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미래를 바꾼다는 것
‘질병X disease X’에 대비하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는 2018년에 나왔다. 지카, 에볼라, 사스에 준비 없이 당한 인류가 미래의 유행병에 맞서려면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X’,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우리는 또 속수무책이었다. 어제의 교훈은 오늘을 바꾸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일은? 코로나27, 코로나39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급변하는 미래를 예측하려 애쓰는 대신 우리의 의지로 10년 후를 만들 수 있을까?
2015년에 출간된 《10년 후 세계사》는 ‘미래의 역사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당시 그 책을 읽고 “시대를 관통하는 글로벌 이슈를 횡으로 종으로 그려냈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6년이 지나 후속작인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를 만났다. 운 좋게 원고를 먼저 받아들고 순식간에 갈증을 채웠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복잡한 세상사 정리가 깔끔하다. 작은 에피소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 큰 그림으로 넘어가는 이음새가 끝내준다. 특수한 사례가 보편적 현상으로 연결되고, 먼 나라 이야기가 나의 현실로 훅 들어온다. 데이터는 촘촘하고 사례는 풍성하다. 이슈마다 책 몇 권씩 봐야 할 내용을 각각 한 챕터로 정리하다니 용하다.
단순히 정보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종과 횡으로 엮는 솜씨는 더 무르익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플랫폼 노동’은 기술 뒤편에 놓인 보이지 않는 노동, ‘고스트 워크’로 구체화되며,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의 봉쇄정책이 여성과 어린이를 더 많은 가정폭력에 노출시켰다는 ‘그림자 팬데믹’을 유엔이 분석한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처 몰랐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위험한 이유는 유해성 탓이 아니라 전 세계 농민들이 노동의 대가를 종자 값, 특허 값으로 빼앗기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노동 조건이 열악한 장거리 운송부터 무인 트럭이 도입된다면, 언젠가 남북한 물자가 넘나들 ‘군사분계선 무역’에서도 자율주행차가 활약하게 될까?
기계가 바꾸는 세상, 인간이 사라지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넋을 잃고 빠져들 때면 근본적 질문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미래학자들의 장밋빛 청사진은 소수에게만 유효할 뿐 언제나 많은 이들을 배신했다. 기술은 SF 영화 속 예상보다 더 빠르게 세상을 바꿔왔지만, 그 기술로부터 사람이 소외되곤 했다. 저자들은 기계나 기술로부터 사람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왜 민주주의가 중요한지 찬찬히 쫓아간다. 그리고 우울한 전망 대신 우리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상상력을 먼저 발휘하라고 다시 권유한다.
10년 후 미래가 더 나빠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 생각을 나눠보면 좋겠다. ‘질병X’에 또 당할 수는 없잖은가.
정혜승 (작가, 전 대통령비서실 디지털소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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