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 이원희 (옮긴이) | 소담출판사 | 2001-01-05
한 밤중에 하늘을 날면 어떤 기분일까.
속으론 생 텍쥐페리를 좋아하는데 정작 이 책을 읽지를 못해서 겉으론 그런 말을 못했다. 어느분이 이 책을 선물해줘서 읽었는데, 마음이 어딘가 좀... 마음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찌르는 것 같지는 않고 막 주물럭주물럭하는 것 같지도 않고 간질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뭐랄까, 마음을 손가락으로 살짝 툭 건드리거나 아주 잠깐 살살 문지르거나 하는 것 같은 기분.
작가는 승리와 패배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는데 승자와 패자는 분명하지 않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냉정한 항공 관리책임자는 승자인 것 같기도 하고, 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 상태가, 이것은 승리다 저것은 패배다, 매사 이렇게 딱딱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어진 상태여서 그런지 그냥 마음이 흔들리면서 잘 모르겠다.
언젠가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 현장에서 부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리비에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서까지 이 다리를 건설할 가치가 있는 걸까요?” 이 길을 이용하는 농부들 중에서 다른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얼굴을 이렇게 끔찍하게 만들어도 좋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다리를 세운다면서 그 기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익은 사익들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리비에르는 나중에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었다. “비록 사람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뭔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진 것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87쪽)
고대 민족의 지도자는 아마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꼈으리라.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막에 묻혀버릴 종족의 소멸에 대해서 동정심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그 지도자는 사막에 묻혀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나마 세우고자 백성을 끌고 산상으로 갔던 것이다. (89쪽)
애국심, 발전, 민족, 종교, 대의, 신념, 이데올로기, 규율, 원칙... 이런 것들이 인간의 생명보다 더 대우를 받는데,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세상은 우스꽝스러운 것들의 모자이크로 이뤄져 있고 그 속에 가끔씩 숭고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두 가지가 종이 한 장 차이일 때가 많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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