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과 약혼한 마녀
장 미셸 살망 (지은이) | 은위영 (옮긴이) | 시공사 | 1995-11-01
일요일, 대전발 17시41분 서울행 기차(무궁화호) 안에서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사탄과 약혼한 마녀>를 읽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 없지만 시간이 남아서...잠도 자꾸 자니까 잘 안 오더구만.
읽다보니 내가 가장 보고듣기 싫어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가! 처형과 고문에 대한 그림과 글이 넘쳐나는데(책이 작아서 금방 넘침) 너무너무 싫어서 '내가 지금 이런 걸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책을 많이 읽기로 결정했으니까 짧은 것으로 권수 늘리기를 해야 하고, 또 아지님이 읽지도 않을 이 책을 사놨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 읽기는 다 읽었다.
장 미셸 살망이라는 사람이 썼는데 참 못 썼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대부분 그렇듯이. 마녀사냥이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얼마나 잔인하게 진행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98%이고 역사적 맥락(이런 걸 컨텍스트라 그러던가-헷갈리네)에 대한 설명은 1% 밖에 안 된다. 그림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책 크기가 작다보니 그림도 작고 또 얼마나 잔인한지(사실 그림 크게 해놓은 책이면 난 다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중세의 음흉함>이라는 말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서는 1% 밖에 안 다루고 있지만, 낭만주의자들의 新마녀觀이 그나마 잔인한 묘사에 쪼글쪼글 오그라든 내 마음을 풀어줬다.
그런데 그런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특히 집단이 개인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저런 적나라한 폭력이 너무 무서운데 말야. 어쩌면, 만일 내가 마녀사냥의 시기에 북동부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나는 마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그런 우매한 군중, 딱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마녀들에 대한 공포,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숲>에 대한 공포 아닌가.
나는 초자연은 고사하고, 자연 자체가 몹시 무서운 사람이다. 바다도 무섭고 숲도 무섭다. 물 덩어리도 무섭고, 나무 덩어리도 무섭다. 왜냐? 말 그대로 <덩어리>이기 때문에. 끼리끼리 모여 덩치가 엄청나게 커진 물방울과 나뭇가지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원초적인 공포. 그 생각 난다. 투르니에가 인용해놓았던 괴테의 <오리나무 숲>. 아들아 아들아...말을 타고 달려갔지만 숲을 빠져나왔을 때에 이미 아들은 싸늘하게 시신으로 변해있더라는. 가본 적도 없는 <북유럽의 숲>은 무섭다.
게다가 또 나는, 군중심리에 안주 혹은 기생하는 것에서 심지어 재미를 느끼고 있으며, 독야청청의 꿈조차 꾸지 않는 사람 아닌가. 남 손가락질하면서 "이 정도 괴롭힘은 괜찮을 거야, 이건 사소한 것인데 뭐" 하면서 '괴롭힘의 시너지 효과'가 인간에게 가져올 고통을 애써 모른체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지옥의 가루가 그녀의 힘을 북돋아 가공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두 눈은 더욱 번득여 순결한 달빛조차 그녀의 눈빛 아래 힘없이 사그라들고 공포에 떨었다. 지옥의 수증기와 화염과 분노,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욕망(이는 분명 새로운 것이다)으로 부푼 그녀는 기괴한 미와 완벽함으로 넘쳐났다. 그녀가 사위를 천천히 둘러보았을 때 자연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나무들이 말을 하고 지나간 일들을 들려주었다. 풀잎들이 약초로 변했다. 건초였던 풀뿌리들이 훌륭한 약재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어리석은 자들의 집합>은 일부의 교묘한 책략에 속아넘어간 척 하면서 약자들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거잖아. 그렇게 해서 매카시즘이니 빨갱이 사냥이니 하는 <현대판 마녀사냥>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거잖아.
어쨌거나 지지부진한 마녀 이야기 중에 그나마 맘에 들었던 글 한 토막.
다음날, 그녀는 모든 적들로부터 완전하게 차단된, 안전지대에서 다시 깨어났다. 사람들이 밤새 그녀를 찾았으나 푸른 치마 조각만을 발견했을 따름이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녀가 급류에 몸을 던진 건 아닐까? 산 채로 악마가 데려간 것은 아닐까? 틀림없이 그렇게 천벌을 받았으리라.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내지 못해 정말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주 대했을 때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그토록 변해 있었다. 오직 눈만이 살아 있었지만 예전처럼 반짝이지 않았다. 아주 이상하고도 불안한 섬광이 감돌았다. 그녀 자신조차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두려워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녀는 눈길을 내리깔지 않았다. 단지 옆눈길로 응시했다. 황도의 경사각에 맞물려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지 못하도록.
하룻밤 사이에 갈색으로 그을린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그녀가 불꽃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면밀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불꽃이 그녀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 신이니 혼탁하고 강렬한 화원(火源)인 것을! 악마와 교통하며 새겨진 불꽃의 흔적이 바람에 흔들리는 남폿불 같은 야성의 그림자를 드리워 불길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뒷걸음질치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했으며 온몸에 휘감기는 격한 감정으로 번민했다.
그녀는 프랑스 중서부 지역의 구릉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고대 동굴집 같은 혈거(穴居)에서 살았다. 까마득히 땅 위로는 오랜 전쟁과 영원 재해, 재앙의 흔적이 깊어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부적합한 곳, 바로 거기, 악마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주민들 대부분은 그의 충실하고 열성적인 사도들이었다. 서부 변방지대처럼 그가 좋아하는 곳은 또 없으리라. 거기에는 자연과의 은밀한 음모가 있고 독약과 치유의 주술이 있으며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지혜로운 여인 톨레드와 악마의 세계가 신비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입김이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픈 침소의 입구에도 벌거벗은 나무들로 경계를 세웠다. 그로부터 몇 리를 벗어나면 하천을 만들어놓은 몇 개의 마을들 어귀에 다다르게 된다. 그 곳에 서면 내면의 작은 목소리가 그녀에게 이르는 말이 있다.
'보라, 너의 왕국이니라. 네 오늘은 비록 방랑으로 살아가나 내일은 네가 세상을 지배하리라.'
쥘 미슐레, <마녀> 중에서.
그럴듯한 걸. 악마의 속삭임, 그녀와 악마가 만나는 교접의 현장은 추잡한 매춘의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음흉하면서 격정적인 재탄생! 그 뒤의 저 마녀는?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주류를 벗어나 <변방>에서이긴 하지만 추종자들도 제법 모아놓고 고고하게 살아간다. 이른바 마녀에 대한 '낭만주의적 해석'인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마녀는 정복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변방에서 늘 만족한다? 마녀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까.
약간 으시으시한 분위기의 그림 하나. 리처드 도일의 Asleep in the moonlight. 무섭죠? 마지막 코멘트- 아주 매혹적인 마녀 이야기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마리니 그림, 데베르그 글 <스콜피온>과 이슬레르 그림, 발락 글 <쌍브르>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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