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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계, 이곳] 우크라이나의 핵 중심 자포리자

딸기21 2022. 9. 2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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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리자 Zaporizhzhia.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주의 중심도시다. 드니프로 Dnipro(Dnieper) River 강변에 자리잡은 이 도시에는 올 초까지만 해도 71만명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발원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흐르는 2200km 길이의 강이 자포리자를 두 구역으로 나눈다. 강 가운데에는 호르티차 섬이 있다. 자포리자 사람들은 섬을 기점으로 넓은쪽 강물을 ‘옛 드니프로’, 좁은 쪽을 ‘새 드니프로’라 부른다. 자포리자는 ‘느려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드니프로 강의 물살이 느려지는 지점에 있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자포리자의 사진들을 찾아보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호르티차 섬과 오래 전 이 일대에 살았던 ‘자포리자 코사크’ 부족의 문화를 간직한 옛 성채의 아름다운 풍광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 자포리자는 드니프로 강변의 야경이나 풀밭에 에워싸인 중세의 성채가 아니라 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재래전이나 국지전을 넘어선, 무시무시한 ‘핵전쟁’과 함께 거론되는 지명이 돼버린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핵발전소가 있는 자포리자는 러시아군에 점령당했고, 핵발전소에서 자칫 폭발이라도 일어날 경우 유럽이 핵 구름에 휩싸일 것이라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A Russian all-terrain armoured vehicle is parked outside the Zaporizhzhia Nuclear Power Plant during the visit of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expert mission in the course of Ukraine-Russia conflict outside Enerhodar in the Zaporizhzhia region, Ukraine, September 1, 2022. REUTERS


2월 24일 러시아군이 침공해오자 우크라이나의 핵발전소 운영사인 에네르고아톰은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6기의 원자로 가동을 이틀에 걸쳐 중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3월 3일 러시아군 무장차량 10대와 탱크 2대가 발전소를 향해 왔고,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이 벌어졌다.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추진수류탄이 양측 사이를 날아다녔다. 4호 원자로에 칼리버 총탄들이 꽂혔고 6호에는 포탄이 날아들었다.

3월 12일, 러시아 에너지기구인 로사톰은 자포리자 원전이 자기들 소유라고 선언했다. 핵 사고를 우려해 ‘원격 감시’에 들어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인 직원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우크라이나군과 민병대의 산발적인 저항이 벌어졌고 자포리자 안팎의 위기는 갈수록 고조됐다. 9월 3일 IAEA 조사단이 방문해 사흘 간 상태를 점검했고, 11일 원자로는 ‘셧다운’됐다. 러시아는 원자로를 위협하는 것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라 주장했다.

[로이터] Russia says Zaporizhzhia nuclear plant water pipe damaged by shell

에네르고아톰은 이날 마지막까지 연결돼 있던 6호 원자로를 전력망에서 완전히 분리했다고 밝혔다. 이미 발전모드는 중단된 상태였지만 냉각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를 생산해왔는데, 이대로라면 원자로가 더 손상될 위험이 있어서 아예 끊어버리는 길을 택했다. 에네르고아톰에 따르면 이제 발전소의 냉각시스템은 디젤발전기에 의존해야 하고, 공장에 남아 있는 디젤 연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를 지시하고, 러시아군에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비무장지대'로 만들 것을 촉구했다.

한국일보



하지만 러시아군은 아랑곳 않고 19일 자포리자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두번째로 큰 유즈누크라인스크 Yuzhnoukrainsk의 핵발전소 일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자정이 넘은 밤에 불덩어리가 치솟고 불꽃이 쏟아져내리는 장면이 담긴 흑백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 공격을 러시아의 ‘핵 테러리즘’이라 불렀다.

IAEA는 앞서 15일 러시아에 자포리자 핵발전소 점령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35개국으로 구성된 IAEA 이사회는 이미 3월에도 러시아군의 핵발전소 장악을 앞두고 비슷한 내용의 결의문을 냈었다. 캐나다와 폴란드가 제안한 이번 결의안에 26개국이 찬성했고 7개국은 기권했으며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는 반대했다. 러시아 대표는 IAEA의 결의문이 '반러시아적'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1986년 세계 최악의 핵 참사가 일어난 체르노빌의 방사성 폐기물 시설을 탈취했다가 철수한 바 있다. 러시아군이 핵발전소를 군사인프라로 만들고 에너지 통제권을 장악하려 한다고 우크라이나는 주장한다.

[IAEA] The safety, security and safeguards implications of the situation in Ukraine

국경을 넘자마자 자포리자로 쳐들어간 것을 보면 러시아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자포리자는 핵발전소 외에도 열병합 발전소와 드니프로 수력발전소가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력 센터다. 철강, 알미늄, 항공기 엔진, 자동차 공장이 몰려 있는 산업단지이기도 하다. 이미 장악한 크름 반도와 돈바스에 에너지와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군에는 자포리자가 꼭 필요하다.


자포리자의 역사는 길다. 2000~3000년 전 스키타이인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있으며 하자르, 페체네그, 쿠만, 타타르, 슬라브족 등 여러 민족이 이곳에 발을 디뎠다. 한때는 동로마제국의 무역로였지만 폴란드와 모스크바 공국, 오스만제국 등의 국경이 만나는 변경지대로 여겨져온 세월이 더 길다. 크림(크름)타타르족의 공격을 막기 위한 러시아 제국의 요새가 지어졌고, 그 요새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롭스크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불렸다.

러시아와 오스만 두 제국이 ‘큐축카이나르카’ 조약을 맺어 세력다툼을 종결한 뒤 18세기 후반부터는 요새로서의 기능이 쇠퇴했다. 기독교 일파인 메노파 상인들이 폴란드에서 옮겨와 도시를 사들인 후 정착촌을 만들고 공장을 지었으나 격동의 혁명기를 거치면서 메노파는 미국 등지로 대거 이주해버렸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키흐카스 철교가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소비에트의 적군(赤軍)과 제국의 잔당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고, 1921년 붉은군대에 점령된 뒤 도시의 이름은 자포리자, 러시아식으로는 ‘자포로즈예’로 바뀌었다.

그후 자포리자의 역사는 산업화의 역사였다. 발전소와 공장들이 들어섰다. 드니프로 댐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한 알미늄 공장은 한때 유럽의 나머지 전체에서 나오는 것보다 많은 알미늄을 생산했다. 자포리즈스탈이라는 거대한 제철소가 위치한 신도시는 소츠고로드, 즉 ‘사회주의자들의 도시’로 불렸다. 관료들과 노동자들이 살았던 주거단지와 쭉 뻗은 도로들은 사회주의의 ‘미래 도시’를 상징했다.

자포리자의 옛 코사크 성채. WIKIPEDIA


아픈 일들도 많았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소련 정부는 산업장비를 시베리아로 철수시켰고 드니프로 댐을 폭파해 홍수를 일으켰다. 학자들은 당시 2만~10만 명이 물살에 쓸려간 것으로 추산한다. 2년 넘게 이어진 독일군의 점령 기간에 3만5000명이 숨졌고 6만명 가까운 이들이 독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댐은 재건됐고, 도시는 계속 발전했다. 20세기가 시작될 때 2만4000명이 살았던 곳에 2차 대전 직전에는 30만명이 살고 있었고 소련 말기에는 인구가 90만명에 육박했다. 그 중심에 핵발전소가 있었다. 1980년 공사가 시작돼 1985년부터 가동된 핵발전소는 러시아 로사톰의 자회사가 만든 가압경수로들로 이뤄져 있다.

[IEA] Ukraine energy profile

우크라이나는 전체 에너지 수요의 65%를 국내에서 충당한다. 석탄, 천연가스, 원유 등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를 채굴하고 있으나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자료를 보면 높은 자급률의 기둥은 핵발전이다. 지난해 전체 전력생산의 55.2%를 핵발전이 차지했으며 석탄화력 23.2%, 수력 6.8%, 천연가스 6.3% 순이었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미미했다. 특히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 전체에서 사용되는 전력의 5분의1을 생산해왔다.

핵발전 비중이 우크라이나보다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프랑스와 슬로바키아 밖에 없다. 천연가스를 줄이고 핵에 더욱 의존하게 만든 주범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 서방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러시아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방법으로 목줄을 죄곤 했다. 지난 30년 간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향한 싸움의 역사이기도 했다.

자포리자의 야경. WIKIPEDIA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동부 산업단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소련의 농업 생산기지 기능이 더 컸던 우크라이나가 경제를 키우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다. 전력망은 여전히 러시아와 이어져 있고, 유럽의 에너지 프레임워크에 통합되기 위한 협상은 길고 길었다. 모자란 석유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정정 불안과 부패는 에너지 자립의 경로를 흐트러뜨렸다. 러시아가 가스관을 잠글 때마다 우크라이나는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실상은 핵연료도 대부분 로사톰으로부터 공급받았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미국 웨스팅하우스라는 새 공급처를 뚫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존엄혁명'이라 부르는 2014년의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하고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탈러시아'를 제1과제로 내건 우크라이나 정부는 에너지 자립도를 더욱 높였다.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는 핵연료가 그 후로는 30%를 웃돌았다. 40%는 스웨덴으로부터 받는다.

[윌슨센터] 30 Years of Ukrainian Independence and Energy Dependence

정부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러시아 전력망과의 연결을 끊고 유럽연합(EU) 전력시스템에 가입하기로 돼 있다. 다만 EU 시스템과 동기화를 하려면 전력을 수입하지 않고 일정 기간 자체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고질적인 부패와 낡은 설비에 더해 전쟁까지 맞은 우크라이나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디젤유 수입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더 요원하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분석에 따르면 20년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석유 제품을 거의 자급자족했으나 지금은 6대 정유소 중 한 곳만이 가동되고 있다. 설비가 낡고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다.


그러니 에너지 독립의 중심에 핵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원자로 가동 수, 총 용량, 생산 전력에서 세계 7위, 유럽 5위다. 원전을 운영하는 에네르고아톰은 3만8000명을 고용한 거대 기구이지만 부패 스캔들로 얼룩졌고, 빚이 늘어 지난해에는 웨스팅하우스로부터 핵연료를 받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예정대로라면 새 핵발전소를 서너 곳에 더 지을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앞날이 어둡다. 게다가 자포리자마저 러시아군에 넘어갔다. 이미 예견된 위험이기도 했다. 2014년 이웃한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계 민병대와 정부 간 무력충돌이 벌어지자 발전소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왔고, 실제로 그 해 친러시아 민병대가 핵발전소에 접근하려 시도한 일도 있었다.

체르노빌의 악몽을 안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핵발전 대국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더 큰 역설은 이 나라가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선택한 핵발전이야말로 러시아와의 질기고 질긴 인연을 상기시키는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소련의 핵발전 역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련의 핵발전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냉전 시기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출발했다. 소련과학아카데미 원장을 지내면서 소련과학기술계를 대표했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키이우 출신이었다. 1940년대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체르노빌 원자로 설계를 주도한 인물이 그였다. 소련 핵프로그램과 군산복합체를 이끌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중형기계제작부 수장 예핌 슬랍스키도 우크라이나의 마키우카 태생이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핵발전의 중심지로 택했던 것이다.

The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is shown here in May 1986, a few weeks after the disaster. /Getty Images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히스토리>라는 책에서 참사 이전부터 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계의 갈등이 이어져왔다고 지적한다. 체르노빌의 원전도시 프리퍄트에서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의 혼합어인 일종의 ‘퓨전 언어’ 키르지크가 널리 쓰였지만 러시아에서 온 기술자들과 우크라이나 ‘현지인’ 노동자들이 수시로 충돌해 경찰이 상주하며 감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체르노빌 참사는 8월 말 타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생전에 털어놓은대로 소련이라는 거대 국가의 실체를 가리던 안개를 걷어내고 관료주의와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1986년의 그 사고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러시아 감정을 극적으로 높였으며 몇년 뒤의 독립에도 큰 영향을 줬다. 사고 처리를 보며 환멸을 느낀 공산당 기득권 세력이 갓 태동한 야당이 한 목소리로 모스크바에 맞선 것이다.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으며 이는 몇 주 뒤 소련의 공식 해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 추산에 따르면 이미 7만~8만명의 병력을 잃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한 채 동남부를 쪼개어 삼킬 태세다. 이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23일부터 27일까지 4개 주에서 러시아로의 병합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돈바스와 루한스크,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으로 점령한 헤르손, 그리고 자포리자가 대상 지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TV 연설에서 “네 지역의 다수 주민들이 내린 결정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은 그 지역 주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존엄혁명’ 당시에 자포리자에서는 반러시아를 외치는 시민 4500명이 정부청사를 점령했고 2016년에는 자포리자 시 의회가 ‘탈공산화법’을 통과시켜 도로와 행정구역들의 이름이 우크라이나식으로 바뀌었다.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기념비는 파괴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토의 15%인 9만평방킬로미터를 점령하고 있지만, 4개 주 가운데 러시아가 완전히 통제하는 곳은 없다. 푸틴이 주장하는 ‘주민들의 뜻’은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군사적 대결 위험성을 끌어올릴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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