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프리드먼, '경도와 태도'

딸기21 2003. 1. 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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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와 태도 Longitudes and Attitudes (2002)
토머스 L. 프리드먼. 김성한 옮김. 21세기북스(북이십일)



짱나지만 중동 얘기이기 때문에 돈 주고 사서 읽었음.

명색이 국내 일간지 기자라는 사람들 중에도 프리드먼 신도들이 있다. 나? 난 프리드먼 미워한다. 왜냐고?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반유태주의냐고? 반유태주의라는 말 자체에 반대한다. 그건 유태인들이 자기네 잘못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넌 나치야!" 하고 몰아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극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유태인들 모두를 미워했지만(이스라엘, 너네는 존재 자체가 죄악인 나라야) 적어도 2명은 용서해줄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노엄 촘스키. 그럼 프리드먼은? 몹시 싫어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있다. 일단 이 사람은, 아랍-이슬람(비아랍권 이슬람도 포함해서)을 잘 아는 사람이고, 미국인들 중에서 아마 아랍-이슬람권을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일 것이다. 둘째 프리드먼은 미국 '온건파 자유주의자'들의 중동 인식을 알게 해준다. 세째 미국 정부의 중동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왕세자의 '획기적 중동평화방안'을 사실상 특종보도한 것이 프리드먼이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읽다보니- 촘스키가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지적한, 전형적인 가치왜곡 방법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이 눈에 띄어서 토할 뻔 했다. "(유럽의) 언론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때리는 것은 맨날 보도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자폭테러 하는 건 잘 보도를 않는다". 웃기고 자빠졌네. "2000년부터 시작된 현재의 이-팔 분쟁은 아마도 '자살전쟁'으로 이름붙여질 것이다" 누구 맘대로- 어쩜 프리드먼 맘대로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살전쟁? 팔레스타인인들의 자폭테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가 이스라엘 사망자수의 3배나 되는 거지? 곡학아세 하는 방법은 이문열에게서 배웠나?


"우리는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에서 이겨서 아랍 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빈 라덴과 탈레반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의 지지와 존경을 이끌어낼 것이다."


9.11 테러 나고 미국이 아프간전 따까리들 모집할 때, 그러나 정작 전쟁에 몸 대어주려는 '우방'이 별로 없었을 때 프리드먼이 한 말이다. 현재의 이라크전 계획에도 그대로 통용될, 저 말. 차라리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저런 태도는 정직하다.

물론 프리드먼은 나름대로 통찰력이 있고 또 극악무도 꼴보수는 아니다. 난 96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실린 프리드먼의 글을 읽었는데, 그 때는 인상이 괜찮았었다. 일단 문장이 간결하고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점, 그런 문체상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었고 또 꼴통으로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번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봤더니, 이 아저씨가 너무 출세를 해서 좀 방자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책은 정말 내용이 너무 없었다. (웃긴 얘기지만 내 주변의 어떤 분은 그 책 읽고 되게 감동한 모양이다. 그 분은 언제나 자기자신이 세계화시대의 메인스트림에 들어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신 분인데,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보니 무엇을 보고듣고 읽어도 '뒤집어보기' 내지는 '삐딱하게 보기'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불쌍하게도.)

그런데 9.11 이후에 쓰인 칼럼들을 주로 모아놓은 이번 책을 보니, 9.11 사건 때문에 프리드먼이 많이 흥분했던 모양이었다. 다른 모든 미국인들처럼. 평소의 페이스에서 좀 벗어나서, 예전과 달리 신랄하고 공격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드먼의 장점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지점에 있었는데. 스스로도 느꼈는지, 뒷부분 비망록에 그런 얘기를 털어놨다. 같은 얘기가 반복되어서 책의 밀도가 떨어진 점도 아쉬웠다.


재밌었던 부분은 프리드먼이 자기가 생각해도 기특했는지 수차례 언급했던 '초강대개인' 개념이랑, 이란에 대한 얘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에 대한 얘기. 이슬람을 두개의 섬(세속정권과 종교세력의 권력나눠먹기)으로 비유해 설명하면서 빈라덴 문제를 이 관점에서 파악한 부분("빈라덴의 도전은 분점에 만족 않고 세속 권력까지 먹으려 했던 것")도 재미있게 읽었다.


바람구두 음, 역시 딸기님이야, 하고 말하면 딸기교 신자라고 오인받을 테니(그럼, 아니란 말인가, 흐흐)....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려 합니다. 
얼마전 기 소르망이라는(난 도대체 얘를 문명비평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식견이 의심스럽다) 얼치기 지식인을 가지고 <조*>일보가 한참 신나게 팔아먹던거 하고, 앤서니 기든스를 좌파 지식인으로 팔아먹는 거 하고 물론 동률로 놀 존재들도 아니긴 하지만 하여간에 마치 자신들의 기사에 서품식이라도 거행해주길 바라는 태도로 그들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서 참아주기 어려웠다. 하긴 그런 일들이 어디 그뿐이랴. 
르 피가로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용하는 것도 좋고, 가디언을 인용하는 것도 좋은데 자신들이 인용하는 저널의 수준과 정치적 지향에 대해서도 좀 밝혀주길 바란다. 그거 독자로서 좀 너무한 기대인가 말이다. 
하여간에 프리드먼에 대한 딸기님의 글을 읽으며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판단을 다시금 확인한다. 
새무얼 헌팅턴 같은 작자를 인용하고 싶다면 그가 과거 베트남전 시절에 그 말썽많은 전략촌 계획의 입안자 중 하나였던 것도 꼭 기억하도록 하자. 베트남에서 전략촌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모르신다면 간단히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다. 기병대 요새 밖의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는 적이므로 토벌하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모든 문명은 마치 불과 기름처럼 가까이 갔다 하면 불붙는 인화성 물질로 보인다. 이건 문명의 잘못이 아니라 시각을 교정해줘야 한다.
 
프리드먼의 경우, 다른 글들은 비교적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팔 문제에서는, 아무래도 이 사람의 '태생'이 개입될 수 밖에 없겠죠. 유달리 편향이 짙게 나타나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거든요.  
다른 내용은 제가 잘 모르는 거지만, ^^ 
"곡학아세 하는 방법은 이문열에게서 배웠나?" 이 부분은 감동의 명문장입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마루야마 겐지 너무 멋지지 않아요? 
언제고 바람구두님처럼 어떤 인물들에 대한 코너를 만들 날이 온다면(주먹 불끈!) 거기에 꼭 넣고 싶은 사람들은 마루야마 겐지, 에드워드 호퍼, 조너선 스펜스, 건륭제, 오사마 빈 라덴, 엘리너 파전, 반다나 시바...음, 또 누가 있을까요.
 
죄다.. 아니 거의 다 모르는 사람이군요. -_- 마루야마 겐지도 소문만 들어봤지 정작 소설한권 읽은 적 없어요. 근데, 에드워드 호퍼 좋아하세요?(그나마 아는 사람 나왔다 ^^)  
저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읽고 나서 팬 하기로 작정하고 이것저것 책들 샀는데...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계속 책꽂이 신세군요. 또다른 소설집 한권 봤구...제목이 뭐였더라? <달을 쏘다>는 아니고...<달을 쫓다> 였었나? 여튼 좀 엽기스러웠어요. 
<천년동안에> 읽고난 뒤로, 팬이 아니라 추종자가 됐습니다(믿거나 말거나). 존경합니다, 그 인물. <소설가의 각오>를 반드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청량감 때문에 좋아하고요-좋아한다기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기해하며 관심 갖고 있는 상황. 그런데 언니, 딴 사람은 몰라도 건륭제와 오사마 빈라덴은 아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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