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기형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 시집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오늘 아침 회사 가면서도 그 생각을 했는데. 그 시집이 어디 있더라, 하고.
어딘가 시골집에 흘러흘러가 썩고 있거나, 혹은 잃어버렸거나 뭐 그랬는 줄 알았다.
방금 전 오랜 친구가 집에 왔었다. 나 데려다주는 길에 화장실 들렀다가 간다고. "잎속의 검은 잎 읽고싶어" 했더니 내 책꽂이 구경하던 친구가 "여기 있네"하는 거였다. 어, 거기 있었구나. 아마도, 내가 결혼해서 옮기고 난 뒤 닐리리가 책꽂이에 보관해놓고 있던 것을, 다시 내가 친정집에서 챙겨다 놓았나보다.
시집을 펼쳤다. 비닐 표지, 누렇게 변한 종이들. 그리고 속표지에는 친구의 글.
"항상 믿음직한 친구 정은에게. 20세 생일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더욱 내면적 성숙과 외면적인 발전을 모두 잘 하길 바란다. -지영"
지영이는 나의 좋은 친구다. 사실 내게는 지영이라는 친구가 둘이 있는데, 한명은 김지영이고 한명은 장지영이다.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는 장지영인데, 나 결혼할 때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시중들어주고, 지난번 꼼꼼이 돌잔치 때도 와서 꼼꼼이 안아주고, 그리고 며칠전에는 우리 집에 들러 꼼꼼이 옷 선물 주고갔었다. 그랬구나, 지영이가 내게 이 시집을 선물해줬던 거였구나.
지영이 너 결혼할 때 내가 들러리 해주고, 애기 낳으면 이뻐해주고 그럴께. 빨리 결혼해라 :)
그리고, 입속의 검은잎의 첫 페이지.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詩作 메모)
사실 자연이 인간에게 책임져줄 일이라는 것이 있을까? 저 시인이 사랑하면서도 고통스러워 했던 거리의 상상력은 또 무엇이었을까.
책장을 넘겨보니, 벌써 십년도 더 전에 내가 줄쳐놓은 싯구들이 보인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안개')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나쁘게 말하다')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여행자')
더이상의 흥미를 갖지 않는 늙은 개도 측은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저 홀로 없어진 구름은
처음부터 창문의 것이 아니었으니('죽은 구름')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흔해빠진 독서')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생전의 기형도
시집의 한 페이지, <숲으로 된 성벽>이라는 시 위편에는 흘러가는 내 글씨로 '엘리너 파아전, <서쪽 숲나라>'라고 쓰여 있다. 아마 이때, 숲이라는 말을 보면서 서쪽 숲나라를 생각했었나보다.
그리고 또, 이런 시도 있다. <10월>. 아마도 이 시를 읽을 때의 나는 좀 감상적이었나보다. 스무살은 스무살이었나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나이 서른이 어느새 지나가버린 지금, 나는 한때라도 내 삶의 전부였을 절망의 내용과 무게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절망이란 그런 것이고, 삶이란 그런 것일테니까. 어찌됐든 나의 인생 아닌가.
[딸기마을 옛날 댓글들]
-왜 나는 기형도를 잘 모를까나.. 다들 이렇게 좋아들 하는데..
근데 지금보니까 저 구절들이 은근히 좋아지네요.
-저도 실은 기형도에 빠진 사람이나 기형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관심의 차이겠죠. 제가 애니나 만화, 스포츠에 무관심이듯 말입니다. 축구를 예로 들자면, 저는 그냥 큰 대회같은 거 있으면 가끔 보면서 (안보는 경우가 99%...) 간간이 흥분하는 체질이라서 여기서 축구 얘기로 흥분하는 거 보면 정말 신기하거든요. 아, 축구 하나에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하구요. -_-
-저는 역사를 좋아하는데, (누누이 강조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지식적으로 풍부하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_-)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에게 2전공으로 역사를 한다고 하면, “허걱... 너 그렇게 엄한 거 어떻게 공부하냐?” 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저 나름대로 그 친구들이 또 신기해보이고...
결국은 왜 좋아하냐건 웃지요. ^^
-그러니까, 기형도를 읽을 때를 지나버리신 거예요.
기형도의 시들은, 마음이 스산할 때 읽어야 하거든요. 존재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을 때, 청춘의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과연 이 격동기가 언제나 지나가려나’ 막막할 때, ‘이별’이라는 단어가 현실 그 자체였을 때, 마음이 아프다는 건 정말 ‘아픔’을 얘기하는 거로구나 싶을 때, 그런 때.
그런 시기에 기형도는, 제 벗이었습니다. 청춘이란 말이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같던 때에 기형도를 만났고, 그리고 세상이 다 나하고는 정반대로 가는 것처럼 우울하고 원망스러울 때 펼쳐보며 위안을 얻었더랬습니다.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슬퍼하면서 동시에 슬픔을 던져버리는 것. 아마도 제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준 무언가가 있다면,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김현의 글을 읽지 않으려고, 기형도의 시들을 향한 내 마음에 행여 논리와 이성과 분석의 틀을 덧씌울까 싶어 피해다니려고 했었죠(지금도 저는 평론을 잘 읽지 않습니다만). 다시 말하지만, 기형도의 <빈 집>은 울면서 읽어야 해요 :)
-딸기님, 멋져요!! (*500000000000)
-맞아요, 딸기님 멋져!!! 오오오오오오~
그러고보니 딸기님은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광팬이셨군요. 메이븐님만 그러신 줄 알았는데..
근데 딸기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기형도를 읽을 때가 지나버렸다’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아마 스무살 때 기형도를 만났더라도 딸기님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기형도가 취향에 안맞아서가 아니라, 기형도가 안좋아서가 아니라, 제가 스무살 때는 기형도의 시를 읽는 아이들은 ‘취급을 못받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딸기님이랑 저는 3살 차이지만, 그 3년이라는 시간이 대학의 분위기에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사실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는 기형도는 고사하고 모든 종류의 ‘비지적’(!!!)인 예술이 막무가내로 배척당하고, 백무산시나 읊어야 대단한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한마디로 문화의 공황상태 같은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억울한 시절이었어요. 한창 감성을 개발하고 그럴 나이에 모든 문화적 감성을 나약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당해야 했던... 나만이 아니라 그 시절 대학을 다닌 많은 친구들, 선배들이 다 그랬구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스무살 때 만난 00” 이런 것이 없어요. 제가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것들은 거의 스무살 이전에, 중고등학교 때 만난 것들이었고, 아니면 그 문화적 공황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던(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대학 졸업 이후에 만났던 것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선언’이 좋다고 했던 것은, 딸기님이 신기하다 하셨듯이, 좀 예외적인 것 같아요. ^^
(그 곡이 워낙 명작이라서 그런 듯...)
-‘거리의 상상력’이란....
시인이 자연을 잃어버린다는 것.
한 때 자연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고,
삶의 주요한 활동이 일어나는 현장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관찰해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에는 유행이란 것이 없으며
설령 있더라도 인간의 감각과 함께 변화해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더디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역적으로 낯선 곳이나 그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기 고향과 같은 한 그루의 나무. 풀, 꽃, 나비 등등.
그곳에는 공동의 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학이란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기본적인 대전제에 있어서 감상자의 동감 혹은 감동이 감각 이후에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에 있어서의 관계란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한 속성인 까닭은 그것이 바로 언어를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자연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난 뒤.
우리들은 느티나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산수유도 싸리나무도 말로만 들었을 뿐 실체가 있는 존재로서는 사라져버렸지요.
자연은 우리에게 한 때의 유행, CF만도 못한 추억으로 남았죠. 지금 우리들에게 공통의 아이콘은 영화나 혹은 유행 음악들.불과 십년이 못되어서 모든 유행은 바뀔 겁니다. 그것은 광고와 같이 찰나의 유행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영어로 꿈을 꾼다 할지라도 끝끝내 영어를 모국어로 하여 태어난 이들의 감수성을 온전히 내것으로 할 수 없듯이, 이미자 세대의 감수성은 우리가 아무리 이미자를 지금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감수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자연을 잃는다는 것은 언어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거리의 상상력이란 고갈된 언어의 우물 속을 배회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만 스쳐갈 뿐 느티나무 아래 함께 뒹굴지 못합니다. 시인 기형도가 자연을 잠언으로 표현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자연의 비유가 무엇인지, 불멸을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통스럽게 체득한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정시가 예전의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현재로서는 영원히 불가능해진 것이겠죠. 이제 위대한 서정시인의 시대는 영원히 끝났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예술을 흡수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단지 소비되는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기형도가 인기있는 이유? 한때는 모두에게 절망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형도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전 스무살때 무엇에 빠져 있었나....저도 기형도를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것을...이렇게 생각되어요.
한때 정신적으로 거의 황폐/퇴폐/피폐 했던 떄가 있었는데 그때 만났다면 정말 참..위로가 많이 되었을텐데.-_-;;;
잉.고작 몇년이지만 머리가 많이 컸나봐요.;;;
지금은 시읽어도 별로 감동도 안받고.쩝.-0-
-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 왠지 시는 정말 마음이 황폐할 때 제일 와닿는 뭔가가 있나봐요. 저도 그랬거든요.
나리님.. 저도 요즘 시 보기를 돌같이..^^:;
이건 이젠 황폐하지 않다는 증거일까요? 즐거워해야 할까나..^^;;
-글쎄요, 제 생각에는, 시인 기형도가 이야기한 ‘자연의 상상력’은 구두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좀 다른 듯 하거든요.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썼지요. 시인은, 고통속에서도 거리로 나가 시를 읊었고, 거리의 풍경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사랑했다고 말하는군요.
‘자연’이란 대체 뭐지요? 산수유건 싸리나무건 느티나무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좁은 의미로의 ‘자연’을 노래하고자 하는 이에게라면 산수유인지 싸리나무인지 흑싸리인지 홍싸리인지는 중요한 문제겠지요.
그러나 어떤 시인에게는, 거리의 저 나무가 버즘나무인지 양버즘나무인지, 개나리인지 미나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버즘인지 양버즘인지 모를 나무 밑에서 하루 종일 목 터져라 외치며 장사를 하는 사람, 개나리인지 미나리인지도 모르고 꼬까신 벗어놓고 간 꼬맹이, 다시 말해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그가 받은 소명이었을테니까요. 그래서 괴로웠을 것이고요.
이런 시인에게 ‘거리의 상상력’은, 아마도 마른 우물이 아니라 예수처럼 지고 가야 할 십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창창한 느티나무가 아니라 거리에 널린 ‘가지 잘린 늙은 나무’, ‘전쟁처럼 눈이 내리는 도시’, 새벽안개 속의 철교, 침묵으로 뒤틀려가던 대학 강의실에서 시상을 찾아야 했던 인물이니까요.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자연을 잘 모릅니다. 나의 자연은, 내 집 뒤에 있는 인왕산의 ‘먼 풍경’ 혹은 여름휴가 때 보는 바다, 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이 도시의 풍경 전부입니다. 나는 사진 속에,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의 그림과 글 속에서 군림하는 자연이 싫습니다. 자연을 예찬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그 ‘오만함’도 싫습니다.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기형도가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는 구절하고, 자연을 예찬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그 ‘오만함’도 싫다는 구절이 과연 서로 호응하는지는 궁금해지는군요. 흐흐.
기형도에 대한 딸기님의 태도나 자세가(평론조차 읽지 않으려는 것) 이해 못되는 바는 그런 자세와 발언이 자연을 예찬하는 이들의 오만과 비슷해 보인다면 해석과잉인가요?
-『파월 장병 훈련소인 특교대 근처 갈매기집엔 미자란 여자가 있다. 미자는 내일모레, 당장 떠나는 군인이라도 그가 사람 좋게 보여지면 능동적인 애정을 보였다. 사랑을 받기보다 주려는 사람은 언제나 떳떳하고 자유롭다. 미자는 <나>에게 김밥을 싸들고 면회오기도 했고, 담배 한 갑을 주기도 한다. 병사들이 떠나는 날, 몰개월의 여자들은 트럭에 조그맣고 하얀 선물을 던진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오뚜기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의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 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중에서)
기형도가 일견 윤동주와 흡사한 몸짓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자신의 유일한 스승을 보들레르라고 여겼던 부분을 잊지는 마시길....
무언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기형도에 대한 딸기님의 사랑만이 있는 건 아니란 말씀. (싫으면 시집가쇼. 흐흐.) 기형도는 보들레르가 한 시대가 저무는 파리의 우울을 노래했듯이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우울을 노래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생명을 얻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기형도의 시가 자연을 매개로 했든 안 했든 시대의 우울을 대변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쨌거나 시를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봐요. 개인차겠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함축적인 비유보다는 유년기의 가난의 흔적과 실패한 연애에 대한 기억들이 더 와닿더군요. 특히 유년기의 가난이... 그의 시를 보면 감상성을 의식적으로 배격하면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감수성을 후벼파는 내용들이 절묘하게 들어가 있어요. 청승맞은 신세타령이나 하소연 넋두리를 비웃는 듯한 태도를 그가 갖고 있어서 그럴까요. 언뜻 보면 모던한 형식주의자 같기도 하고. 두 분의 말씀을 보니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하는 시가 생각납니다. 기형도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정서적인 근친성을 느낍니다.
-글쎄요.
기형도의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이 어떤 이들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괴로운 대면인 사람들도 꽤 봤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저나 딸기님이나 보는 시각이 우쨌든 간에 기형도가 산출해 낸 우울과 절망을 함께 호흡한 세대임에는 틀림없을 테니까요.
-구두님, 위에서 두번째 코멘트는 좀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요(납작 엎드림), 인용해놓으신 황석영의 글귀는 참 좋네요. 이건 또 딴 얘기인데, 임영태의...무슨무슨 소설 읽어보셨나요?(제목 기억 안남...죄송 ^^;; 뭐 이런 질문이 다 있을꼬) 제목이 되게 길었는데...그 글 생각나네요.
달나라의 장난님, ‘유년기의 가난과 실패한 연애에 대한 기억들’, 그렇죠? ‘언뜻 보면’ 모던한 형식주의자 같기도 한데, 사실 기형도의 시들이 주는 느낌은 모던한 쪽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모던하다기에는 너무 우울하고(뭔가 거리를 좀 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는 모던하다고 봐도 되겠네요), 가난하고 슬프다 하기에는 너무 지식인 티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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