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그래도 중국" 베이징에 간 베트남 총비서와 독일 총리

딸기21 2022. 11. 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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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다. 예상됐던 일이지만 경제가 커진 것과 거꾸로 가는 중국의 과거회귀는 놀라울 정도다. 민주화의 전망이 사라져가는 중국을 국제사회가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두 나라 정상이 베이징의 문을 두드렸다. 한 사람은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이면서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라온 베트남의 실권자이고, 또 한 사람은 독일 총리다. 오랜 악연을 뒤로 하고 최고의 환대를 받은 베트남 정상의 모습과 독일 총리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유럽의 논란은 ‘시진핑의 중국’을 마주한 세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응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베이징에 도착하자 중국은 21발의 예포로 환영했다. 양국 정상이 마스크 없이 베이징 인민대회당 환영식에서 만나 악수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TV로 중계됐다. 쫑 주석은 시 주석 3연임이 결정된 이후 베이징을 맨 먼저 찾은 외국 정상이다. 쫑 주석 쪽에서 보자면 2019년 2월 캄보디아 방문 뒤 3년여 만의 외국 방문이다.


Xi Jinping, general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Central Committee and Chinese president, awards Nguyen Phu Trong, general secretary of CPV Central Committee, the Friendship Medal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Beijing, October 31, 2022 Photo: Xinhua


이튿날 열린 두 정상의 회담은 ‘전략적 소통’ ‘정치적 상호신뢰’ ‘새로운 단계의 동반자 관계’ ‘진정한 다자주의’ ‘사회주의의 왕성한 성장’ 등 미사여구로 가득했다. 그 내용은 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중국해 관련 분쟁을 관리하고 공동개발을 모색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00년 만에 한번 맞을까 한 복잡한 세계정세와 역사적 변화 속에서 두 나라 관계의 기조를 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에는 중국이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이며 중국에는 베트남이 6번째 교역국이자 아세안(ASEAN)에서 가장 큰 거래 상대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난해에도 양국 교역액은 1658억달러에 이르렀다. 베트남은 수출의 17%, 수입의 32%를 중국에 의존한다. 베트남 국영통신 VNA에 따르면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560억달러로 20년 새 37배로 커졌다. 베트남이 수입하는 기계와 생산자재 94%가 중국에서 온다.


그래픽 닛케이아시아 asia.nikkei.com


교역을 넘어 베트남은 중국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리를 굳히려 한다. 베트남은 시 주석의 글로벌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와 연결된 '두 개의 회랑, 하나의 벨트(TCOB)'라는 계획을 갖고 있다. 2004년 판반카이 베트남 총리가 중국에 가서 제안한 것이다. 중국 쿤밍과 난닝을 각각 하노이와 회랑으로 이어서 공동 경제권을 만드는 계획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베트남 국민들의 반중국 정서가 겹쳐 이제껏 큰 진전은 없었다. 그동안 이뤄진 인프라 프로젝트는 중국 수출입은행이 돈을 댄 하노이 지하철 공사 정도였다. 이번에 두 정상은 '일대일로'와 '두 개의 회랑' 협력을 본격화하고, 하노이에서 베트남 항구도시 하이퐁을 거쳐 중국 국경지대로 이어지는 철도 계획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메콩강 물분쟁을 누그러뜨릴 수자원 협력도 약속했다.

Xi Jinping, general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Central Committee and Chinese president, holds talks with Nguyen Phu Trong, general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Vietnam Central Committee, at the Great Hall of the People in Beijing, capital of China, Oct. 31, 2022. (Xinhua/Yao Dawei)


그러나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경제협상보다는 정치적 선언의 의미가 더 크다. 중국과 베트남은 2008년 ‘포괄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지만 오랜 불신과 영토 분쟁의 역사가 장애물이었다. 그런데 국제정세가 시끄럽고 시 주석 ‘장기집권 체제’가 눈총받는 시점에 베트남 지도자가 중국에 밀착한 것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평화적 진화'와 '색깔혁명'에 저항한다"고 못박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VN익스프레스, ‘Vietnam Party chief welcomed with 21-gun salute in China’

'평화진화론(平和進化論)'은 무력을 쓰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냉전 시절인 1950년대에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주로 소련을 겨냥해 공식화한 이론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인식이 미국의 대중국 관계 밑에도 깔려 있다고 본다. 미국이 서구의 정치사상과 생활양식을 퍼뜨리고 중국 내 불만 집단들을 부추겨 공산당에 도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색깔혁명’은 옛소련에서 갈라져나온 국가들에서 잇달아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가리킨다. 중국은 이런 시민혁명들도 ‘외세의 선동’으로 본다.

Xi Jinping, general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Central Committee and Chinese president, and Nguyen Phu Trong, general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Vietnam Central Committee, view the cooperation documents signed by the two sides in Beijing after their talks on Oct. 31, 2022. Xi Jinping held talks on Monday with Nguyen Phu Trong at the Great Hall of the People in Beijing. (Xinhua/Yao Dawei)


베트남공산당의 시각도 비슷하다. ‘도이머이’ 개혁으로 경제를 키웠지만, 그에 비례해 커진 자유화 요구를 억누르기 위해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1944년생, 얼마 안 남은 '전전 세대' 지도자인 쫑 총비서는 개혁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며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보수파다.

2011년부터 공산당 총비서를 맡아왔고 2018년부터 3년간은 정부 수반인 국가주석도 겸했다. 2021년 국가주석 자리를 경제 테크노크라트인 응우옌쑤언푹에게 내줬지만 당 총비서직은 붙들고 있다. 관행적으로 2연임에 그치던 당 지도자 자리를 내놓지 않은 것도 시 주석과 비슷하다. 지난해 2월 13차 베트남공산당 당대회 뒤 그가 3연임에 대해 내놓은 설명은 “나이가 많아 쉬고 싶지만 당이 나를 선출했으니 당원으로서 의무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글로벌타임스는 두 정상이 “사회주의 체제의 안보와 공산당의 지배권을 수호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강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선전했지만 장기집권에 대한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경제구조 변화.


세계은행, 'Vietnam: Connecting value chains for trade competitiveness’

전통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 지도자들의 만남 형식으로 외교관계를 강화해왔다. 시 주석은 2017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겸해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19차 당대회 뒤 첫 외국 방문지로 택한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나라의 밀착을 불편하게 보는 나라들이 유독 많을 듯 싶다. 무엇보다 미국이 경계할 것이 뻔하다.

베트남은 오래 전부터 '3불 정책’이라 불리는 외교안보 전략을 갖고 있었다. 강대국과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외국 군사기지를 쓰지 않고,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쓰거나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국방백서에서는 이를 변형한 이른바 '4불1의존' 정책을 내놨다. 이전의 3불에 ‘한 나라의 편을 들어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추가하면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필요할 경우 다른 나라와 적절히 국방·군사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고려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후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베트남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렸다.

VNA, ‘Vietnam, China look towards stronger trade ties’
CSIS, ‘VIETNAM’S 2019 DEFENSE WHITE PAPER: PREPARING FOR A FRAGILE FUTURE’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을 잡아당겨왔다. 마크 크내퍼 주베트남 미국 대사는 베트남을 "진실하고 동등한 파트너"라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남중국해 분쟁에서 베트남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이번 중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동맹이 되지는 않을 뜻을 명시했다. 미국과 힘들게 화해하고 30년 가까이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걸어왔음에도 베트남은 결국 중국 쪽으로 기운 것이다. 베이징과 하노이 사이의 껄끄러운 문제들이 모두 풀릴 리는 없지만, 총비서의 선택은 베이징이었다.

The presentation of a new Volkswagen car at the Shanghai International Automobile Industry Exhibition in China in 2021  Foto: HECTOR RETAMAL / AFP


쫑 총비서에 이어 베이징에 간 사람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다. 올해는 양국 수교 50년이고 리커창 중국 총리가 초청을 했으니, 중국에 갈 명분은 있었다. 전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 때부터 독일은 중국과 가까웠다. 메르켈은 16년 집권 동안 중국에 12번 갔고, 시 주석은 그를 '중국 국민의 친구'라고 불렀다. 정당은 다르지만 메르켈 정부의 경제 책임자였던 숄츠도 중국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히 경제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2450억 유로로, 중국은 6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었다. 숄츠는 이번 하루짜리 방문에 폭스바겐과 바스프, 지멘스, 머크 경영진을 포함한 재계 대표단을 동반했다.

슈피겔, ‘German Companies Ignore Major Risks in China’

숄츠 총리는 독일 최대 항구인 함부르크 터미널 지분 25%를 중국 해운사가 인수하는 것을 최근 승인했다. 연립정권 내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이 모두 반대하는데도 총리가 나서서 밀어붙였다. 숄츠의 잇단 행보에 유럽연합(EU)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에 EU의 통합된 신호를 보내야 한다"면서 베이징에 가려면 함께 가자고 제안했는데 숄츠 총리가 거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슈피겔


독일 시사잡지 슈피겔은 "2005년부터 독일과 중국의 교역량은 4배로 늘었으나 그 기간 중국은 전면적인 독재체제로 바뀌었다"며 "시장을 열어 개혁으로 이끈다는 서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독일 기업들 분위기는 다르다. 녹색당 소속인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장관이 지난달 기업 경영자들을 모아놓고 중국과의 '순진한 거래'에 대해 경고했으나 독일산업연맹(BDI)과 기업 대표들은 "중국 시장은 단순히 그 규모 때문에라도 꼭 필요하다"며 맞섰다.

특히 독일 대기업들은 중국에 큰 판돈을 걸어놨다. 일례로 폭스바겐은 중국에 30여개 공장, 9만명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이 회사 자동차 3대 중 1대가 중국에서 팔린다. 유럽과 미국 시장이 침체된 동안에도 올해 중국 내 자동차 판매는 15% 늘었다. 중국이 소수민족 위구르인들을 탄압하고 있는 신장에서 공장을 철수시키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폭스바겐은 듣지 않았다. 위험부담이 없지는 않다. 대만은 세계 마이크로칩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다. 중국이 대만을 강제합병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독일 자동차 업계는 기로에 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당장 중국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도이체벨레, 'Strain showing after 50 years of Germany-China relations'
화학회사 바스프는 유럽 경제가 정체돼 있고 에너지값은 비싸고 규제는 많다며 유럽 내 시설을 줄이고 중국 제조기반을 더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바스프의 마틴 브뤼더뮬러 경영자는 “중국 때리기를 멈추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바스프는 중국 남부 도시 잔장(湛江)에 100억 유로를 들여 최첨단 공장을 지으려 한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10년 넘게 홍콩에서 바스프 사업을 이끈 브뤼더뮬러는 ‘주중 사흘을 중국에서 보내는 사람’으로서 "중국 경계론은 너무 많이 들었다"며 일축한다.

슈피겔


안보와 가치 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나라와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 사이에서 독일이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도이체벨레는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을 “지뢰밭으로의 당일치기 여행”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그 지뢰밭을 제 발로 찾아가는 나라들은 줄을 서 있다. 시 주석은 숄츠에 이어 파키스탄과 탄자니아 정상을 베이징에서 잇달아 만난다. ‘가치’와 ‘돈’ 사이, 압제와 민주적 가치 사이에 접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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