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오따쓰 (Gaviotas: A Village to Reinvent the World)
앨런 와이즈먼. 월간 말 刊.
보테로의 나라에서 온 소식
콜롬비아. 내전과 마약, 납치, 석유 그리고 페르난도 보테로의 나라. 내 머리 속의 콜롬비아는 그런 곳이다. 한반도보다 다섯 배나 되는 넓은 나라, 아마존, 새들이 많이 사는 곳. 콜롬비아의 석유와 미국의 돈, 이스라엘제 무기가 합쳐져 마약상과 게릴라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나라.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가비오따쓰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동쪽에 세워진 생태공동체다. 파올로 루가리라는 사람이 꿈과 상상력만으로 만들어낸 토피아(topia). 존재하지 않는 곳(유토피아)이 아닌, 실존하는 이상향. 그런데, 지금도 있을까? 가비오따쓰에서는 지금도 자연과의 하모니를 꿈꾸는 사람들이 소나무 숲속에서 노래를 하면서 살고 있을까?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조용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기계들을 만들면서, 오리노꼬강의 진흙으로 제방을 쌓고 손수 만든 풍차를 돌리면서 살고 있을까. 메데인 공원에 있는 보테로의 비둘기 조각상에서 시작되는 가비오따쓰의 이야기를 따라 오리노꼬강, 사바나, 제비갈매기, 과이보 인디언, 풍차와 펌프, 희망과 절망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사막이란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일 뿐입니다. 가비오따쓰는 상상력이 만발한 오아시스입니다."
"They always put social experiments in the easiest, most fertile places. We wanted the hardest place. We figured if we could do it here, we could do it anywhere." (파올로 루가리)
★ Paolo Lugari
Paolo Lugari is a Colombian visionary and founder of Gaviotas, a village that is an experiment in land reclamation and sustainable living. Built on Colombia‘s barren, rain-leached eastern savanna in 1971, Gaviotas is now a thriving community of 200. The United Nations has called the village a model for the developing world.
Journalist Alan Weisman has written about the village in both articles and a book (Gaviotas: A Village to Reinvent the World): "Despite the constant threat of Colombia’s political turbulence, this is now the setting for one of the most hopeful environmental success stories ever told. For more than three decades the scientists, artisans, peasants, ex-street kids, and Guahibo Indians living in . . . Gaviotas have elevated phrases like sustainable development and appropriate technology from cliche to reality. Sixteen hours from the nearest major city, they invented wind turbines that convert mild tropical breezes into energy, solar collectors that work in the rain, soil-free systems to raise edible and medicinal crops, and ultra-efficient pumps to tap deep aquifers?pumps so easy to operate, they‘re hooked up to children’s seesaws."
- 오메가연구소 홈페이지(http://www.eomega.org)에서 퍼옴.
책 중에서
▶ 칠레의 경제학자이자 은행장인 펠리뻬 에레라는 볼리비아의 띠띠까까 호수 근처의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인디언 마을을 방문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수력발전소를 세울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거기에 간 것이었다. 방문이 끝날 무렵 방문팀은 경비가 남은 것을 알고 인디언 원로들을 모아 돈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기쁘게 맞아준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돈을 그 공동체에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에 뭔가를 하고 싶은데 어떤 게 좋겠습니까?"
인디언 원로들은 실례를 구하고 이 제안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다. 그들은 약 5분 후에 돌아와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냈습니다."하고 말했다.
"좋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
"우리 악단에 새 악기가 필요합니다."
은행팀의 대변인이 말했다. "저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는 전기, 상수도, 하수도, 재봉틀, 전화, 전보 따위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인디언들은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가장 나이 든 사람이 나서서 설명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합니다. 주일 미사 후에 우리는 성당 마당에 모여 음악회를 엽니다. 우리는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나서 공동체의 문제를 상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 오래되어서 다 망가져갑니다. 음악이 없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겁니다."
▶ 그것은 가비오따쓰인들이 현실을 개선하느라 이리저리 애쓰다보니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일종의 예측불가능성이었다. 카리브산 소나무가 야노쓰에서는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에 지역의 식생에 결코 해를 끼치니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소나무들은 열대의 굶주린 곤충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껍질 진액을 분비하는데, 진액이 하도 풍성하게 흘러서 마치 메이플 시럽처럼,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젖소에서 우유를 짜내듯이 나무를 해치는 일 없이 짙은 호박색 진액을 수확하여 생산고를 올릴 수 있으리란 것을 누가 알기나 했겠는가?
여기서는 소나무들이 임학 교과서에서 예측한 것보다 거의 십년이나 더 빨리 자랄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즉 가비오따쓰가 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하면서 임산물 가공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콜롬비아가 페인트, 니스, 테레빈유, 화장품, 향수, 약, 바이올린 활을 문지르는 송진가루 등을 만들기 위해 일 년에 수백만 달러 어치의 송진을 수입해왔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후아니따 에쓸라바는 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라 가비오따쓰의 숲 한가운데, 그녀의 동료 대부분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곳의 한가운데'에서 휘영청 둥근 달 아래 서게 되었다. 바로 '레스피기의 아리아'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에뻬쓰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가비오따쓰 숲에서는 음이 장엄하게 반향한다고 한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으므로 또다른 행운의 손길이 뻗쳤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숲 속에 서 있었지. 문득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마치 점점 크게 울려퍼지는 것 같았지. 나는 손뼉을 쳤어. 그리고 소리도 질러 보았지. 또 루가리더러 속삭여 보라고도 했어. 그런데 놀랍게도 반향을 일으키는 거야. 왜 그런지 모르겠더군. 아마도 숲 자체가 진동했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불가사의한 공간의 물리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고."
▶ '라 비올렌씨아' 전에 이 지역의 주된 거주자는 유랑민인 과이보 인디언들이었다. 그들은 실처럼 가는 오리노꼬 강의 지류들을 돌아다니며 마치 암범처럼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독화살로 사냥하며, 야생 까싸바와 기름기 많은 야자 콩을 채집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때 정부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땅이 없는 사람에게 준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난민들에게 산을 넘어 외딴 동부지역으로 이주하라고 격려하기 시작하였다. 백인 정착자들이 가축을 몰고 여기저기 드문드문 들어오면서, 과이보들은 자기들 주위가 점점 울타리로 둘러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원래 과이보들에게는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한동안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철사줄로 된 울타리를 무시하였다. 그들에게는 그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활과 화살을 들고, 새로 이사온 백인들 소유의 유순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기 위해 돌아다녔다. 파올로 루가리가 50킬로미터를 지날 때마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면서 처음으로 오리노꼬로 향하는 육로 여행을 감행하던 무렵, 아라우카 지역에 살고 있던 백인 거주자들은 인디언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60명 남짓 되는 인디언들을 연회에 초대해서는 구운 수송아지와 여러가지 뿌리열매들을 대접하였다. 식사 중에 그들은 느닷없이 피스톨과 정글 칼을 꺼내들고 인디언들을 죽여 시체를 태워버린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사를 계속했다. 과이보들이 남의 울타리 안에 있는 송아지 잡아먹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듯, 백인들도 인디언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 1982년 2월, 대통령 후보자를 실은 비행기 한 대가 예고도 없이 가비오따쓰에 착륙했다. "여기에는 투표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파올로 루가리가 벨리싸리오 베땅꾸르에게 말했다.
베땅꾸르는 가비오따쓰에서 산다면 정치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베땅꾸르가 손님 숙소 지붕 위에 있는 태양열 패널을 보고 판매용이냐고 묻자, 파올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만일 내가 대통령에 선출되면 태양열 패널을 대통령 관저에 설치하겠소."
1977년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백악관에 태양열 패널을 설치한 바 있었다. 카터는 태양열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조세감면 조치를 하는가 하면 상당한 예산을 들여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4년 후인 1981년 후임자 로널드 레이건은 카터가 백악관 지붕 위에 설치한 태양열 난방기구를 철수시켰을 뿐 아니라 대체에너지 연구를 위한 세제상의 우대조치나 자금지원도 거둬들였다.
1982년 2월, 벨리싸리오 베땅꾸르가 대통령에 선출되자 가비오따쓰인들은 야노쓰에서의 생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상주의자들의 국제적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지원하지 않게 되자, 그 운동을 선도하던 자리가 부분적으로나마 비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른바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될 거 아닌가?
▶ 그는 돌아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보기 위해 뒤로 물렀다. '라 비올렌씨아' 때 조상 대대로 살던 산지에서 쫓겨난 야네로(원주민)들에게, 매달 적도의 사바나에서 어김없이 떠오르는 크고 멋진 보름달은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동전만하게 줄어들어 안데스 산맥 뒤로 넘어가는 희미한 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구의 횡경막을 둘러싸고 있는 두터운 열대의 대기에서 유영하고 있는, 거대하고 풍성한, 아른거리며 반짝이는 심홍색 원이었다. 연인들에게 모든 것이 진실되다고 설득하는 달, 인간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게 만드는 달이었다. 그것은 또한 야노쓰를 떠다닐 비행선을 설계해줄 엔지니어들을 안데스대학교에서 곧 보내줄 거라고 파올로 루가리에게 상기시키는 달이었다. 그 비행선은 그들에게 와서 잡으라는 듯이 하늘 저쪽에서 떠오르는 거대한 붉은 공 만큼이나 큰 것이리라.
일행은 달이 10도 정도 올라갈 때까지, 그 붉은 원이 저 멀리 북쪽 지평선에서 넘실거리는 초원의 불처럼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할 때까지 바라보았다. 한 쌍의 제비갈매기가 이글거리며 타올는 달 표면을 가로지르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 등을 치면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겸손한 그들은 픽업 트럭의 뒷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었다. 대학교를 나왔거나 학위를 가진 사람은 반도 안 되었다. 하지만 그날 달빛 아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아주 훌륭하고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삭막하게 비어있거나 비참하게 병들어 있는 대지 가운데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석유 한 방울이 태워없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잇는 방법과 평화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주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동료 인간들이 발 아래 돌고 있는 지구를 파괴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지구를 밝게 비추어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온갖 회의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가비오따쓰는 장엄하지만 어두운 땅, 아름답지만 전쟁에 물들어있는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져 주었다.
파올로는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고요한 바다'(달 표면의 지명)를 보고 있소."
까를로쓰 싼체쓰도 눈을 가늘게 뜨고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그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아미고(친구여). 우리 주위에 퍼져 있잖소."
★ 가비오따쓰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
왕은 자기가 언젠가는 죽을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성채를 건설하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 왕국과 주위에서 현명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들였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적어내라고 하였다. 그들은 십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커다란 백과사전을 만들어 왕에게 제출하였다. "폐하, 이것은 온 세상의 지식을 종합해 놓은 것입니다." 왕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열심히 일했군." 하고 인정은 하면서도 "하지만 30권이나 되는 책을 누가 읽겠나? 한 권으로 요약해보게."하고 말했다.
그들은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십 년이 지난 후 그들은 그것을 단 한 권의 커다란 책으로 만들어 제출하였다. 하지만 왕은 여전히 시무룩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였네.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가? 좀더 간추려보게."
다시 십 년이 지났다. 왕은 완전히 노인이 되었다. 이번에 그 현자들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한 장으로 축약시켰다. 백발의 늙은 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다음 그들은 그것을 한 문단으로 줄였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내 백 열 살이 된 늙은 왕은 실크로 된 커다란 임종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금방 부서질 듯 나약한 그의 가슴이 불규칙한 호흡으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때 그 현자들이 우주의 온갖 지혜를 단 한 문장으로 줄여가지고 들어왔다.
"그게 뭔지 압니까?" 호르헤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free lunch)."
가비오따쓰 - 황무지에 세워진 희망의 공동체
(마더 존스 1998년 3-4월호. 녹색평론에서 재인용)
시소를 타며 놀고 있는 탁아소의 아이들이 도움을 준다. 시소가 탁아소의 수영장을 가동시키는 펌프 역할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가비오따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위험한 버려진 땅 위로 나있는 먼지로 숨막히는 바퀴자국을 따라 16시간 동안 자동차로 가야 한다. 비라도 오면, 이 여정은 지프차가 푹푹 빠지는 진창을 헤쳐나가야 하므로 몇 일은 소요된다. 게릴라나 준(準)군사용 바리케이드 때문에 여행이 지체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평선에 녹색 덩어리가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텅 빈 벌판에 알루미늄 해바라기들이 점점이 나타난다. 이 해바라기들은 섬세하게 설계된 풍차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녹색 덩어리는 믿기 어렵게도 불모의 열대 평원에 형성된 25,000에이커의 숲이다.
나무들의 한복판에는 낮은 흰색 건물들과 갖가지 색의 주택들이 가파른 경사의 지붕에 모두 태양 집열기를 달고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71년에 과학적 실험으로 시작된 가비오따쓰는 이제 인구 200의 자급자족 도시가 되었는데, 이것은 한때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오염물질 방출 전무'라는 목표를 실현시킨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산업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
초기 가비오따쓰의 거주민은 보고타의 엔지니어들과 토양 화학자들로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시도하고 있던, 상상력이 풍부한 과학자 파올로 루가리에게 설득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루가리는 언젠가는 계속 팽창하는 인구 때문에 사람들이 종래의 황폐한 땅에서 거주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대지방의 많은 지역을 불모의 사바나가 드문드문 차지하고 있으므로, 콜롬비아 동쪽 평원에 실험적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은 범세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찾기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자원을 상식에 맞게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다. 첫 과제는 진창과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는 개울로 이루어져 있는 이 땅에서 깨끗한 물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가비오따쓰 사람들이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발명한 수동펌프는 사용법이 매우 쉬운 것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어린아이들의 놀이기구인 시소에 연결시켰다. 다음에 그 사람들은 식수의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서 '태양열 주전자'를 개발했고, 온화한 열대 바람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풍차, 비가 올 때 작동되는 태양열 온수기, 식용 및 약용 작물 재배를 위하여 흙이 필요 없는 수경재배법을 고안했다. 이러한 신기술들은 중·남미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이제 콜롬비아에 한정하더라도 거의 700여개 마을이 가비오따쓰에서 개발된 펌프를 사용하고 있다.
다년간의 실험 뒤, 가비오따쓰의 과학자들은 카리브 해의 온두라스산 소나무가 이곳의 층이 얇고 강산성인 토질에서 잘 자랄 수 있으며, 벌목하지 않고도 나무껍질의 송진을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풍 당밀처럼 나무에서 추출된 천연의 송진은 석유를 원료로 한 것들 대신으로 물감, 화장품, 향수, 약품 제조에 이용된다. 또한 이것을 가비오따쓰의 무공해 공장에서 증류하면, 부산물로 상품가치가 있는 테레빈유가 생산된다.
소나무들은 지속가능한 생계수단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생물학자들이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라고 일컫는 것을 창조해냈다. 소나무 아래에서, 이곳 사바나에서 수천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열대삼림이 다시 살아났고, 이미 증식중이었던 사슴, 매, 개미핥기들의 서식지가 부활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250개의 토착 식물종들에 고무받아 가비오따쓰 사람들은 그들의 약국을 약초전문점으로 바꾸고, 그 지역 과이보 인디언들과 함께 민족식물학 연구실을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많은 과이보들과 농민들이 가비오따쓰에 살고 있으며, 그들은 이곳의 공식적 통행수단인 '가비오따쓰형 사바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간다. 가비오따쓰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에는 정화된 생수 생산 설비와 소나무 숲에서 수집한 목재를 이용한 악기 제조공장이 포함되어 있다.
콜롬비아의 계속되는 국내정세 혼란과 마약전쟁, 환경문제들의 한가운데에서, 가비오따쓰는 평화와 지혜의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경찰이나 정치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삶터로서, 이곳은 사람들이 분별있게 생활하기를 선택한다면, 가장 척박한 환경조차도 풍부한 도구와 자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루가리는 말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해냈다면, 이런 일은 어디서든 가능하다."
★ 콜롬비아공화국 Republic of Colombia 개괄 + 역사
면적: 1,138,900 sq km
인구: 3620만명
수도: 보고타(인구 5백만명)
주민: 메스티조(유럽-인디안 혼혈) 58%, 유럽인 후손 20%, 뮬라토 (아프리카-유럽인 후손) 14%, 아프리카인 후손 4%, 아프리카-인디안 후손3%, 인디안 1%
언어: 카스티야 스페인어, 그 외에 토착 인디언 언어 200여종
종교: 카톨릭 95%. 그 외 민속신앙과 유태교 등
콜럼부스의 일행인 알론소 데 오헤다(Alonso de Ojeda)가 1499년 과히라(Guajira) 반도에 상륙하기 전, 안데스 지역과 태평양, 대서양 연안에는 타이로나, 시누, 무이스카, 낌바야, 띠에라덴뜨로, 산 아구스틴 같은 부족문화가 산재해 있었다. 이들은 금제품과 도기, 매장 석실과 암각화를 남겼다.
스페인 점령하에서 콜롬비아에는 카르따헤나(Cartagena, 1533년 건설) 같은 마을들이 생겨났다. 1544년 콜롬비아는 페루의 총독 관할로 합쳐졌으며 1739년 뉴 그라나다(현재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로 구성된 영토)의 일부가 되기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독립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지만 정작 꿈을 이루게 된 것은 1819년 베네수엘라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등장하고 나서였다. 이후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를 형성하여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와 10년 간의 불편한 연방관계를 유지했으나 이 연합은 결국 깨지고 만다.
독립 투쟁 중 형성된 정치적 흐름이 공식화된 것은 1849년 두 개의 당파(주로 크리올 엘리트들이 참가한)가 생기면서부터다. 두 당파는 중앙 집권적 보수주의와 연방주의적 성향의 자유주의로 나뉘어 콜롬비아를 분열시켰으며 결국 폭동과 혼란, 내전으로 번지게 만들었다. 19세기 내내 콜롬비아는 50번 이상의 폭동과 여덟 번의 내전을 겪었으며 1899년 처참한 1000일 전쟁으로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다.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싸움이 다시 터진 것은 콜롬비아의 수많은 내전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파괴적이었던 1948년의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 폭력) 때다. 보수파에 고용된 민병대의 준동으로 거의 300,000명이 학살됐다. 갈등이 혁명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양대 정치 세력은 권력을 유지하고 농민반란군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군부 쿠데타를 지원할 것을 결정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구스타보 로하스 Gustavo Rojas 장군에 의해 일어난 1953년의 쿠데타(20세기 들어 콜롬비아가 겪은 유일한 군부의 정치 개입)다. 그러나 이 정권은 1957년까지 단명했고,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이후 16년 동안 국민전선(National Front)이라는 겉모양을 하고 권력을 나눠가졌다.
★ 페르난도 보테로 Fernando Botero, 1932∼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 Medellin 에서 행상인 다비드 보테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투우사 양성학교를 나와 16세 때 메데인 미술연구소에서 개최한 그룹전에 두 점의 수채화를 출품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51년 보고타로 이주해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산마르코, 보고타 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1957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범미연맹(Pan American Union)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1969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부풀려진 이미지에 관한 전시회를 열었다. 1973년부터는 조각으로 방향을 바꿨다. 작품의 배경은 고향 남미대륙으로 독재자, 탱고 댄서, 창녀, 아낙네 등이 등장한다. 소재로 삼은 인물이나 동물은 모두 실제보다 살찐 모습으로 그려지며, 작고 통통한 입과 옆으로 퍼진 눈으로 뚱뚱함이 더욱 강조된다.
마치 튜브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부풀려진 인물과 동물상,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하였고, 옛 거장들의 걸작에서 소재와 방법을 차용하여 패러디한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고대의 신화를 이용해 정치적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고발하고,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도 있다.
이처럼 개성적인 작품으로 1976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1992년에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자신의 조각품으로 장식하는 야외조각전을 갖기도 했다. 1993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예술가> 전에 출품했고 파크애버뉴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다.
주요 작품으로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유화 <모나리자>(1977),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응용한 유화 <스페인 정복자의 자화상>(1986) 등과 조각작품으로 제우스가 유로파를 범하는 그리스 신화를 패러디한 브론즈 작품 <유로파의 강탈>(1992)이 있고, 그외 <창문 앞의 여자>(1990), <담배 피우는 여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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