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몽환의 도시, 히바

딸기21 2007. 10. 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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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내 목적지는 아랄해였다. 타슈켄트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아랄해에 면한 작은 도시 무이낙을 가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나는 예정했던대로 타슈켄트에서 오래된 도시 사마르칸드로, 오아시스가 낳은 고도 부하라로 옮겨다녔다. 부하라에서 무이낙으로 가는 길에는 우루겐치라는 거점 도시를 지나야 하는데, 우루겐치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히바(KHIVA)가 있다. 

우즈베크에 오기 전 준비작업으로 경로를 탐색하면서 우루겐치와 히바의 이름을 들었지만 나는 이 곳이 어떤 곳인줄 몰랐다. 얼마 안되는 우즈베크 관광자료를 통해 이곳에 오래된 성이 있고 그 안에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었다. 부하라에서 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고, 미나레트(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 내가 그곳에서 하늘밑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황홀해서 꼭 홀려있는 듯한 상태가 돼있었다. 


그리고 히바에 도착한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 도시 아닌 도시, 너무나 몽환적이어서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도시를 발견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환상에 빠져버렸다. 나는 이 여행의 짐꾸러미에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넣어갔다. 어쩌면 예감이었나? 히바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한 장면을 따다놓은 듯한, 그런 곳이었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베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칼비노의 소설에서 내게 깊이 각인돼버린 저 대화, 너무나 좋아하는 쿠빌라이칸과 마르코폴로의 대화. 마르코는 칸에게 저렇게 말한다. 말을 함으로써 자기 마음 속의 도시를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고. 내게 히바는 정반대의 곳이다. 


나는 히바라는 곳에서 단 하루를 머물렀다. 그 곳의 이미지를 내 눈동자 속에 완전히 새기고 싶었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사실 그 작은 성 안에서의 하루는 짧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그리고 멈춰버린 듯한 그 시간 속에서의 하루는 나에겐 꽤나 길었지만). 나는 그 도시를 <말>로 고정시켜서라도 흩어져가는 이미지를 붙잡고 싶은데, 그 곳을 고정시킬 말이 대체 뭐가 있을지를 모르겠다.


히바는 18~19세기의 성채와 그 안의 마을, 그 밖의 마을로 이뤄진 곳이다. 외성(外城)과 내성(內城) 두 겹의 성벽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바깥쪽 성채는 거의 무너져 일부분만 남아있고, 안쪽 성채와 그 안의 마을이 중심이 되고 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보면



망루에 올라가 바라본 성벽







히바 칸이 부하라의 미나레트를 본떠 만들기 시작했다는 미나레트. 채 완공되지 못한채 끝나버리는 바람에 중간에 싹둑 자른 듯 저렇게 남게 됐다. 그러나 거대한 굴뚝같은 저 미나레트의 아름다움은 대단하다.




마드라사(이슬람학교)를 개조해 만든 호텔. 돈이 없어서;; 여기 묶지는 못했고 나는 하룻밤 15달러짜리 작은 B&B 여관에 묵었다. 히바의 마을 풍경은 다음번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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