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열대우림인 보르네오섬의 숲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파괴돼왔고, 지금은 내륙까지 다 파헤쳐졌다. 이 삼림은 오랫동안 목재의 주요 공급원이었고 지금도 바다로 흐르는 강물 위에는 목재를 실어나르는 바지선이 수시로 떠다닌다. 문제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목재를 아예 안 쓸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과 환경파괴를 막아야 할 장기적 과제, 그 사이에 해법은 없을까.
산속 오지의 숲공장
지난달말 보르네오섬 남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있는 빵깔란분의 산지를 찾아갔다. 한국계 기업인 코린도(KORINDO)의 조림(造林) 지역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길이 1m가 넘는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산속 길을 지프로 이동해 나즈막한 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산불감시용 전망대에 올랐다. 끝도 없이 펼쳐진 것은 푸르디 푸른 숲이었다. 자연림은 사라지고 없는 칼리만탄, 화전과 야자농장에 잡아먹힌 이 곳에 가지런히 줄지어선 바둑판같은 숲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육안으로 시야에 담을 수 있는 최대 면적은 약 3만ha라고 한다. 이 회사에서 1997년부터 심어 가꾼 숲의 면적은 총 5만2000ha, 눈에 보이는 드넓은 숲의 바다가 모두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심어 가꾼 10년 노력과 막대한 투자의 산물이었다. 칼리만탄의 저렴한 노동력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믿기 힘들 정도였다.
칼리만탄 남부 빵깔란분에 한국계 기업 코린도가 만들어놓은 조림지. 보이는 모든 것은 '인공의 자연'이었다. 밀림이 사라진 곳에 대량생산된 클론(clone) 나무들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조림사업본부 장윤호 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조림지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연구센터에 들렀다.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인공 저수지와 묘목을 심어놓은 온실이 있고, 연구센터 건물 안에서는 연구원들이 나무의 싹과 우무질 배양물이 담긴 접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지인 직원들은 2∼3㎝ 길이의 작은 나무 순에 뿌리가 빨리 내리도록 발근(發根) 촉진제를 발라 비이커 모양의 그릇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빠른 손놀림 속에 싹이 담긴 박스가 쌓여갔다.
클론(복제물)의 바다
조림사업본부 측은 이 곳에 아카시아 망기움, 유칼립투스 펠리타, 히비스커스 3종류의 나무를 여러 패턴으로 심어 성장 속도와 형태를 테스트한 뒤 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두 종류를 선택해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모든 식물은 질소를 필요로 하는데, 아카시아는 공기 중 질소를 잡아들여 뿌리에 고정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콩과식물이어서 땅에 질소가 모자라도 잘 자란다. 유칼립투스는 유독 곧게, 높이 자라는 나무인데다 목질이 강해 활용도가 높다.
조림사업본부에서는 특히 유칼립투스 중에서도 유난히 멋진 모양으로 곧게, 빠르게 자라난 나무를 선택해 클론을 만들고 있다. 연구센터에서는 수형목(秀型木) 즉 `어미 나무'로 뽑힌 몇 그루 나무의 조그만 싹을 증식시켜 수십만 그루의 클론으로 만들어 심는다. 장 연구원은 "산 하나의 나무들 전체를 클론으로 심으면 관리하기 편하고 목재로 쓰기에도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열대우림은 한번 파괴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땅을 덮치는 잡초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숲이 복원되기가 힘들지만 그대신 생장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심은지 6∼7년 된 유칼립투스들은 벌써 높이 20∼30m씩 자라나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베어내는 숲'에서 `리사이클링'으로
보르네오의 숲은 무한정 허용된 나무 저장고가 아닌 유한한 자원이다. 오랜 벌채로 인해 티크, 마호가니, 에보니(흑단) 같은 고급 수종들은 이미 거의 사라지고 없고, 말레이시아 국경에 접한 내륙 산악지대로 가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코린도는 인도네시아 최대 임업회사로, 이 나라 목재 생산량의 3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수십년째 나무를 베어내 팔고 야자를 심어 팜오일(야자유)을 파는 이 회사는 굳이 분류하자면 `삼림 파괴 기업'에 속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금 세계적인 숲지대인 보르네오에 거대한 인공 숲을 만들어내는 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코린도에서 추구하는 것은 숲의 리사이클링(재활용)과 `지속가능한 임업'이다. 조림지역을 더욱 확대, 총6만2500ha의 면적에 나무를 심어 매년 10분의1씩 베어내면 적어도 드넓은 땅의 90%에는 늘 나무가 자라고 있게 된다. 회사 측에서는 내년 7월이면 1차로 인공조림지에서 목재를 채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1세기 보르네오의 실험' 성공할까
보르네오라는 상징성과 전례없는 조림 규모로 해서 코린도의 숲 대량생산 실험은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아직도 장담할수는 없다. 막대한 연구예산과 인건비를 투입한 `모험'이라는 것에는 이 회사 직원들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았다.
더 큰 관심사는 과연 환경 측면에서 숲 대량생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하는 점이다. 야자 플랜테이션이나 화전으로 피폐해진 땅에 인공 숲을 만들면 분명 대기중 탄소 흡수에는 도움이 된다. 계속되는 자연림의 파괴를 막을 수 있고 삼림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르네오에 대규모 숲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지구 대기에 미치는 효과는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코린도 조림사업본부의 연구센터에서 현지인 연구원이 나무의 클론(clone)들을 검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찮다. 조림사업을 할 때엔 반드시 일부분이라도 자연림을 벌채를 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수종(樹種)들이 섞여있으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유칼립투스와 아카시아는 보르네오에는 없던 외래수종이다. 또 광범한 지역을 단일 식생, 그것도 아예 단일 클론으로 만들었을 때 종 다양성 확보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 초유의 실험 결과는 앞으로 수십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50큐빅(㎥), 100큐빅이 뭐야, 옛날엔 나무 한 그루를 베면 200큐빅 씩 나왔어요."
인도네시아 최대 임업회사인 한국계 기업 코린도 조림사업본부의 류건상(50ㆍ사진 오른쪽) 부장은 칼리만탄의 자연림으로 들어가면 20여년 전엔 끝이 안 보이게 하늘을 가리고 솟아오른 나무들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림 연구센터의 젊은 연구원 장윤호(32)씨에게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목재가 얼마나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5∼10큐빅은 나올 것"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웃으며 듣고 있던 류 부장은 "옛날엔 200큐빅씩 나오는 나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큰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난데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목재로 쓰기 위해서라면 나무 단면 직경이 40㎝면 충분하다고 한다. 코린도 측은 나무를 10년 단위로 베어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숲과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원시림의 아름드리 나무들은 전설로만 살아 있었다.
캠프 리키 오랑우탄들의 대모인 프린세스와 그 식솔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은 세계적인 멸종위기 동물인 오랑우탄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전세계에 3만마리도 못되는 오랑우탄만이 남아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칼리만탄에 서식한다. 칼리만탄 남부 딴중푸팅에는 `캠프 리키'라는 이름의 오랑우탄 관찰구역이 있다.
이 곳은 유명한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제자로 제인 구달 등과 함께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로 꼽히는 캐나다 출신 여성학자 비루테 갈디카스가 35년전 만든 연구용 캠프에서 비롯됐다. 갈디카스는 이 곳에서 밀렵꾼에 어미를 잃은 오랑우탄의 야생 복귀를 돕는 `재활 훈련'을 해왔으나, 지금은 기능을 잃어 환경ㆍ생태관광지로만 남아 있다.
국립공원구역으로 지정된 딴중푸팅은 붉고 검은 강의 지류들을 따라 보트를 타고 한참을 거슬러올라야 하는 오지(奧地)이지만, 이곳에서도 오랑우탄들은 궁지에 몰려 있다. 2003년 조사 때 딴중푸팅에는 오랑우탄 5000마리 이상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난해 극심한 건기 때 화재가 나 많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넓이 50㎢의 캠프 리키 구역 안에는 불과 20∼30마리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다.
캠프 리키의 관리인인 체쳅(32)은 "작년과 올해엔 구역 안에서 새끼가 2마리씩 밖에 안 태어났다"며 숫자가 갈수록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대로라면 10∼20년 내에 오랑우탄이 멸종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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