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10/8
서둘러 다 읽고 출장 갔다 왔더니 아세모글루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탔네? ㅎㅎ 그동안 출간된 책들을 재밌게 읽은 사람으로서 어쩐지 반갑다.
"공유된 번영"의 사례들은 기술 진보 자체에 내재된 요인에 의해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던 결과가 아니었다. 공유된 번영은 기술 진보의 방향과 사회적으로 이득을 분배하는 방식이 협소한 지배층의 이익에만 복무했던 제도적 배열에서 멀어졌을 때, 오로지 그랬을 때만 생겨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상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다시 해야 한다.
-18-19
생산성 증가가 반드시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1인당 산출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꼭 기업이 더 많은 노동자를 채용하고자 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고용을 늘릴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은 한계생산성이다. 이는 한 명의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할 때 그 노동자가 추가적으로 기여할 산출량(추가적인 생산량 또는 추가적인 고객 서비스의 양 등)을 말한다. 한계생산성과 평균생산성은 다른 개념이다. 평균생산 성이 늘어나도 한계생산성은 변하지 않거나 심지어 감소할 수도 있다.
자동화는 평균생산성을 높이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
-32-33
공유된 번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테크 놀로지의 이득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분배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41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는데 (로봇을 통한 자동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업무의 창출이다. 자동차 업계를 보면, 1910년대부터 시작해 헨리 포드의 지휘하에 생산 방식이 대대적으로 재조직되면서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량생산과 어셈블리 라인 시스템은 디자인, 장비 작동, 사무 관리직, 기술직 등에서 새로 운 업무를 대거 창출했고 이로써 자동차 업계의 노동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지난 두 세기 내내 새로운 업무의 창출은 고용과 임 금이 증가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새로운 업무의 창출은 생산성 증가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었는데,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생산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재조직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실업과 관련해 리카도와 케인즈가 말한 최악의 두려움이 현실화되지 않은 이유는 이와 같은 새 업무의 창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35
독재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2018년에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사용자들에게 "의미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제공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수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실에서 이것이 의미한 바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언론 기관이나 잘 확립된 기성 브랜드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등 다른 사용자 들이 올린 포스팅을 더 상위에 노출한다는 것이었다.
주요 결과 중 하나는 가짜 정보와 정치적 양극화의 증 폭이었다. 알고리즘을 바꾸기로 한 결정은 저커버그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등 몇몇 최고위 경영자와 엔지니어가 내렸고, 이들은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민주주의의 쇠락으로 영향을 받게 될 시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과 페이스북의 의사결정을 추동한 요인은 무엇이 있는가? 둘 다 과학과 테크놀로지 자체에 내재한 속성에 의해 내려진 결정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통제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통제하기 위해,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데이터와 사회적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사용되었다.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이 놓친, 그리고 275년의 인간 역사가 더 지나고 나서 H. W. 웰스가 깨달은 지점이다. 테크놀로지는 통제의 문제이며 자연에 대한 통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제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48-49
설득권력
흑인의 기회를 확대하려는 폭넓은 움직임의 일환으로, 1870년까지 흑인들은 100만 달러가 넘는 교육 자금을 모금해 지출했다. 경제적인 향상은 정치적인 대표성 확대로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르게는 1870년대 후반기부터 흑인의 정치적 • 경제적 권리가 다시 제약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밴 우드워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부에서 극단적인 인종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전에는 아니었다가] 그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었다기보다는 [내내 존재했던] 그 입장이 표출되지 않게 막고 있던 반대쪽의 힘이 느슨해졌기 때문이었다."
맹렬한 논란이 일었던 1876년 대선에서 헤이즈-틸든 타협이라고 불리는 이면 합의가 이뤄지면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힘이 크게 느슨해졌다.
남부는 "재건" 시대에 이어 "복원Redemption" 시대라 불리는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남부 백인들이 연방의 개입과 흑인 해방 세력이 바꾸어 놓은 것으로부터 남부를 "복원Redeem"하겠다고 나선 시대를 말한다. 남부의 백인 지배층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W.E. B. 두 보이스의 표현을 빌리면, 남부는 "단순히 흑인을 위협하기 위한 군사 캠프"나 다름없게 되었다.
-130-131
켈트너와 동료들은 권력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이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증근거를 방대하게 발견했다.
일련의 연구에서 켈트너와 동료들은 가격이 낮은 차를 모는 운전자와 비싼 차를 모는 운전자의 행동을 비교해 보았는데, 비싼 차들은 교차로에서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에 다른 차 앞으로 끼어드는 확률이 30퍼센트가 넘는 반면, 비싸지 않은 차는 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보행자에 대한 행동에서는 차이가 심지어 더 컸다. 가장 비싼 차는 45퍼센트 이상이 보행자보다 먼저 지나간 반면 가장 비싸지 않은 차는 거의 그러는 법이 없었다.
연구팀은 [시나리오를 주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지 묻는 방식으로] 피실험자들의 자기 보고를 분석한 결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답변에 이기적인 이익 추구를 암시하는 내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놀랍게도, 피실험자가 자신의 지위가 더 높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가령, 돈이 더 적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 보게 하는 식으로) 속임수 등 비윤리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었다.
-140
두 가지 면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설득 권력도 강 압 권력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 첫째, 설득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으로 고통받게 될 사람이나 그 결정이 일으킬 우발적 피해 에 신경 쓰지 않는 쪽으로 이미 스스로를 설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설득 권력을 가진 사람이 편향된 선택을 내릴 때는 폭력에 의지하는 사람이 내리는 선택보다 덜 가시적이고 덜 자명해서, 그것을 포착하고 고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이 비전의 덫이다. 어느 비전이 지배적이 되면 그것의 족쇄를 떨쳐버리기 어려워진다.
-150
이윤 추구와 주주 가치 극대화가 공공선이라는 새로운 비전이 사회의 상당 부분에 걸쳐 주된 조직 원리가 되었다.새로운 비전은 "디지털 유토피아" 비전이었고, 이 유토피아는 톱다운식 소프트웨어 설계로 노동을 자동화하고 통제하는 것에 기반한 유토피아였다.
-370
1980년대 무렵이면 기업에 좋은 것, 심지어는 거대 기업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견해가 상식처럼 되어 있었다.
지배적인 사고에 이와 같은 역전이 발생한 데는 정책 혁신가와 단체들의 맹렬한 노력이 있었다. 보수 성향의 잡지 『내셔널 리뷰』가 이러한 노력의 사상적· 학술적 지침 역할을 했다. 영향력 있는 기업계 단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과 상공회의소는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운동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 기업에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되는지에 대한 일관된 메커니즘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생산성 밴드왜건을 핵심 논리로 하되 이를 더 확장한 메커니즘이 차차 개발되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트리클 다운" 이론에 도달하게 된다.
-385-386
강경한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의 산실도 존재했는데, 시카고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의 후버 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1970년대에 더 응집되고 일관성 있게 결합하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몇몇 학자들이 전후의 정책적 합의를 비판하는 저술을 펴냈고 이 저술들은 널리 인기를 얻었다. 하이에크는 1930년대 초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정경대학에 자 리를 잡고 여러 개념을 더 발달시켰다. 1950년에는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왔고, 이곳에서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하이에크의 시장 이론에서 특히 중요했던 부분은 탈중심적 시스템인 시장이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더 잘 사용한다는 견 해였다.
-388
규제 없는 시장이 국익과 공공선을 위해 작동한다는 개념은 정책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법의 토대가 되었다. 이 새로운 합의에 아직 부족 한 것은 기업 경영자들을 위한 명확한 제언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무엇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것인가? 해답은 두명 의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를 통해 나타났다. 한 명은 밀턴 프리드먼이고 다른 한 명은 조지 스티글러다.
프리드먼의 가장 중요한 저술은 학술지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1970년 9월에 실린 짧은 글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목은 대담하게도 "프리드먼 독트린"이었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높여 주주에게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데만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올리는 것”이었다.
프리드먼 독트린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일거에 이 칼럼은 많은 돈을 버는 거대 기업 들이 랠프 네이더 등이 묘사한 것 같은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이 라고 보는 새로운 비전을 고착시켰고, 이윤을 올려야 한다는 명백한 명령을 경영자들에게 제시했다
이 독트린은 또 다른 각도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경제학자 마이클 젠슨이 상장기업 경영자들이 주주에게 충분히 헌신하지 않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영예화할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 낭비적 인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젠슨은 경영자들이 받는 보상을 그들이 주주에게 창 출해 주는 가치와 연동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결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자에게 막대한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주어서 그들이 주가를 올리는 데 매진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젠슨의 수정 이론으로 한층 더 보완된 프리드먼 독트린은 주주 가치 혁명"을 가져왔다. 기업과 경영자는 회사의 시장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온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389-390
이 독트린은 두 개의 추가적인,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합의 를 갖는다. 첫째, 이것은 돈을 벌기 위한 모든 종류의 노력을 정당화했다. 이 논리에서는 수익을 높이는 것이 곧 공공선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 독트린과 최고경영자에게 부여되는 후한 스톡옵션의 결합은 몇몇 경영자들이 회색 지대로, 그다음에는 위법한 지대로 들어가도록 유인을 제공했다.
둘째, 이 독트린은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세력 균형을 이동시켰다. 좋은 경영자가 꼭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들만을 향해야 했다. GE의 잭 웰치 등 수많은 저명한 경영자들이 이 조언을 귀담아들었고 임금 인상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했다.
프리드먼 독트린의 영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경영대학원일 것이다. 1970년대에 경영자의 "전문직화"가 시작되면서 경영자 중 경영대학원을 나온 사람 수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이면 상장기업 최고경영자의 25퍼센트 정도가 MBA 학위가 있었고
2020년에는 43퍼센트가 넘었다.
경영대학원 출신 경영자들은 회사 경영에, 특히 임금 설정에 프리드먼 독트린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경영대학원 출신 경영자들은 비경영대학원 출신 경영자들에 비해 임금 인상을 중단한 경우가 더 많았다. 미국과 덴마크에서 MBA가 아닌 경영자들은 부가가치 증가분의 20퍼센트를 노동자와 공유했는데, MBA인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이 숫자가 제로였다. 또한 이들은 MBA가 아닌 경영자들에 비해 스스로에게 막대한 보상을 주는 경향도 더 크다.
-391-392
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명제 중에 "애로 대체 효과"라는 것이 있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케네스 애로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 개념은 이후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제시한 "혁신가의 딜레마" 논의를 통해 더 널리 알 려졌다. 이 이론에 따르면 거대 기업은 소심한 혁신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규모가 큰 기업이 정치적 • 사회적 권력에 미치는 영향이다. 연방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갖거나 아니면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된 사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395
(여기서 크리스텐슨을 만나니 반갑다!)
1960년대부터도 몇몇 경제학자들은 거대 기업의 권력 을 제한하려 하는 반독점 조치의 효용에 의구심을 표하는 개념을 정식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학자가 조지 스티글러다. 그는 규제와 마찬가지로 반독점 조치도 정부의 간섭이라고 보았다. 스티글러의 아이디어는 경제학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법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로버트 보크였다. 그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송무차관이었고 그다음에는 전임 장관과 차관이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는 압력에 반발해 사임하기로 하면서 법무장관 권한대행이 되었다. 보크는 법무장관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콕스를 해임했다.
보크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학문적 활동을 통해서였다. 핵심은 거대 기업이 시장 지배자가 된다 해도 꼭 정부 개입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물어야 할 질문은 거대 기업들이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느냐였고 이것을 입증할 책임은 정부에 있었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거대 기업은 효율성을 높여서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었고, 그렇다면 정책이 간섭하지 말아야 했다.
-395-396
미국에서는 1947년에 통과된 태프트- 하틀리 법이 와그너법의 몇몇 친노조 조항들을 약화시켰고, 단체 협상 이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또한 파업을 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의미로 불매 운동을 하는 것 등 2차적인 쟁의 행위를 금지했다.
1980년경부터는 권력의 균형이 노동 운동에서 한층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1981년에 로널드 레이건이 항공관제사 노조의 파업을 강제 진압한 것이 결정적인 기점이었다. 연방항공청과의 협상이 교착에 빠지자 항공관제사 노조는 공무원의 파업은 불법이었는데도 파업에 돌입했다. 레이건은 그들을 "국가 안보의 위협"이라고 부르면서 곧바로 진압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1,800만 명의 노조 가입자가 있었고 임금 노동자의 20퍼센트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었다. 이후 이 숫자는 점점 낮아 지는데, 하나의 이유는 기업과 정치인의 반노조 입장이 강해진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 고용이 줄어든 것이었다. 2021년에는 노조 가입률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1980년대 무렵이면 많은 기업이 완전한 노사 협상 없이도 물가 상승분에 따라 임금이 자동 조정되는 조항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는 노조의 영향력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의 이득을 노동자가 공유하는 것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400-401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국 기업들은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필요했는데, 경영대학원과 새로이 떠오른 테크놀로지 분야가 이 두 가지를 각각 제공했다. 비용 절감과 관련해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1993년에 출간된 마이클 해머와 제임스 챔피의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에서 잘 볼 수 있다.
새 비전을 설파할 사제들은 이 시기에 새로이 번성하던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 나왔다. 1950년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경영 컨설팅 분야의 성장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더 잘" 사용함으로써 구조 조정을 하려는 기업계의 노력과 나란히 이루어졌다. 경영대학원들과 더불어 맥킨지, 아서앤더슨 같은 경영 컨설팅 회사들도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촉진했다.
-402-403
독일에서는 산업 자동화가 더 빠르게 전개되었는데도 (산업 노동자당 로봇 수가 미국의 두 배 이상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재교육해 기술직, 감독직, 또는 화이트칼라 직군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졌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독일 제조업에서 인기를 끌었 던 "인더스트리 4.0"이나 "디지털 팩토리" 같은 프로그램은 잘 훈련받은 노동자가 "컴퓨터 기반 디자인" "컴퓨터 기반 품질 관리" 등의 도구를 사용해 디자인이나 검수 업무를 더 잘하게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후에 독일은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미국에서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노동자 친화적인 기술 개발을 촉진했듯이, 독일에서도 기업들은 견습 기간[오늘날에는 3, 4년 정도다] 중에 노동자들이 숙련 기술을 익히도록 투자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자동화 기술이 도입될 때 노동자들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더 기술적인 업무로 재배치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장려했다.
이러한 우선순위에 초점을 두고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2000년에서 2018년 사이에 독일 자동차 업계의 노동자 수가 증가했다. 반면 미국의 자동차 업체 고용은 25퍼센트가량 줄었고 직군 업그레이드도 발생하지 않았다.
노동력 감소에 직면한 일본 기업도 심지어 독일보다도 빠르게 로봇을 도입했지만 이를 새로운 업무의 창 출과 결합했다. 유연한 생산 조직화와 품질을 강조하면서 일본 기업들은 공장의 모든 일자리를 자동화하지는 않았고, 복잡한 고임금 업무를 노동자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409-410
급여세와 연방소득세 기준으로 노동 소득에 대한 평균 세율은 지난 30년간 25퍼센트 이상을 계속 유지했지만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 자본의 실질적인 세율은 1990년대에 15퍼센트 정도이던 데서 2018 년에는 5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연방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1960년대에 GDP의 2퍼센트 정도였지만 이제는 0.6퍼센트 정도다. 또한 오늘날에는 주요 기업들이 설정한 우선순위를 정부가 뒤따라 지원하는 경향이 커졌다.
-412
이 업계의 거의 전체를 엘리트주의적 접근 방식이 지배했다.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공 익에 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이 막대한 보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는 생각은 더 일반적으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실리콘 밸리의 사업가 폴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경제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고 지난 10년을 그렇게 하면서 보냈다.“
이러한 비전이 노동의 속성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엘리트주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기에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업들이 인간 노동력 대신 뛰어난 테크놀로지 리더들이 설계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류를 가진 인간의 노동력을 줄이려는 노력으로서 완전하게 정당화가 가능하다.
-415
더 근본적으로,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이득은 가령 초창기 포드 자동차에서 새로운 제품과 업무가 생산 과정을 변혁했던 것 등에 비하면 언제나 제한적일지 모른다.
로봇과 특화된 소프트웨어가 노동자 1인당 산출을 증가시켰지만 사람에게 더 투자했더라면 생산성이 이것보다 더 높아졌을 것임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있다. 1980년대에 토요타 같은 일본 회사들은 점점 더 많은 업무를 자동화하던 중에 생산성이 그리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정이 돌아가는 곳에 노동자들이 있지 않으면 유연성이 상실되어 수요나 생산 조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 최근에는 테슬라가 비슷 한 교훈을 얻었다. 처음에는 머스크의 디지털 유토피아 비전에 이끌려서 자동차 생산의 모든 부분을 자동화하려 했지만 비용이 급증했고 지연이 많이 발생해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 머스크 본인도 이렇게 인정했다. "그래요, 테슬라에서 과도한 자동화는 실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실수였어요. 인간을 가치절하했습니다."
"로봇"이라는 말을 만든 카렐 차페크는 이렇게 언급했다. "수년간에 걸친 실행을 통해서만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도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는 진짜 정원사가 갖는 대 담한 확실성과 신비로움을 터득할 수 있다."
-420-421
시로 인한 자동화의 피해는 대부분 저학력 노동자에게 떨어졌다. 이전 시기의 디지털 자동화로 이미 불이익을 겪은 사람들이 또 타격을 받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AI가 대규모 실업을 발생시킬 만큼 발달하지는 못할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8장에서 살펴본 산업용 로봇처럼, 현재의 AI 기술은 인간 업무 중 일부만 수행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기술은 노동자들에게 적 대적인 편향을 띠면서 발전하고 있고 일부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
-436
"기계 지능"에 집착하기보다 기계가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이것을 "기계 유용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437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에 따르면 이제 목표는 "지능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그 해결을 사용해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발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 이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이 접근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분야를 자동화 방향으로 한층 더 강하게 몰아간다. 여기에 더해 엘리트주의적 비전이 자동화에 초점을 두는 접근 방식을 한층 더 촉진한다. 이 비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 대부분은 오류를 저지르기 쉽고 맡은 일을 그다지 잘 하지 못한다. 이러한 접근은 인간을 보완하기보다 인간 등가에 도달하는 것을 진보의 기준으로 삼는 방향성을 한층 더 정 당화하며, 이는 노동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관심사와도 매끄럽 게 부합한다.
-445-446
노동자들이 얻는 이득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아주 많이 높일 때만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직까지는 A가 "그저 그런 자동화", 즉 생산성 이득이 그리 크지 않은 자동화만 아주 많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AI의 시대에 그저 그런 자동화가 이뤄지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 가 있다. 인간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업무를 꽤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수 세기에 걸쳐 축적해 온 지식과 노하우로 임하는 업 무들을 단순히 AI가 대체하면 그리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가 능성이 크다.
-447
인간의 지능은 세 가지의 중요한 방식으로 "사회적"이다.
첫째, 성공적인 적응과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의 상당 부분은 공동체에 존재하며, 우리는 이것을 암묵적 명시적인 소통을 통해 획득한다.
둘째, 우리의 논증은 사회적 소통에 토대를 둔다. 우리는 상이 한 가설들을 가지고 주장이나 반론을 개발하며 이 과정에 비추어 우리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를 평가한다.
셋째,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그리고 그 공감이 가 능하게 해주는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통해 추가적인 기술과 역량을 얻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역량을 가치절하하는 것은 "자기실현적 예언" 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자동화를 하기로 결정할수록 사회적 상호작용과 인간의 학습이 벌어질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유대를 쌓을 수 있는 초기의 기회들이 사라졌고, 이제 고객 서비스 직원은 고객과 소통을 해도 전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정보를 얻고 그에 대응하는 역량이 줄어들고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경영자와 기술자들은 이를 인간이 잘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판단해 추가적으로 업무를 기계에 할당하려 할 것이다.
-451-452
패턴 인식과 예측에 쓰이는 통계적 접근은 많은 인간 역량의 본질적인 부분을 제대로 포착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 우선, 이러한 접근은 지능의 상황적 속성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를 규정하고 코드 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패턴 인식에 사용되는 통계적 접근의 또 한 가지 만성적인 문제는 "과적합ovefitting"이다. 실증 관계에 적합시킬 때 타당성을 갖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를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통계 모델이 데이터에서 실은 관련이 없는 정보들을 불러와서 그것들에 의존함으로써 부정확한 예측과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 문이다.
과적합은 기계 지능과 관련해서 특히 더 문제일 수 있는데, 기계 지능이 실제로는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가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과적합은 A가 인간이 새로운 정보에 반응해 행동하는, 따라서 내재적으로 사회적인 속성을 갖는 상황을 다루어야 할 때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간이 환경에 반응한다는 말은 맥락이 자주 달라진다는 뜻이고, 특히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바로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행동 때문에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455-466
유연 스케줄링의 극단적인 사례인 클로프닝 clopening은 동일한 노동자가 오늘 밤에 늦게 문을 닫고 다음날 일찍 문을 여는 것을 말한다. 유연 스케줄링과 노동자 감시는 유사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유사점은 둘 다 그저 그런 테크놀로지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상당 한 비용을 일으키지만 생산성 이득을 거의 창출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비용이 무엇이든, 또 생산성의 이득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규모가 작든 간에 비용 절감과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려 하면서 기업들은 계속해서 AI 기술을 원한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 AI 환상에 빠진 연구자들은 그러한 AI 기술을 개발해 공급한다.
-463
다트머스 콘퍼런스가 열리기 전부터도 MIT의 다재다능한 학자 노버트 위너는 그곳에서 제시된 유와는 다른 비전을 정식화한 바 있었다. 기계를 인간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위치시킨 것이다. 위너가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기계 유용성"은 위너에게서 영감을 받은 아이디어다. 우리가 기계에 원하는 것은 "지능" 혹은 "고차원 역량" 이라고 불리는 무정형의 무언가가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것이다. 기계 지능이 아니라 기계 유용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위너는 튜링 이래로 자율적인 기계 지능에 대한 꿈을 계속 좌 절시킨 세 가지 핵심 문제를 짚어냈다. 첫째, 기계가 살아 있는 유기체를 모방하는 데서는 늘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능가하고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
둘째, 자동화는 노동자에게 즉각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자동 기계가 감정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간에 기계가 하는 노동은 경제적인 면에서 정확하게 노예 노동과 동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노예 노동력과 경쟁하는 어떤 인간 노동력도 노예 노동의 경 제적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동화에만 매진한다는 것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기술에 대해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든 기계가 자신에게 들어오는 데이터에 기반해 우리가 따 라갈 수 없는 속도로 작동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꺼야 할 시점이 언제인지를 너무 늦기 전에 알지 못할 수 있다." 위너가 1949년에 『뉴욕타임스』 게재용으로 작성한 기고문 초안에 적었듯이(당시에는 게재되지 못했고 일 부가 그의 사후인 2013년에 게재되었다) "우리는 겸손하게 기계의 도움을 누리면서 좋은 삶을 살 수도 있고, 거만해져서 죽을 수도 있다."
두 명의 미래주의자가 위너의 횃불을 이어받았다. J.C. R 리클라이더는 사람들이 생산 현장에서 위너식 접근을 받아들 이도록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비전은 1960년에 펴낸 획기적인 글 "인간-컴퓨터 공생Man-Computer Smbosis"에 명료하게 담겨 있다.
-464-465
중국 공산당은 2001년에 젊은이들의 정치 교육을 위해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했 다. 2004년에 작성된 교육 개혁에 대한 문서의 제목은 "중국 미성년인 의 사상도덕 건설을 강화개진하기 위한 몇 가지 의견"이었다. 2004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새 교과서는 역사를 더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공산당의 권위와 미덕을 강조하며 서구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중국 의 정치 시스템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새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은 동일한 지역에서 새 교과서가 도입되기 전에 졸입한 사람들과 상당히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말이면 이러한 경향 모두 현저히 강화되어 있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따지지 않고 정부를 지지하는 매도, 비판적인 뉴스와 견해를 들으려 하지 않는 대도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훨씬 더 널리 퍼졌다는 의미다. AI에 대대적인 투자가 있고 나서 만리방화벽도 중국의 모든 플 랫폼과 일터에서 수집하는 데이터를 사용해 지속적인 감시를 수행하면서 한층 더 보완되었다.
-494-495
2020년에 전 세계의 억압적인 지역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와 그들이 취재한 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국제 단체 "금지된 기사Forbidden Stories"가 누출된 전화번호 5만 개의 목록을 확보해 공개했다. 야당 정치인, 인권 활동가, 저널리스트, 반체제 인사들의 번호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의 번호는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통해 해킹해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가수스는 이스라엘의 테크 기업 NSO 그룹이 개발했다.
페가수스는 "제로 클릭" 소프트웨어다. 사용자가 아무 링크도 클릭하지 않았어도 사용자의 모바일 기기에 원격으로 설치될 수 있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즉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사용자의 동의 없이 설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페가수스는 문자메시지를 읽고 전화 통화를 도청하고 위치를 추적하고 원격으로 암호를 수집하고 온라인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휴대전화에 있는 사진기와 마이크를 조작할 수도 있다.
전해지기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연합, 헝가리 등 권위주 의적인 지도자가 있는 많은 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자말 카슈끄지도 사우디아라비아 요원에게 페가수스를 통해 감시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지된 기사"가 획득한 전화번호들을 살펴보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도 페가수스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악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멕시코에서는 원래 마약 카르텔과 싸우는 무기로 스파이웨어가 도입되었고, 엘 차포티를 성공적으로 체포한 작전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저널리스트, 학생 43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조사하던 변호사, 야당 지도자 등 을 대상으로 스파이웨어 사용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감시당한 야당 지 도자 중에는 훗날 멕시코 대통령이 되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이 소프트웨어를 더 광범위하게 사용해 야당 지도자, 학생 운동가, 저널리스트, 선거관리 위원, 심지어 인도 중앙수사국의 수장까지 감시했다.
-499-500
디지털 민주화에 대한 초기의 희망은 깨어졌다. 테크 세계가 자신의 노력을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 쏟았기 때문인데, 그곳은 바로 정부의 검열이다. 데이터 수집과 감시가 강화된 것은 테크 공동체가 내린 특정한 (그리고 저열한) "선택"의 결과다.
-503
정부가 더 권위주의적이 되면 인구를 통제하고 추적할 AI 기술에 대한 그들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이는 AI 분야가 감시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한층 더 쏠리게 만든다.
일례로, 2014년 이래 중국의 지방 정부로부터 안면 인식 등 감시를 위한 AI 기술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중국의 지방 정부와 계약한 AI 기업들은 연구 개발의 방향을 점점 더 안면 인식 등 추적 기술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러한 인센티브가 작동한 결과로, 중국은 감시 기술에서는 글로벌 리더로 부상했지만 자연어 처리, 언어 논증, 추상 논증 등 여타 AI 영역에서는 뒤처져 있다.
-505
2017년경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은 인터넷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인구가 5,300만 명인 나라에서 2,200만 사용자를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은 가짜 정보와 혐오 표현이 퍼지기에 매우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
페이스북은 미얀마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사용자가 있는데도 모니터링 담당 직원을 단 한 명 고용했다. 그리고 그는 버마어만 할 줄 알 뿐 미얀마에서 사용되는 100개 이상의 다른 언어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얀마의 페이스북 공간에는 처음부터도 증오 선동이 넘쳐났다. 2013년에 『타임』이 불교도에 의한 테러의 얼굴이라고 칭한 불교 승려 아신 위라투는 페이스북에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침공하는 외세이며 살인자이고 국가에 위험 요인이라는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이 문제를 무시했고 활동가들을 만나는 것도 거부했다. 그 사이에 로힝야족에 대한 가짜 정보와 자극적인 정보는 계속 증가했다. 페이스북은 미얀마의 증오 범죄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더 하기를 꺼렸지만 미얀마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주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에 접속을 금지하도록 하자 페이스북 경영진은 2,200만 명이나 되는 사용자를 잃게 될까 봐 곧바로 무언가를 했다.
또한 2019년에 페이스북은 미얀마 정부가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 네 개의 민족 단체를 "위험"하다고 분류해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금지된 웹사이트들이 아라칸군, 카친 독립군, 미얀마 민족 민주연맹 등 인종 분리주의 집단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 웹사이트들은 군부와 극단주의자 승려들이 저지른 잔혹 행위를 입증할 사진과 기타 증거들의 주된 저장고이기도 했다.
-509-510
2012년에 유튜브는 사용자의 시청 시간을 늘리기 위해 단순히 클릭을 하는 것보다 실제로 동영상을 보면서 머무는 시간에 더 가중치를 두는 쪽으로 알고리즘을 개편했다. 이 작은 변화로, 알고리즘은 케인이 걸려들었던 훨씬 더 극 단적인 내용도 포함해서 사람들이 빠져들어 보게 만드는 콘텐츠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유튜브는 모회사의 AI 사업부인 "구글 브레인" 연구팀과 함께 알고리즘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알고리즘들은 더 극단적이 되게 할, 그리고 물론 유튜브에서 시간을 더 오래 쓰게 할 경로로 사용자들을 이끌었다.
-516
2015년에 남부빈곤법센터 Southern Poverty Law Center는 레딧을 인터넷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인종주의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 곳으로 꼽았다.
소셜미디어가 이렇게 시궁창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가? 아니면 테크 회사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이 우리를 이렇게 유감스러운 상태에 도달하도록 만든 것인가? 진실은 후자에 더 가깝다. 이는 다음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준다.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증가시키지도 않고 획기적으로 인간을 능가하지도 않는데 AI는 왜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답은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회사들이 개인별 디지털 광고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전적인 수입에 있다. 또한 이것은 디지털 테크 놀로지가 특정한 경로로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플랫폼들이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 사용자의 관여도를 늘리기 위한 쪽으로 노력을 쏟을 유인을 제공한다. 그리고 분노와 선동으로 강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이를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517
불행히도, 온라인 민주주의는 주요 테크 기업이 가진 사업 모델 및 AI 환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온라인 민주주의는 중요한 의사 결정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내리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보는 기술 관료적 접근과 대척점에 있다. 천재들이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테크 회사에서의 분위기다.
따라서 AI 환상은 반민주적 충동을 선호한다. 많은 경영자들이 스스로 중도 좌파이고 민주적 제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할 때도, 심지어 본인이 민주당 지지자라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
-530
2014년에 페이스북은 70만 사용자의 뉴스피드를 조작해 1주일 동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 에 대한 노출을 줄였다. 예상대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노출을 높이고 긍정적인 감정에 대한 노출을 줄이면 사용자들에게 오래 지속되는 악영향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이 대규모 연구를 수행하면서 사용자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과학 연구의 일반적인 기준을 지키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테크 기업들이 동의 없이 사람들에게서 정보나 사진을 긁어오는 것은 이제 일상 적인 일이다.
532
대안적인 모델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위키피디아일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광고 수익을 얻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관심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가짜 정보에 대해 매우 다른 접근을 할 수 있게 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각 표제 항목들의 내용을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익명으로 작성하며, 역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편집자가 새로운 표제 항목을 시작하거나 기존의 것을 수정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 중 경험 많은 편집자들이 선별되어 유지 관리나 분쟁 해결에 대해 추가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그 위에는 "스튜어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갈등과 불일치를 조율하는 데서 더 큰 권한을 갖는다. 스튜어드 위에는 "중재위원회"가 있는데, "자발적인 편집자들이 공동으로 혹은 하위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행위상의 분쟁에 대해 구속력 있는 해결책을 부과한다.”
-538-539
타깃 광고가 아닌 대안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위키피디아 같은 비영리 기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구독 모델에 기반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개인화된 추천을 위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AI 기술에도 막대하게 투자하지만, 여기에는 가짜 정보나 정치적 분노가 거의 없다. 목적이 관여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구독을 독려하기 위해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540
옛 방식의 노동자 조직화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새로 운 방식이 생겨날 수 있다. 2021~2022년에 이미 아마존과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새로운 노조 조직화 방식이 시도되었다. 아마존 물류창고는 이직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서 모든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구성이 실로 다양했다. 다양한 배경 출신에, 십수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이곳의 노동 운동은 전문적인 노조 간부가 아니라 일터 현장의 노동자들에 의해 조직되었고 중앙집중화된 노조의 돈을 받기보다 "고펀드미"라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스스로 자금을 모았다.
-563
녹색 기술과 디지털 기술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서로 다른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사용될지, 그것이 임금, 불평등, 감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알아내기는 훨씬 더 어렵다.
그렇긴 해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측정할 틀을 만드는 데 유용한 원칙들이 존재한다. 우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감시와 모니터링에 사용되는지 아닌지는 이제 꽤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테크놀로지는 개발과 사용 모두 독려되지 말아야 한다.
직업안전보건국 같은 정부 기관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침투적인 형태의 감시와 데이터 수집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명백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자동화 테크놀로지도 꽤 명백하게 판별할 수 있는 징후가 있다. 부가가치 중 노동자에게 가는 몫이 줄어드는 것이다. 노동자의 몫을 높이는 테크놀로지의 개발과 사용에 보조금을 지급해 이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간을 보완하는 방향의 연구개발에 대한 보조금은 새로운 방식이 실행되었을 때 인간을 보완하는지 아니면 업무를 대체하는 지에 대해 더 상세한 데이터에 기초해 지급될 수 있을 것이다.
-572
플랫폼이 자신이 어떤 정보를 수집하며 그 정보가 어떻게 사용 될지에 대해 사용자에게 명시적인 동의를 받도록 하는 식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유용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럽연합 데이터보호법 GDPR" 같은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 했다. 많은 사용자가 프라이버시 문제를 잘 생각하지 않으며 설명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데이터가 그들에게 해롭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GDPR의 효과에 대한 실증근거들을 보면 작은 회사들은 더 불리해지고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큰 회사들의 사용자 모니터링과 데이터 수집은 효과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가 또 있다. 플랫폼은 사용자들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용자들에게 얻는다.
-581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사용자들에게 소유권을 주자는 안도 제시되는데, 이것이 프라이버시 보호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컴퓨터 과학자 재런 레이니어가 처음 제안한 데이터 소유권의 목적 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한술 더 떠 "데이터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데이터 노조는 모든 사용자나 모든 하위 집단들을 대표해 가격과 조건을 협상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데이터 노조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 자신의 여러 사업 중 하나에서 수집한 사용자 정보를 다른 사업에 진입 장벽을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58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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