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치명률 2% 안팎의 전염병이 지구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 세계화가 이미 온 세상을 촘촘하게 엮어 놓았으며 그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라나 지역은 없다는 사실, 사람과 가축들이 숲을 파고들 때 숲 속의 바이러스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 가장 약한 사람들이 전염병의 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이 모든 것들을 바이러스가 보여줬다.
어느 인터뷰에서 미국 학자 겸 운동가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19를 가리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 불렀다. 롭 월러스가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바이러스의 ‘이주’ 현상이다. 병원균이 오랜 서식지를 넘어 야생동물에게서 가축과 인간의 세상으로 넘쳐나게(spillover)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삼림 파괴이며, 그 뒤에는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이들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는 무차별적인 ‘글로벌 자본회로’의 일부분이며,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각국 정부, 특히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는다. 애그리비즈니스에 돈을 대는 뉴욕과 런던과 홍콩의 자본은 모두 팬데믹의 공모자들이다.
월러스는 여기에 공모자들이 더 있다고 말한다. 야생과 농축산업,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막으면서 정작 그 사이사이의 방어막들은 교란시키는 자본의 패악을 경고하기는커녕, 자본에 포섭돼 구미에 맞는 소리만 읊으면서 전염병에 맞선 근본적인 싸움을 방해하는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저자는 그런 방역 전문가들을 ‘죽은 역학자들(Dead Epidemiologists)’이라 부른다.
미네소타대학 글로벌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는 진화생물학자 월러스는 2020년 국내에 번역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Big Farms Make Big Flu>에서 조류독감 등 인플루엔자를 중심으로 바이러스의 진화와 확산을 촉진한 거대 축산업과 자본주의의 세계경제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쓰인 것인데 비해, 이번 책 <죽은 역학자들>은 코로나19 발생 이후에 썼거나 인터뷰한 내용을 모았다. 그 자신의 코로나19 투병 경험을 시작으로 해서 지구 상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부르고야 만 애그리비즈니스의 실체와 무기력할뿐 아니라 나쁘기까지 한 역학자들의 실태에 대한 극렬한 비판을 담았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좌파’ 지식인들과 동료 학자들, 심지어 대안적인 농업을 주장해온 운동가들 등을 향해 날선 비판의 칼을 전방위로 휘두른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계화라는 거대 농축산업의 현실을 보지 못한 채 단순한 방역 개입을 하는 것으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닥쳐올 글로벌 전염병들에 맞설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본에 의한 세계화가 아닌 반자본주의 진영의 국제주의이며, 기업을 위한 가축 전염병 연구가 아닌 ‘사람을 위한 팬데믹 연구’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코로나19가 이제 막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상황에서 쓰인 것이어서 이 전염병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다가올 ‘팬데믹 X’에 맞서기 위한 노력도 아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월러스가 내놓는 근본적인 지적들은 축산이나 보건의료를 넘어 인류 모두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 이어 후속작 격인 이 책을 다시 번역할 기회를 준 너머북스에 감사드린다.
구정은,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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