서 필리핀을 빼앗은 것을 예찬하면서 쓴 러드야드 키플링의 시 제목입니다. 아시아의 미개인들을 개화시키는 백인의 사명을 가리키는 것이니, 참으로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표현입니다.

이스털리의 책은 이를 다시 뒤집어, 세계의 빈곤지역에 대한 백인들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만....한국에서는 <세계의 절반 구하기>라는 차카고이뿐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개발원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스털리의 책으로는 <전문가의 독재>도 나와 있는데 관심 많은 분이라면 읽어볼만 합니다.

 

Image by UN Photo/Martine Perret.


게이츠의 책꽂이에 등장한 프라할라드의 책은 그럼 어떻게 번역됐을까요? 아, 이건 정말이지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가 한국에서는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답니다. 흙흙흙 어쩜 좋아 어쩜 좋아...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거 말고 제대로 된 독을 만들려면 원조가 아니라 그 나라에서 시장이 생기고 기업들이 만들어지고 돈이 돌게 해야 한다, 요즘에는 이 쪽의 주장에 힘이 많이 실리고 있는데요. 프라할라드의 책이 바로 이런 주장을 큰 흐름으로 만드는 데에 혁혁한 역할을 했답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당시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특히 생생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도움이 많이 됐었습니다. 그런 흐름을 계승(?)한 책 중에 근래 나온 것으로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등의 <번영의 역설>을 권합니다. '시장 창조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세계의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읽어볼만 합니다.

물론 이런 흐름은, 난민 구호나 보건의료위기에 대한 긴급 구호가 아니라 한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기 위한 개발의 측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업, 시장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시각에 대해 마음 속으로 불편함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혁신기업가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을 만들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그의 책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도 인기를 끌었지만 뒤에 그라민은행 모델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죠. 제 짧은 견해로는, 그런 식으로 비판하면 남아날 것이 없겠다 싶었지만. 그럼에도 비판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마이클 에드워즈의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는 착한 자본가들이나 시장에 기대어 잘 살아보세 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호개발원조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 도움될 만한 책은 많습니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좁은 회랑>이 우선 떠오르네요. 좀 더 '이론적인' 바탕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피터 싱어의 <세계화의 윤리>, 존 맨들의 <지구적 정의란 무엇인가>와 맨 위에 소개한 누스바움의 책을 권합니다.

 

'까치스러움' 못잖은 '한울스러움'...


이러저러한 책들을 언급했지만, 여러 경우에 그렇듯이 기웃기웃하다 보면 결국은 이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마티아 센의 <불평등의 재검토>로 향하게 되는 것이죠. 행복이란 무엇이며 복지란 무엇이며 정의란 무엇이며 공정이란 무엇이며..... 등등등, 누스바움이 말하는 '역량 접근'의 개념과도 이어집니다. 다만 센의 이 소중소중한 책과 <윤리학과 경제학>은 절판이라는 사실(국내 출판시장이 작다 보니 번역서는 금세 절판됩니다. 그러니 꼭 껴안고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할 책이 제게 4권 있는데, 그 중 두 권이 센의 이 책들이랍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센의 책은 <자유로서의 발전>과 <정의의 아이디어>을 비롯해 여러 권이 더 나와 있답니다!

제가 읽어본 것은 대충 이런 책들이고, 앞으로 읽어보고픈 책들도 몇 권 있어요. 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와 필름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데이비드 비담 등의 <인권을 생각하는 개발 지침서>를 언제 한번;; 시간 나면;;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구호단체 활동가도 아닌데 이런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프리카 때문에.... 아프리카에 대한 책들은 따로 여기에 목록으로 정리해놨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책들

존 리더의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AFRICA: A BIOGRAPHY OF THE CONTINENT>(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읽고 생각난 김에 아프리카에 대한 책 몇 권 올려봅니다. 기행문 종류는 별로 읽어본 것도 없으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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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스트 정리한 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 새 긴급구호, 개발원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저와 동료의 책이 나왔답니다 ^^

 

<부자 나라, 가난한 세계>

 

<부자 나라, 가난한 세계>

부자 나라, 가난한 세계 구정은,이지선. 북카라반 어려움에 처한 친구, 아프고 슬픈 일을 겪는 이웃, 혹은 낯선 이들일지라도 위험에 빠진 것을 보면 사람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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