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65

페트병 전구, 깡통 라디오, 항아리 냉장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현대의 에디슨들

대낮에도 어두운 슬럼가의 판잣집.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전기요금 낼 돈도 없는 빈민촌이 환하게 밝아진다. 전기가 아닌 햇빛으로 반짝이는 물병, 1.5ℓ짜리 페트병으로 만든 등불이다. 최소한 낮동안이라도 천정을 뚫고 박아넣은 물이 든 페트병을 통해 햇빛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 간단한 페트병은 각도를 잘 맞춰 설치하면 55와트 전구 만큼의 빛을 낸다. 전기요금도 필요없고 제작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데다 한번 설치하면 5년은 간다. 이 장치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브라질의 기술자 알프레두 모세르였다. 정전이 잦은 브라질에서, 더군다나 대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판잣집에서 지붕을 살짝 뚫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자연광 전구를 2002년 개발한 것이다. 지붕에 요렇게 물병을 박아넣으면 실내는 이렇게 빛이 들어오고 ..

끊어지지 않는 사슬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조 트로드, 알렉스 켄트 윌리엄슨. 이병무 옮김. 다반 5/6 벤저민 스키너의 이 르포로 구성된 노예제 추적기라면, 이 책은 통계자료와 개념과 국제법과 국제 규약을 가지고 현대판 노예제의 실태를 전한다. 르포가 아닌 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따지자면 스키너의 책이 훨씬 앞선다. 하지만 스키너의 책이 미국 정부의 노예제에 대한 입장과 세계 각지 노예 현실 르포를 뒤섞어 산만한 느낌이 드는 데 비해 이 책은 건조하지만 훨씬 짜임새 있다. 학자들의 '보고서'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책은 먼저 노예제를 철폐하기 위한 싸움의 역사를 소개하고, 현대의 ‘노예제’라는 이 낯익고도 낯선 개념에 대한 정의와 다양한 형태들을 소개..

딸기네 책방 2013.08.02

석탄 캐는 13세 광부, 인도 경제의 감춰진 치부

열세 살 소년 사가르 쿠주르는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의 람가르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다. 삽으로 땅을 파 석탄을 끄집어내어 수숫대로 만든 바구니에 담아 나른다. 땅굴에 들어갈 때도 있고, 노천광에 몸을 거의 파묻고 석탄을 주워올릴 때도 있다. 등뼈가 부러지도록 일해 바구니를 채운 뒤 석탄을 지고 마을에 걸어가 파는 것이 그의 일이다. 자르칸드에는 1만5000개의 탄광이 있는데, 광부 상당수는 아이들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7일 “나이보다 훨씬 체구가 작은 이 아이들은 하루 200루피(약 4000원)를 받으면서 일주일에 엿새를 일한다”며 “이 어린 광부들은 인도 경제의 감춰진 치욕”이라고 보도했다. AFP통신도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의 탄광 어린이들의 실태를 최근 보도했다. 13세의 산자이 체트리는 땅굴..

방글라데시 사태와 '윤리적 대응'의 딜레마

방글라데시 다카 북쪽의 가지푸르에 있는 ‘가리브’라는 의류공장 벽에 지난 3일 금이 갔다. 이 건물에는 의류공장 2곳이 입주해 있었다. 공장주들은 기계를 멈추고 노동자들을 내보냈다. 다카 근교 사바르 의류공장 붕괴사고를 본 공장주들이 일단 공장 문부터 닫은 것이다. 일간 데일리스타는 이 건물에서 2010년 2월 불이 나 21명이 숨진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자들은 그 후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경찰은 공장주들에게 “건물 정밀검사 후 가동을 재개하라”고 했으나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하루 벌어 먹고살기도 힘든 노동자들만 일당을 날리게 됐을 뿐이다.약 6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바르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 등의 대형 의류판매체인들이 방글라데시산 ‘노동착취상품’을..

방글라데시 참사, 이윤이란 이름의 착취이자 살인

무너진 건물 사이로 삐져나온 젊은 여성의 발, 살려달라 외치다 끝내 구조되지 못한 채 숨져간 여공, 언니·동생과 한 공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할뻔한 어느 소작농의 딸.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는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자 글로벌 경제의 노동착취 사슬이 만들어낸 참극이었다. 파렴치한 고용자들과 부패한 정부, 아웃소싱으로 저가제품을 팔아온 외국 기업들,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세계의 소비자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인구는 1억6000만명이 넘지만 글 읽는 어른 비율이 60%에도 못 미치는 방글라데시에서 못배우고 돈 없는 여성들의 희망은 공장 뿐이다. 다카 등지에 있는 5000여개의 의류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해 한달에 4만원가량을 번다. 이 돈으로 가족들은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오토바이를 사고, 장사 밑천을..

방글라데시 참사로 본 한국 글로벌 기업의 사회책임

“한국에서도 요즘 기업의 사회책임이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권과 노동권은 빠뜨린 채, 기부나 헌혈 같은 ‘시혜’를 강조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이미 한국은 여러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소비자들과 기업 노동조합, 언론, 정부가 모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 참사와 같은 일이 한국 공장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난달 24일 일어난 방글라데시 다카 외곽 사바르의 의류공장(라나 플라자) 붕괴 사건으로 미국과 유럽 대기업들의 책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한국에도 글로벌경영을 외치며 세계로 진출한 대기업들이 많다. 한국 기업들과 소비자들에게도 방글라데시 여공들의 죽음은 스쳐 지나칠 사건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고, 그들의 생산품..

방글라데시 건물 붕괴, 숨져간 여공의 맨발...

방글라데시 신문인 데일리스타 웹사이트에 25일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지진이 난 듯 무너져내린 다카 외곽 사바르의 ‘라나플라자’ 건물 잔해 사이로 나와 있는 맨 발의 사진이었다. 핏자국이 묻은 채 움직임 없는 이 발의 주인은 아마도 건물 안에서 숙식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 번 돈을 시골 집으로 부치던 여공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전날 붕괴한 8층짜리 라나플라자의 아래층에는 점포들이 있고, 위쪽 6개 층에는 의류공장 5곳이 입주해있었다. 24일 붕괴한 방글라데시 사바르의 ‘라나플라자’ 건물 잔해 사이로 여성의 맨발이 나와 있다. 사진 데일리스타(www.thedailystar.net/) 사고 다음날인 25일 오전 현재 사망자 수는 178명이고, 다친 사람이 1200명이 넘는다. 구조된 사람은 약 200..

물 잡아먹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물부족의 악순환

데칸 고원 서부에 있는 마하라슈트라는 인도에서 세번째 큰 주이고 농업중심지다. 특히 이 지역은 사탕수수 재배지로 유명한데, 올들어 농작물이 비틀리고 ‘사탕수수에서 쓴맛이 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 정부는 수자원 관리 예산을 늘리면서 계속 댐을 짓고 있고 주민 물배급에도 열심이지만 물 부족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 인도의 물 부족을 불러오는 ‘천재와 인재의 결합’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마하라슈트라의 경우 올 들어 1972년 이래 최악의 물부족을 겪고 있다. 정부는 올해 인도 전역에서 물공급용 탱커 2000대를 동원해 가뭄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구하겠다고 하고 있고, 마하라슈트라에도 탱커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시골마을에 사는 달리트(불가촉천민)들에게는 겨우 나흘에 한..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나일등 옮김. 후마니타스. 지난해 말부터 이것저것 일처리할 것들이 많아...라고 핑계를 대기엔, 이 책을 좀 오래 붙잡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일본 왔다갔다 할 때부터 손에 들고 다녔고, 서울 집에서는 바닥에 굴려두고 틈날 때마다 읽는다고 읽었는데... 548쪽에 이르는 얇지 않은 책이라 쳐도, 몇달에 걸쳐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미국 저술가들의 '저널리스틱한 글쓰기'와는 좀 다르다. 앨런 와이즈먼 같은 재미는 없지만, 좀 중구난방이기는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천착한다는 느낌이랄까. 책에는 미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오만가지 '가난하게 되어버린 이유'들이 백과사전처럼 펼쳐진다. 진보-보수(민주-공화)의 진영논리를 떠나 가난에..

딸기네 책방 2012.03.01

캐서린 햄린,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The Hospital by The River (2001) 캐서린 햄린 (지은이) | 이병렬 (옮긴이) | 북스넛 | 2009-05-20 재작년부터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책을 여기저기 던져두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에티오피아 누(출산시의 문제로 인해 방광, 직장 등 장기에 구멍이 뚫리는 여성 질환) 환자들을 돌본 호주 출신 의사 부부의 회고록. 책을 쓴 건 부인인 캐서린인데, 2009년 대안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s)을 받기도 했다. 내용 중 하나님 예찬과 영국 예찬, 에티오피아 황실 예찬이 상당부분 차지하는 데다가 너무나도 개판인 번역(무려 왕세자 crown prince를 크라운 왕자로 번역했다능;; 이런 류의 무지를 ..

딸기네 책방 201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