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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추아, '정치적 부족주의'

딸기21 2021. 7. 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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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추아의 책은 <제국의 미래>에 이어 두 번째. 첫 책도 두께에 비해서는 밀도가 떨어졌고,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인종/민족/부족/젠더 등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모두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분석보다 프레임'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처음 읽을 때에는 꽤 흥미로웠는데 스크랩을 하려고 보니 빼곡히 베껴적어둘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고. 하지만 그런 분열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중요한 포인트들은 한국사회에도 통하는 것이어서 재미있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종, 지역, 종교, 분파, 부족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미국의 안보에 매우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곳들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유의 집단 정체성에 대해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다. 적어도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은 부족적 동학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놀라울 정도로 간과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호배타적인 영토를 가진 국민국가들이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자유세계 대 악의 축'과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에 따라 대립하는 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덧씌운 렌즈로 세상을 보면서, 미국은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에게 매우 강력하고 가장 유의미하며 모든 곳에서 정치적 격동의 주요인인, 더 원초적인 집단 정체성들을 번번이 간과했다. 이런 사각지대는 미국 외교정책의 아킬레스건이었다. 
(9쪽)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모든 집단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런 느낌을 갖고 있다. 백인도 흑인도, 라틴계도 아시아계도, 남성도 여성도, 기독교도도 유대교도도 무슬림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진보도 보수도, 다들 자기 집단이 공격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받고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어느 집단이 자기가 위협에 처해 있고 억압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종종 다른 집단의 비웃음을 산다. 너희보다 우리가 받는 박해와 차별과 억울함이 훨씬 큰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정치적 부족주의다.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가 기록적인 수준의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양 정치 진영 모두에서 맹렬한 정체성 정치를 목격하게 됐다. 
(18쪽)

 

좌파의 많은 사람이 ‘포용적인’ 보편주의적 화법(가령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의 화법)에 등을 돌리게 됐다. 그런 보편주의적 화법이 실제 역사에서 주변화되어 온 소수자들의 억압과 그들의 경험이 가진 특수성을 지워 버리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이 새로운 배타주의는 인식론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외집단 사람은 내집단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신은 백인이니까X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여성이 아니니까 Y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퀴어가 아니니까 Z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문화적 적절성’ 개념은 ‘이것들은 우리 집단의 상징, 전통, 유산이니 외집단 사람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19쪽)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백인이 사리Sari나 기모노를 입는 것, 또는 흑인처럼 단단하게 땋은 머리나 레게 머리를 하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를 배격하는 다문화적인 개방성과 좌파적 사고의 표명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행동은 (이와 비슷한 어떤 행동도) 지배적인 집단의 일원이 타집단의 경계를 침범하는 ‘미세 공격’(microaggression)으로 여겨질 수 있다.
(20쪽)

 

모든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끼고 다른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일자리나 기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자격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집단 간의 제로섬 경쟁으로,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퇴락한다.
(225쪽)

 

‘분배의 정치’는 ‘인정 recognition의 정치’로 대체됐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가 탄생했다. 오벌린대학 교수 소니아 크룩스Sonia Kruks는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가 이전의, 즉 아이덴테리안 이전pe-identarian의 운동과 다른 점은 이제까지 인정을 부인당해 왔다는 바로 그 사실에 기반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성, 흑인, 레즈비언은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인정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보편 인류’에 통합되게 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라는 요구 또한 아니다. 이것은 그들을 다른 존재로서 인정하라는 요구다.”
(229쪽)

1990년대에 매우 획기적이었던 ‘교차성’ 개념은 오늘날 잘못 해석되고 있고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 2017년에 크렌쇼 본인이 말했듯이, 이제 그것은 사람들을 인종, 민족, 젠더, 성적 지향 등의 교집합에 따라 점점 더 특수한 하위 집단으로 계속 가르면서 '한마디로 스테로이드를 주입한 듯 초강력해진 정체성 정치’가 됐다.
오늘날 좌파 진영에서 정체성의 어휘는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현재 '젠더 퀴어’ ‘인터섹스intersex' '팬젠더pangender' 등 50개의 젠더 범주를 사용자들이 고를 수 있게 제시하고 있다. LGBTQ라는 약어의 사용도 그렇다. 원래는 LGB였는데, 선호되는 용어가 달라지고 누가 포함되어야 하고 누가 앞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GLBT였다가 LGBTI였다가 LGBTQQIAAP(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Questioning, Intersex, Alies, Asexual, Pansexual의 머리글자)가 됐다. 좌파는 늘 이전의 좌파보다 더 좌파적이고자 하므로, 이런 움직임의 결과는 누가 특권을 가장 덜 가지고 있는지 겨루는 제로섬 경쟁이 될 수 있다. ‘억압당하기 선수 올림픽'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대개 이런 과정은 진보를 분열시키고 서로 적대하게 만든다.
(232쪽)

 

대체로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재앙적인 패배를 겪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하나를 지금까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자본가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화교를 연상시켰다. 자본주의에서 주로 이득을 얻는 이들이 화교로 보였기 때문이다. 북베트남은 이 점을 반복적으로 프로파간다에 활용했다.
전쟁 시기 미국의 정책은 가뜩이나 호찌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화교의 부와 권력을 한층 더 증중가시켰다. 미국은 이 전쟁에 1000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 그중 현지인에게 들어가는 돈의 상당 부분이 화교에게 들어갔다.
(69쪽)

미군이 철수한 직후, 베트남전쟁이 심화시켰던 민족 갈등이 가장 극명한 형태로 나타났다. 1975년 9월,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는 ‘X1’이라는 코드명으로 자본주의 일소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진짜 인종 청소에 가까운 정책은 1978년 초 제2차 자본주의 청산 운동인 ‘X2가 시작되면서 벌어졌다.1 3월 23일에 3만 명의 준군사 조직이 사이공의 화교 지역인 쩔런을 에워싸고 그 안의 모든 집과 상점을 약탈했다. 약 5만 개의 화교 상점에서 물건과 귀중품이 징발됐고 화교와 경찰의 충돌로 거리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비슷한 습격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으며 화교는 공산당에서 숙청되고 정부 행정직과 군에서 축출됐다. 베트남 정부는 화교들을 인구 비례를 훨씬 능가하는 비중으로 체포하고 강제 이주시켰다.
수십만 명의 화교가 새로 생긴 경제지구에서 노동을 하다 숨지거나 국외로 도피했다. 1978년 말에는 25만 명이 넘는 화교가 베트남에서 쫓겨나고 3~4만 명가량이 바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들은 1970년대 말에 ‘베트남 보트피플’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 베트남 난민 상당수가 사실은 화교라는 사실은 거의 혹은 전혀 듣지 못했다. 예컨대 1978년에 탈출한 베트남 난민 중 85%가 화교였다.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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