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석유에서 햇빛으로, 걸프의 변신

딸기21 2022. 12. 3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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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한 2022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며 한 해를 보낸다. 전쟁 속에서 세계는 안녕했을까. 남의 나라 전쟁보다는 코로나 터널이 끝나가는 것에 한 숨 돌리며 안심한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비애에 시민들은 공감과 연대를 보냈으나 국가들 간에는 이 전쟁을 놓고 힘겨루기 혹은 편가르기가 벌어졌다. 그래도 에너지 대란이나 식량대란은 오지 않았다. 유럽은 난방비가 올라가 추운 겨울을 맞았다지만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대신에 ‘탈탄소, 탈러시아’로 더 빨리 더 굳세게 가려는 듯하다.


에너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의 핵심 관심사가 되고 지정학적 변수가 된다. 이를테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밀착 같은 것들. 지난 3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중국 동북부에 석유화학단지를 짓는 계약을 마무리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를 방문한 12월 아람코와 중국 사이의 협정 목록은 더 길게 늘어났다.

 

Sunset shot showing a row of electricity pylons in the desert, Dubai, United Arab Emirates (Getty Images)


카타르에너지는 중국 시노펙과 11월에 가스공급계약을 맺었다. 27년 동안 중국에 연간 40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판다고 한다. 카타르에너지는 같은 시기 독일과도 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해왔던 논의다. 하지만 카타르의 가스가 독일에 도착하는 것은 2026년이라고 하니 그새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지난 9월 러시아 가스의 대안을 찾는 독일과 손을 잡았다.


이스라엘도 제법 바쁘다. 이스라엘의 뉴메드에너지는 12월 모로코 정부와 해안 에너지 탐사에 합의했다. 2020년 두 나라가 관계를 정상화한 뒤 계속 협상해왔던 사안이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건넨 선물인 ‘아브라함 협정’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 하겠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도 지난 10월 오랫동안 분쟁을 빚어온 해상 국경에 합의했고 그 이후 가스 탐사 계획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거대 에너지기업인 토탈이 탐사를 맡았다. 토탈과 그 파트너인 이탈리아 ENI는 2023년 1분기 중에 탐사지를 정하고 6월까지 환경영향 연구를 마칠 계획이다.

 

12월 8일 사우디 리야드의 야마마 궁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영접을 받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Royal Court of Saudi Arabia/Anadolu Agency/Getty Images


유가는 올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직후인 3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압박 속에 산유국들은 생산을 약간씩 늘렸지만 기름값은 6월에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러시아 등 비회원국들이 결합된 OPEC+는 지난 10월 감산을 결정했고 12월에도 삭감을 유지했다. 그런데도 브렌트유 값은 이달 초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올들어 최저가다. 2023년 유가는 중국이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2월에 다시 만날 예정인 OPEC+의 공급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의 에너지 동향은 대충 이렇다.


석탄은 세계에 고르게 분포하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는 몇몇 지역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지정학의 키워드가 됐다. 20세기 내내 그랬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는? 햇빛과 바람이 자원이 되는 시대다. 태양광 패널들로 꽉 찬 발전시설을 재래식 발전소와 대비시켜 ‘솔라파크(햇빛공원)’라고들 부른다. 풍력터빈이 줄지어선 곳은 ‘윈드팜(바람농장)’이다. 유전이나 화력발전소보다는 훨씬 멋진 이름들이다. 

 

[알자지라 연구센터] Transforming the Renewables Sector in the Gulf: The Evolving Strategies of Qatar, Saudi Arabia and the UAE

 

전쟁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도 이 흐름은 막지 못한다. 심지어 화석연료의 중심인 걸프도 녹색을 향해 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조 바이든 정부로 바뀌고, 팬데믹이 세계 산업을 주춤하게 만들고,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 세계가 시끄러웠던 동안에도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면 걸프의 3대 에너지수출국인 사우디, UAE와 카타르가 녹색경제를 향해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studies.aljazeera.net

 

2018년 11월 사카카에서 300MW 규모의 첫 태양광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사우디는 2021년 4월부터 올 11월까지 태양광 프로젝트 8개, 수소 프로젝트 5개, 지속가능한 담수화 플랜트 3개 등에 투자했다.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기금(PIF)이 올해 발표한 2060 메가와트의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건설계획도 그 중 하나다. 이 기금은 지난달에는 사우디 최초의 전기차 회사 CEER를 출범시켰다. 

 

사우디 민간회사 ACWA파워는 이집트의 수에즈에 10GW 풍력단지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사우디 기업 알파나르는 수에즈운하 경제구역에 녹색수소공장을 짓는 계약을 맺었다. 사우디는 UAE 국영 재생에너지 회사 마스다르의 힘을 빌려 리야드에서 900km 떨어진 곳에 두마트 알잔달 풍력단지를 지었는데, 대규모 시설을 돌릴 수 있는 중동 최초의 '유틸리티 규모' 풍력발전소다. 지난해 이미 발전을 시작했고 목표치인 400MW까지 용량을 끌어올리는 일만 남았다.

 

studies.aljazeera.net

 

UAE도 두바이 지도자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이름을 딴 태양광 단지와 샴스1 솔라파크 등을 지었지만 특히 해외 투자가 눈에 띈다. 호주에 폐기물을 에너지화하는 시설을 짓고 모리타니와 요르단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태양광 프로젝트 계약을 했다. 영국, 몬테네그로, 미국, 세르비아, 오만, 폴란드, 우즈베키스탄의 풍력발전에도 투자했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와 BP는 녹색 수소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특히 수소경제 관련해서 걸프국들은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마스다르가 11월 아프리카를 잠재적인 수소에너지 허브로 평가한 투자 계획 보고서를 발표하고 탄자니아 투자를 결정한 것이 그런 예다. UAE는 이밖에도 천연가스를 메탄올로 전환하는 가스액화플랜트, 화합물을 생산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천연가스를 이용한 블루암모니아 생산설비 등으로 '탈탄소 이니셔티브'를 추진 중이다. 지난 11월 UAE와 미국은 2035년까지 1000억 달러를 들여 청정에너지 100GW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는 블루암모니아를 수출하고 있다.

 

[알모니터] 2022 in review: Saudi-China, Qatar-Germany deals cap Middle East's energy developments

 

사우디는 2021년 말 ‘2060년 탄소배출 순제로’ 목표를 제시하면서 전력의 절반은 가스로, 절반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UAE의 목표는 사우디보다 10년 앞서, 걸프 국가 중 최초로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것이다. 

 

카타르는 2015년부터 국가개발전략의 성과와 목표를 유엔의 목표와 일치시켜 왔다.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라는 이름으로 유엔이 정한 247개의 목표 가운데 이미 199개를 달성했다고 자랑한다. 월드컵의 화려한 축포 속에 이목을 끈 카타르는 ‘재활용 경기장’ 974스타디움을 선보이며 세계에 기술력과 의지를 과시했다. 남은 목표들 중에는 2030년까지 2~4GW의 태양광발전을 이루고 전체 자동차의 10%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것 등등이 들어 있다. 

 

카타르의 알카르사 풍력단지. www.longi.com

 

지난해 초 카타르는 2030년까지 연간 7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획, 저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해 8월 카타르에너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감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올들어 2035년까지 연간 11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카타르는 프랑스 토탈, 일본 마루베니와 함께 지을 카타르 최초의 유틸리티 규모 솔라파크를 비롯해 수소, 블루암모니아, 탈탄소 프로젝트 등을 지난해와 올해 줄줄이 발표했다. 알카르사 태양광 발전소는 이미 올해 가동을 시작했다. 

 

걸프의 3대 에너지수출국인 사우디, UAE와 카타르 사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시끄러웠다. 사우디와 UAE가 한 편을 먹고 카타르에 금수조치까지 내렸다. 그 기간 두 나라는 LNG 시장에서 카타르의 위상을 흔들려 애썼다. 그러다가 화해를 한 것이 지난해 초였고, 그 뒤에 앞서거니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렸다. 더이상 카타르의 가스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어진 탓도 있지만, 지구적인 변화가 리뉴어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

 

특히 2021년 중반 이후 3개국 모두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수와 투자액이 늘어난 것이 눈길을 끈다. 알자지라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1년 반 동안 카타르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전체 에너지 투자의 2%에서 8%로 늘렸다. 사우디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거의 0%에서 25%로 증가했고 UAE는 3%에서 43%로 뛰어올랐다. 

 

Saudi Arabia has reporedly awarded its $500m Dumat Al Jandal wind project to a consortium of EDF and Masdar. www.arabianbusiness.com

 

저들의 투자 목록을 쭉 늘어놓고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사실 방대한 프로젝트 목록 가운데 얼마나 달성될 지 확신할 수는 없다. 사우디의 숱한 계획들 중 청사진으로만 그친 것들도 많다. 2020년까지 5GW의 태양에너지 용량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달성하지 못했고, 알카프지에 첫 태양광 담수화 플랜트를 가동하겠다던 것도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전, 가스전이 표시된 지도만 놓고 중동 지정학을 논하던 시대는 갔다. “내 편에 줄 서라”라는 미국의 명령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에너지를 무기삼아 세계를 위협하려는 푸틴의 속셈도 노욕으로 보일 뿐이다.

 

독일의 루르-자르는 유명한 석탄 지대, 프랑스의 알사스-로렌 지방은 철광석 산지였다. 산업발전에 중요한 자원들이 하필이면 국경에 몰려 있어 몇 차례 땅뺏기 전쟁이 벌어졌다. 2차 대전 뒤 이 지역을 평화지대로 바꾼 것은 정치인들의 선견지명과 강력한 의지였다. 철과 석탄을 함께 관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었고 이 기구가 발전해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 됐다. ECSC의 아이디어를 낸 프랑스 정치인 로베르 슈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유럽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유럽은 굳게 단합할 것이다.”

 

욕심과 싸움을 단합과 번영으로 바꾼 결정이었다. 전쟁과 기후위기에 흔들리는 지구, 지금의 국제사회가 슈망의 예언과 같은 지혜를 모아낼 수 있을까. 덧붙여 또 하나의 걱정이라면, 혹시나 우리 정부만 딴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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