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발명과 근대
박규태 | 윤상인 | 임경택 | 이이화 | 박진우 (지은이) | 이산 | 2006-07-20
솔직히 실망했다.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지금까지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내용이 알차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것은, 영 기대에 못 미친다. 하필이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그 많은 책들 중에 유독 한국 학자들이 쓴 책이 평균선 아래여서 기분이 더 찝찝하다.
그 뿐일까, 이 책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BK21’에 참여한 학자들이 자기네들 성과를 중심으로 뼈대를 잡고 거기에 관련 분야 학자들의 글을 더 붙인 것이라 하는데, BK21이라는 세금 많이 들어간 사업의 실적이 이 정도라면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지원금 잘못된 데로도 많이 들어갔다는데 그나마 그 지원금 받아 이 정도 실적이라도 내놓았으니 칭찬해줘야 하는 것인지, 한국 대학 교수들의 수준이 이러저러 하다는 것에 새삼 실망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하기는, 싸잡아 ‘한국과 외국의 수준차이’라고 하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감동하며 읽었던 이산의 책들, 그냥 ‘외국 학자들’이 아니라 조너선 스펜스, 윌리엄 맥닐 급의 세계 초초일류 학자들 것이었으니 단순비교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뭐 따지고 보면 이 책이 한국 학자들의 책 중에 최악인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산의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별점이 많이 떨어진다(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이 책은 이산 책들 중에 유일하게 내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얻어온 것이다).
책은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들이 BK21 ‘근대 일본의 국민국가 형성과 인문학의 역할’이라는 사업과제로 했던 연구를 토대로 기획됐다고 한다. 문학, 종교, 미술, 음악, 번역, 고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근대화’ 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핀다.
논문들은 제각각이다.
어떤 글은 일본 학자 글을 거의 짜깁기 한 수준이고, 어떤 글은 석사학위 논문처럼 딱 쓰는 사람 자기자신만을 위한 ‘아는척하기용’ 글이고, 어떤 글은 자다 봉창두드리며 염불하는 글이고, 어떤 글은 일본어로 발표했던 논문을 한국어로 다시 옮겨놓은 것이고, 어떤 글은 일본 재단 지원받아 연구한 뒤 일본 식민주의 칭찬하며 일본에서 발표했다가 여기 다시 실은 글이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대목도 있지만 어떤 글은 대체 누구 읽으라고 썼는지 모르겠고, 어떤 글은 읽으나 마나다. 나같은 사람 말고, 일본에 대해 전공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라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이런 수준들은 책의 총론에 해당하는 머리말에서부터 예측됐던 것이었다. 대표저자가 머리말에서 인용한 책들이 거개는 일본 전공자도 아닌 내가 이미 읽은 것들이었다. ‘2차 사료’라는 얘기다.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과 거기서 파생된 후지타니 다카시 ‘화려한 군주’,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번역과 일본의 근대’, 니시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 같은 류의 책들을 ‘사료’라고 인용을 해놓으니, 그 책들을 ‘교양서적’으로 읽었던 독자로서는 학자들 수준에 뜨악한 반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연구’를 해서 일반인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것이 학자들이 일반인용 책을 내는 이유일진대, 이미 외국 학자들이 쉽게 풀어 써놓은 것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세금 받아 연구한 겁니다” 하니깐 당혹스럽다.
물론 이 책에 인용된 사료들 중엔 나 같은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사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책의 토대가 되는 ‘일본의 발명과 근대’라는 틀 자체에서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수준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시도가 안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분야별 각론에서는 ‘전통의 발명’이라는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문학에서는 이러저러하게 전통을 발명해 군국주의로 갔다’ ‘미술에서도 이러저러하게 전통을 억지로 발명했다’ ‘음악에서도 일본은 이러저러하게 근대를 발명했다’ 하는 것 같아 거북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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