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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태국] 카오산 풍경, 그리고 칸짜나부리 관광!

딸기21 2012. 6. 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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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태국적이면서 태국적이지 않은 거리


방콕에서의 닷새째 날. 람부뜨리 빌리지 인 호텔에서 '이사'를 했습니다. 길 건너 카오산 복판에 있는 리카 인(RIKKA INN)이라는 곳으로요. 이 동네 가격치고는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모녀 둘이 아침식사 없이 더블룸 1박에 하루 3만원 꼴) 호텔 옥상에 작고 이쁜 수영장 있고, 실내가 비좁아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깔끔편리한 호텔이었죠.


하필이면 가장 더웠던 날... 캐리어 끌고, 10분에 걸쳐 길 건너 카오산을 관통하여 이사를 했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상하지요. 나흘 머문 호텔에서 나와 다시 나흘을 머물 새 호텔로 옮겨간 것 뿐인데도 길 건너 람부뜨리는 마치 이사 떠나온 옛동네 같고, 복작이는 카오산은 새로운 우리동네 같더라는 겁니다. 


국내에서는 집 없는 타지에 그리 길게 체류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해외여행의 기억이 더 많이 나는데요. 숙소에 짐 풀고 한나절 지나면 거기가 우리 동네 갔습니다. 특히 제게 어떤 공간이 '집'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장을 봐가지고 들어올 때입니다. 특히 혼자 일주일 넘게 출장을 다니면 매일 저녁에 나가서 식사를 하기도 뭣하고 해서, 수퍼마켓에서 컵라면이나 과일 혹은 우유와 빵 따위를 사가지고 들어와 먹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소하게 장을 봐가지고 방에 들어오면 거기가 내 집같은 기분. 


이사하느라고 힘을 뺀 탓에, 닷새째 날은 카오산 주변을 돌며 여유롭게 보냈습니다. 요니는 150바트 주고 알록달록한 선글라스를 샀고, 카페에서 220바트 어치 '호화로운' 점심을 먹었고, 리카 호텔 1층의 illy 커피숍에서 에어컨 바람에 카디건까지 걸치고 둘이 마주앉아 책을 읽었고. 


방에 올라가 갤탭으로 앵그리버드를 하다가, 옥상에 올라가 수영을 하다가, 저녁 무렵 다시 거리로. 요니는 방콕에 머무는 동안 네번 정도 끼니를 케밥으로 해결했고, 저는 길거리 팟타이로... 냠냠. 넘 그리워요 ㅠ.ㅠ


윗줄 사진은 리카 호텔 옥상의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요니, 그리고 호텔 옥상에서 내려다본 카오산 로드의 풍경.
아랫줄은 카오산의 밤을 즐기는 요니와... 카오산 뒷골목을 내려다본 모습. 


카오산이라는 곳은 너무나도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어떤 여행자이든 즐거워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정말 여행자들을 위한 곳. 태국이라 하기엔 '여행자용 태국'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가면 여행객들이 찍고 가는 관광지도 있지만, '세계경제의 중심'이라는 수식어를 빼더라도 생생한 '삶과 일'의 현장이죠. 동대문 시장에 가면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옷 시장'이고요. 명동에 가면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많지만 그래도 거긴 한국의 경제가 움직이고 한국인들이 일하는 곳이죠.


카오산은 다릅니다. 태국인들이 입지 않는 '동남아풍 사롱과 바띡'을 팔고(이것들 사서 저도 많이 입고 다녔지만 태국 사람들이 그런 옷 입는 것은 못 봤습니다), 태국인들은 오로지 가게의 점원이나 식당 종업원이나 뚝뚝 운전사나 택시기사나 노점상의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태국인들의 소비, 태국인들의 유흥은 없습니다. 태국 국내총생산(GDP)이 2011년 기준 6014억 달러이고 세계 24위의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 카오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태국'이 아닌 '외국인들을 위한 태국의 한 토막'이고, 그것도 나머지 태국과는 철저하게 고립된 한 토막이라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국제이주기구(IOM)에서 일하던 한 친구가, 몇 해 전 태국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국 여자들, 심지어 어린 소녀들을 끼고 다니는(주로 장기간 머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빌려 태우고 다닌다지요) 서양 남성들의 모습이 너무 많이 보여서, 여행의 즐거움을 갉아먹을 정도였다고. 이 얘기를 들려준 친구는 남자인데, 그 친구 눈으로 보기에 그랬듯이 제게도 비슷한 광경이 너무 자주 보였습니다 -_-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를 돈주고 사서 끼고 다니는 모습. 어떤 아버지들은 아예 그렇게 어린 소녀인 딸을 서양 관광객에게 임대를 해주기도 한다지요. 제3세계의 가난한 여자아이들에게서는 그야말로 '세계의 모든 고통'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법입니다. 특히 서양 남성들이 태국 소녀를 사서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다만 같은 아시아 국가의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좀더 분개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성매매하고 보신관광 하는 한국의 저열한 남성 관광객들을 생각하면... 남들 손가락질 할 것도 없지요 -_-

갑자기 얘기가 무거워졌네요 ^^;;

여섯째 날은 이번 여행의 정수이자 고갱이었던... 칸짜나부리(Kanchanaburi) 관광!!!

카오산의 여행사들이 대략 1인당 600~800바트(포함돼 있는 내용이 조금씩 달라요)에 당일 코스 여행상품을 파는 것 같더군요. 아침 일찍...이라고 하기는 좀 힘든 7시 반에 호텔에서 차를 타고 출발, 카오산 곳곳의 호텔에서 다른 관광객들을 태우고 칸짜나부리로 갔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영연방/네덜란드군 2차 대전 묘역이었습니다만... 왜 이런 것이 여기에 있냐면, 일본이 이 일대를 잠시 점령하고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거쳐 중국을 침공하기 위한 철로를 깔고 있었다지요. 일본을 막기 위해 영연방과 네덜란드 군이 격전을 벌였고, 그래서 수많은 군인들이 죽었다는... 그러니까 제국주의 세력들끼리(아무리 일본은 우리에겐 웬수같다고 하더라도 세계사적으로 보면 영국이나 일본이나) 남의 땅에서 치고박고 했던 스토리인데요.

그 때 일본이 철로 깔면서 포로로 잡힌 영연방과 네덜란드 군인들(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태국 민간인들!)을 동원하면서 엄청 많이들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었던 철로의 일부가 이 묘지 바로 옆에 있는 콰이 강의 다리이고,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엄청 유명해졌지요. 나중에 영연방과 네덜란드는 자기네 군인들 묘지를 만들었습니다만, 같이 숨져갔던 태국 사람들은 누가 추모해주고 있는 것인지...

추모공원 다음 행선지는, 바로 콰이 강의 다리. 일본군이 만든 철도의 정식 이름은 버마 철로이지만 공사 도중 하도 많이 죽었다 해서 지금도 '죽음의 철로(Death Railway)'라 불립니다. 콰이 강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강과 지류들을 지나는데, 저희 관광패키지 안에는 죽음의 철로를 달리는 기차(지금은 걍 절벽을 달리는 관광용&주민용 기차이지만)를 타는 것도 포함돼 있었어요.



위에 있는 사진들 중 맨 윗줄 왼쪽에 보이는 것이 죽음의 철로를 달리는 기차예요. 가운데 오른쪽은 기차에서 내려다본 강줄기. 운데 왼쪽은 콰이 강의 철교가 끝나는 부분.



이날의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2차 대전의 유적지들 때문...은 물론 아니지요. 


요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체험'! 어드벤처 같은 것이 끼어있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어드벤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패키지에 코끼리타기와 대나무 뗏목타기(bamboo rafting)이 포함돼 있었거든요. 


푸켓에서도 코끼리를 타 본 적은 있지만 역시 이번에도 신기하고 재미있더군요. 우리가 탄 엄마코끼리 옆에는 아기 코끼리가 함께 따라오고 있어서... 엄마코끼리한테 엄청 미안했어요 ㅠ.ㅠ 코끼리는 모계집단이고, 엄마를 잃은 아기코끼리는 외할머니를 중심으로 집단의 나이든 암컷들이 돌봐준다는 얘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아기코끼리를 굳이 함께 묶어서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엄마랑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나 봐요.



코끼리 타고, 뗏목 타고, 죽음의 철로 기차타기 전에 사이욕(Saiyok) 공원의 계곡에 갔는데, 요니가 발을 담가보더니 '넘 시원하다'면서 '엄마 미끄러질 것 같아요' 라고 하더군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고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다시 돌아보니 요니는 물 안에 퐁당 들어가 있었습니다. '엄마, 실수로 미끄러졌어요'(방글방글) 허허 참... 그걸 누가 믿겠. 마침 가져갔던 바틱으로 원피스(맨 윗줄 가운데 사진)처럼 둘둘 말아줬더니 다시 예쁜 소녀로 변신. 


패키지에 점심 식사까지 다 포함돼 있어서 별도로 지출할 일은 없었지만... 코끼리 탈 때, 그리고 죽음의 철로 기차 안에서 사진을 찍어다 주면서 100바트씩 달라더군요. 줘야지요 -_- 코끼리 타는 사진은 이미 집에 있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두 곳에서 모두, 어린 아이들이 와서 우리 모녀의 통실한 얼굴이 찍힌 사진과 함께 원 헌드레드 바트를 달라는데... 


무튼, 넘넘 재미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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