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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과 '세기의 재판'

딸기21 2005. 10. 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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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68) 전 이라크 대통령이 결국 법정에 섰다. 19일(현지시간) 시작된 후세인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법정에 선 독재자를 바라보는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처벌론-동정론’ 갈라진 이라크
후세인 재판 장면은 이날 오후 TV를 통해 이라크 전역에 중계됐다.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에 핍박받았던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노쇠한 기색이 역력한 독재자의 모습을 보며 "이제야 정의의 날이 왔다"고 환영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바그다드 시내 시아파 거주지역인 알 카디미야 주민 살만 샤난은 "재판을 보기 위해 일을 쉬었다"면서 후세인은 처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재판에서 후세인의 죄목으로 꼽힌 1982년 학살사건이 벌어졌던 두자일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후세인을 사형에 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Iraqis follow the trail of former Iraqi leader Saddam Hussein in the town of al-Dujail,
north of Baghdad. Saddam Hussein defied the authority of a US-sponsored Iraqi court
set up to judge crimes during his regime, lecturing the judge and tussling with guards
before the proceedings were adjourned until late next month.(AFP/Ahmad al-Rubaye)


시아파와 쿠르드족 “처형을”-수니파는 “불공정”
반면 기득권을 잃은 수니파 무슬림들은 24년간 이라크를 호령하던 후세인의 처량한 신세를 동정하며 굴욕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후세인의 고향인 북부 수니파 지역의 중심 티크리트에서는 후세인 추종자 수십 명이 "후세인 만수무강","점령군과 괴뢰정부 타도"를 적은 피켓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니파들은 이번 재판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르단에 있는 후세인의 맏딸 라가드는 "이번 재판은 코미디"라고 비난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우디-요르단 ‘냉랭’, 쿠웨이트 “기다렸던 날”
후세인 재판은 이라크 방송들 뿐 아니라 알자지라, 알아라비야TV 등을 통해 아랍권 전역에 방송됐다. 그러나 아랍권 국가들의 반응은 서방과는 사뭇 달랐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일간지인 알와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재판"이라고 평가절하했으며, 요르단 언론들도 논평 없이 짤막한 보도들만 내보냈다. 1990년 후세인의 침공을 받았던 쿠웨이트의 언론들만 "이 날을 기다렸다"며 환호했다. 후세인의 지원을 받았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재판을 지켜보며 착잡한 반응들을 보였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후세인 재판이 이라크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엇갈리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초라한 범죄자의 신세로 전락한 후세인의 모습이 공개되면 후세인 잔당이나 수니파 무장 세력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을 바라보는 양분된 여론에서 보이듯, 종족-종파 갈등과 저항을 오히려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법정의 후세인(AP)


◆ 눈길 끈 재판 주역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의 재판이 19일(현지시간) 시작되면서, 재판의 또 다른 주역들인 재판관과 변호인, 후세인 외의 피고인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후세인과 측근들의 재판을 담당할 특별재판소를 만들었지만 신변 안전을 위해 재판관들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었다.

판사는 쿠르드족, 변호는 다국적팀
당국은 재판 시작 직전에 주심판사 리즈가르 모하마드 아민의 신원을 공개했지만, 5명으로 구성된 재판부 중 나머지 4명은 여전히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민 판사는 쿠르드족으로, 자치지역인 술라이마니야주(州) 출신으로 알려졌다.
술라이마니야는 1988년 후세인 정권의 군대가 "이란과 내통했다"는 이유를 들어 쿠르드족 5000여명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할라브자 마을이 속해있는 지역이다. 할라브자 학살사건은 후세인의 대표적인 반인류 범죄로 꼽히며, 미국의 이라크전 명분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조사 중이다. 인권단체들과 후세인 지지 세력들은 아민 판사의 출신을 들어,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후세인의 변호는 다국적 변호인단이 맡고 있다. 법정 변론은 이라크 변호사 칼릴 둘라이미 주로 하고, 영국에서 활동 중인 이라크 출신 변호사 압둘 하크 알 아니와 북아일랜드 출신의 데스 도허티가 지원 업무를 맡는다. 영국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앤서니 스크리브너(IRA 테러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한 북아일랜드 청년 길포드 포를 변호해 유명해진 사람으로, 길포드 포 사건은 뒤에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도 이들과 팀을 이루고 있다. 미국 검찰총장을 지낸 램지 클라크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총리,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딸인 아이샤 카다피 등 국제적인 유명인사들도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라마단 전부총리, 바트당 관리 등 7명 함께 법정에
후세인 외의 피고들 중 최대 거물은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총리와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이브라힘 하산 알 티크리티. 라마단은 쿠웨이트 침공과 시아파돚쿠르드 탄압을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후세인의 이복동생인 이브라힘은 반대파 고문과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인 시절 혁명재판소장을 지낸 아와드 하미드 알 반데르와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에 연루된 전직 바트당 관리 4명도 기소됐다.

■ 재판 첫날 이모저모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름 묻는 당신은 누군가” 판사에 호통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옛 바트당사에서 19일(이하 현지시간)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됐다. `쫓겨난 독재자'가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이 진귀한 재판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후세인은 노쇠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난 이라크의 대통령"이라며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당초 예정된 오전 10시보다 2시간 가량 늦은 정오 무렵 시작된 재판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후세인은 검은 양복에 흰 셔츠 차림으로 등장, 철제 봉으로 울타리가 쳐진 피고인석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리즈가르 모하마드 아민 주심판사가 인적사항을 확인하려 하자 후세인은 "이라크 사람이면서 나를 모르는 당신이야말로 대체 누구냐"며 호통을 쳤고, "나는 헌법이 정한 이라크의 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세인은 또 검사가 1982년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의 책임을 추궁하자 "내게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며 맞섰다. 중간중간 검사의 말을 끊고 "거짓말"이라고 외쳤으며, 답변 도중 들고 나온 코란을 펼쳐 읽기도 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잠시 휴정된 동안 후세인은 법정 문을 나서다가 보안요원들이 손을 붙잡자 이를 뿌리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후세인은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으며, 꼿꼿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재판은 별다른 성과 없이 3시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저항세력의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이 법정 증언을 거부하고 있어 증인을 불러모으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달 28일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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