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도킨스, 굴드와 함께 보냈다. 오랫동안 쟁여두고만 있었던 도킨스의 돌베개만한 책 <지상 최대의 쇼>.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이 책은 그동안 마음 속에(^^;;) 남겨두고만 있다가 몇달 전 결국 샀다. 교보문고를 지나가다가 매대에 올라있는 판다의 엄지를 보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굴드의 글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먼저 굴드, 한동안 도킨스, 그 다음엔 에드워드 윌슨에 빠져 있었고 심지어 제임스 왓슨과 르원틴의 책도 읽었건만 언제부터인가, 왜인지, 굴드를 잊고 지냈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이유를 모를 것도 없다. 2002년 굴드아저씨가 세상을 뜬 뒤로 어쩐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기분이었으니.
샤르트르 대성당의 남쪽 수랑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가장 훌륭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하나 있다. 거기에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네 명의 예언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로 묘사되어 있다.
1961년 우쭐거리는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이곳을 방문해 그 창문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곧바로 "내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아이작 뉴턴의 유명한 아포리즘을 떠올렸다. 나는 이 말이 뉴턴이 처음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내고는 마치 대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들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세상 풍파에 찌들어 우쭐거림이 한풀 꺾인 나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저명한 과학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Robert King Merton, 1910-2003년)이 뉴턴 이전에 이 비유가 사용된 용례를 무려 책 한 권에 달하는 분량으로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책에는 적절하게도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제목이 붙었다.
머튼은 이 명문구(名文句)를 1126년 당시의 샤르트르의 베르나르(Bernard of Chartres)까지 추적해 올라가서 저 장대한 남쪽 수랑에 있는 창문(성 베르나르의 사후에 설치되었다)은 샤르트르의 베르나르의 은유를 스테인드글라스에 구현해 내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의 말까지 찾아냈다.
머튼은 자연 과학에서의 '복수 발견(multiple discoveries)’ 연구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그는 중요한 개념은 여러 사람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생각했다.
(62쪽)
(여담이지만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라는 구절을 들으면 아이작 뉴튼이 아닌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생각난다)
실반 슈웨버(Silvan S. Schweber)는 맬서스를 읽기 전의 수주일 동안의 다윈의 행동을 기록이 허용하는 한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재구성했다(<다시 찾은 ‘종의 기원’의 기원(The Origin of the ‘Origin’ Revesitid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1977)>).
슈웨버의 주장에 따르면 그 조각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은 자연학에서 얻은 새로운 사실들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연구 분야와는 멀리 떨어진 다른 분야에서 다윈이 벌인 지적 방황을 통해 발견되었다.
특히 다윈은 사회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년)의 유명한 저서 <실증 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에 관한 긴 서평을 읽은 적이 있었다. 특히 그는 "타당한 이론은 예견 가능하다는 성격을 띠며 최소한 잠재적으로 양적(量的)이다"라는 콩트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다음 다윈은 더걸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의 <애덤 스미스의 생애와 저작에 관해서(On the Life and Writing of Adam Smith)>를 읽었고, 사회 전반의 구조에 관한 이론은 개인의 구속되지 않은 행동을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스코틀랜드 학파 경제학자들의 기본 이념을 흡수했다. 이어서 그는 정량화(quantification)를 모색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당대의 가장 유명한 통계학자였던 벨기에의 아돌프 자크 케틀레(Adolphe Jacques Quetelet, 1796-1874년)가 쓴 매우 긴 분석을 읽었다. 케틀레의 연구에서 그는 특히 맬서스의 정량적 주장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문득 다윈이 생물학이라는 그 자신의 전공 분야로부터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통계학자들이었다.
만약 천재성에 어떠한 공통분모가 있다면, 나는 관심의 폭과 여러 분야 사이에서 유용한유사성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우선 꼽고 싶다. 실제로 자연 선택설은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에 대한 유비가 연장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윈 자신이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실히 모르지만 말이다.
돌연변이는 변이가 일어나는 궁극의 원천이며 유전자는 변이가 일어나는 단위이다. 선택의 단위는 개체이다. 그러나 개체가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개체는 단지 성장하고, 번식하고, 죽을 뿐이다. 진화적인 변화는 상호 작용하는 생물 개체의 집단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단위는 종이다. 즉 철학자 데이비드 리 헐(David Lee Hull, 1935-2010년)이 썼듯이 유전자는 변화하고, 개체는 선택되고, 종이 진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통 다윈주의의 관점이다. 진화는 생태계의 이익이나 종의 이익조차도 인식하지 않는다. 조화나 안정성이란 무수한 개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간접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15년 동안 개체에 초점을 맞추는 다윈의 관점에 대해 진화학자들 사이에서 도전이 제기되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계층 체계의 위로부터는 스코틀랜드의 생물학자 베로 코프너 윈에드워즈(Vero Copner Wynne-Edwards, 1906-1997)가 최소한 사회 행동의 진화에서는 개체가 아닌 집단이 선택의 단위라고 주장하여 정통파에 속하는 학자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밑으로부터는 영국의 생물학자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가 유전자 자체가 선택의 단위이고,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보관하는) 일시적인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개해서 나를 격분시켰다.
(117쪽)
도킨스는 개체를 선택의 단위로 생각하는 다윈주의의 개념을 버렸다.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자기 이익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개체도 아니라고 주장할 작정이다. 선택의 기본단위는 유전의 단위, 바로 유전자이다.”
방금 언급한 도킨스의 여러 주장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요소(의식적 행동을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는 주장)에도 내가 전혀 당황하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비판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는 나를 포함해서(물론 나의 희망사항이지만), 진화에 관한 대중 과학서를 집필하는 필자들이 누구나 사용하는 (분명 무분별하게) 은유적인 표현을 보통 경우보다 화려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래로부터의 도킨스의 공격에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무리 유전자에 큰 힘을 부여하고 싶어도, 유전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직접 노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은 유전자를 직접 볼 수 없고 유전자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직접 고를 수 없다. 선택은 그 매개체로서 생물의 신체를 사용해야만 한다.
(123쪽)
스피츠카는 1907년까지 115명에 이르는 뛰어난 남성의 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목록이 길어짐에 따라 그 결과의 모호성은 급속하게 커졌다. 목록의 가장 위쪽에는 1883년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1818-1883년)가 드디어 2,000그램이라는 장벽을 돌파해서 퀴비에를 제쳤다. 그런데 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당황과 굴욕감이 만연해진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년)은 1,282그램밖에 되지 않는 뇌로도 미국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온갖 찬사를 받았다 또한 골상학(뇌의 국부적 영역의 크기로 정신적 특정을 판정하는 독창적 ‘과학’)의 창시자 프란츠 요제프 갈(Franz Joseph Gall, 1758-1828년)의 뇌는 겨우 1,198그램밖에 되지 않았다. 그 후 1924년에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년)의 뇌가 투르게네프의 2,012그램의 절반인 1,017그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의 물리구조가 어떠한 식으로든 지능을 나타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뇌 전체의 크기나 외형은 뇌 자체의 가치에 관해 어떤 이야기도해 주지 않는다. 똑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목화밭이나 환경이 열악한 공장에서 죽어 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인슈타인의 뇌의 무게나 대뇌 표면의 주름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202~204쪽)
결국 그는 여러 인종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 마침내 백인종의 바로 아래 계단, 즉 “위대한 몽고족”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계속한다. “엄청난 수의 선천적 백치가 전형적인 몽고인이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어서, 그 표본을 모두 비교해 보면 각각 다른 부모의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운의 기술은 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몽고 백치’의 외견상 유사점을 가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밖에 그는 이 증상을 나타내는 아이들의 행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익살꾼 연기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모방력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문화의 심오한 깊이나 정교함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에게는 몹시 곤혹스러운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특히 중국 사회는 유럽 문화가 아직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무렵에 이미 고도로 세련된 상태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백인종은 이 풀기 힘든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인의 지적인 힘은 인정하지만 그 능력은 혁신적인 천재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남의 것을 잘 흉내 내는 능력에 불과하다는 식의 설명을 붙인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다운의 입장은 인종론 중에서 ‘자유주의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의 모든 인종이 같은 선조에서 나왔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른 등급을 매겨 단일한 가계로 통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등 인종이 전혀 다른 창조의 결과이기 때문에 백인으로 ‘진보’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다른 학자들의 주장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자신의 인종적 백치 분류법을 사용한 것이다.
(224~225쪽)
주변부에 산재하는 작은 집단들은 그 모(母)계통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선조들의 분포 지역의 지리적 귀퉁이에서 작은 개체군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주변부는 선조 종 집단의 생태적 내성의 한계에 해당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택압이 높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결국 주변부의 규모가 작은 격리 집단은 진화적 변화의 실험실인 셈이다.
진화가 주로 주변부의 격리 집단에서 발생하는 종 분화라는 형태로 일어난다면, 화석 기록에 포함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학자들이 발견하는 화석은 보통 규모가 큰 중심부 개체군의 유물이기 때문에, (중략) 주변 지역에서 종 분화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행운을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러한 사건이 이처럼 작은 개체군에서 급속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엘드리지와 나는 이러한 체계를 ‘단속 평형(斷續平衛, punctuated equilibria)’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물 계통은 각각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 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 분화라는 사건으로 그 평온함이 단속, 즉 깨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는 이러한 단속의 배치와 차등적 생존이다.
만약 점진론이 자연계의 사실이라기보다는 서양 사고방식의 산물이라면, 편견을 억누르는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변화를 설명하는 다른 원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 과학자들은 변화에 관한 다른 철학 원리(헤겔 철학을 엥겔스가 재정식화한 이른바 변증법의 여러 법칙들)를 훈련받는다. 변증법의 여러 법칙들은 분명 ‘단속’적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엘드리지와 나는 많은 소련의 고생물학자들이 우리의 ‘단속 평형설’과 흡사한 체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료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단속적 변화라는 철학이 보편적 ‘진리’라고 단호하게 역설할 생각은 없다. 때로는 점진론이 특정한 사실을 훌륭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단지 우리를 이끄는 철학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복수성, 그리고 이러한 철학이 필연적으로 우리의 모든 사고를 구속하게 된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250~252쪽)
어떤 사람의 동기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한바탕 비웃고 미친 학설이라는 식으로 일축하기는 무척 쉽다. 화폐석 생물권 이론은 사실 미친 이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취한 방법을 진지하고 세심하게 조사하는 파정에서 보상을 얻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열정이 일관성에 대한 타당한 인식과 주목할 만한 변칙적 가치를 갖지 않는 경우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320쪽)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우리의 기쁨이자 즐거움”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극진히 사랑했던 아들을 성홍열로 잃었을 때, 찰스 킹즐리(Charles Kingsley, 1819-1875년)는 영혼의 불멸에 관한 긴 이야기를 해 주며 그를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불가지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헉슬리는 킹즐리가 자신을 걱정해 준 것에는 감사했지만, 그의 위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헉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임무는 사실을 자신이 바라는 바에 따라 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바람이 사실과 일치하도록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 어린아이처럼 사실 앞에 겸허하게 앉아 모든 선입견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자연이 이끄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깊은 낭떠러지라 하더라도 겸손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322쪽)
공룡의 능력을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은 흔히 공룡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들먹여지는 사실, 즉 그들의 멸종이다. 멸종은 모든 생물의 궁극적 숙명이며, 운이 나쁘거나 잘못 설계된 생물만의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실패의 징후가 아니다.
공룡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멸종했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군림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약 l억 년 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포유류는 소형 동물로서 공룡들의 세계에 나 있는 작은 틈새에서 생활했다.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지 7000만 년이 지난 오늘날 포유류는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공룡과 같은 지구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사람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래 약 500만 년 동안 우리 자신이 속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온 기간은 고작 5만년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가치 체계에서 최후의 검증을 해 보자. “호모 사피엔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다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아주 유리한 조건이라도 상당한 금액을 내기에 걸 사람이 있을까?
(361쪽)
소수의 종이 계속 살아남은 반면, 다채로운 남아메리카의 생물 종들이 멸종한 것은 남북아메리카 양 대륙의 포유류들이 접촉하면서 우점종이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두 목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현존하는 포유류는 약25목으로 분류된다). 다양하고 거대한 생물군이었던 초식 포유류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면 우리의 동물원이 얼마나 풍부해졌을지 상상해 보라. 거기에는 찰스 다윈이 비글 호로부터 상륙 허가를 얻어 처음 그 화석을 발견한 코뿔소 크기의 전치류(細齒類)에서 티포테리움(typotherium)과 헤게토테리움(hegetotherium)에 속하는 토끼나 설치류와 닮은 종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또한 2개의 작은 생물군, 즉 크고 긴 목을 가진 낙타와 흡사한 마크라우케니아(macrauchenia), 그리고 가장 괄목할 만한 집단으로서 말과 닮은 프로테로테리움(proterotherium)으로 이루어진 활거목(滑距目, litoptern)을 생각해 보라.
이 남아메리카의 초식 동물들을 먹이로 삼던 토착 육식 동물들도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재규어와 그 동류에 해당하는 남아메리카의 현생 육식 동물들은 모두 북아메리카에서 온 침입자들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남아메리카의 토착 육식 동물은 모두 유대류였다. 북반구의 여러 대륙에 있는 태반을 가진 육식 동물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유대류 육식 동물도 상당히 작은 동물에서 곰 크기 동물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종류가 있었다. 그중 한 계통은 북아메리카의 검치호와 놀랄 만큼 흡사한 진화를 이루었다. 즉 유대류인 틸라코스밀루스(Thylacosmilus)는 먹이를 찌르는 긴 윗턱 송곳니와 이 송곳니를 뒤편에서 지탱하는 듯한 테두리가 아래턱뼈에 발달했다. 이 모습은 라 브레아(로스앤젤레스 근교)의 타르 늪에 보존되어 있는 스밀로돈(Smilodon, 검치호)과 똑같다.
(392~393쪽)
그들이 유대류였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북방의 태반을 가진 육식동물들은 단기간으로 끝난 대멸종을 두 차례 경험했다. 따라서 그 뒤에 등장한 새로 온 생물군들은 더 큰 적응적인 유연성을 가졌을 것이다. 번성을 계속하던 시기에 다양한 포식자와 피식자는 심한 경쟁, 섭식(빠른 먹이 섭취와 효율적인 분쇄)과 이동 능력(매복형 포식자는 빠른 가속성, 장거리형 포식자는 지구력) 등을 향상시키는 강한 진화적 경향을 낳았다. 그런데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식 동물은 어떠한 검증도 받은 적이 없었다.
북반구 여러 대륙에서는 태반을 가진 포식자와 피식자가 모두 제3기에 조금씩 뇌를 크게 진화시켰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에서는 육식성 유대류와 그 피식자였던 유태반류 모두 뇌의 무게가 같은 톰 크기의 평균적인 현생 포유류의 약 5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적인 도전에 각기 대응해 온 상대적인 역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우연히 북쪽의 육식 동물이 유대류였고 남쪽의 육식 동물이 유태반류였다고 해도, 나는 지협을 통한 교류의 결과로 남아메리카 쪽이 역시 참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아메리카의 동물상은 대량 멸종과 격렬한 경쟁 등 엄중한 시련으로 항상 검증받아 왔지만, 남아메리카의 육식동물은 심각한 도전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파나마 지협이 해변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진화의 저울에 달린 셈이다.
(398~399쪽)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년)는 1638년에 고전 법칙의 한 예를 수립했다. 즉 동물 다리의 강도는 그 횡단면의 넓이(길이×길이)의 함수이며, 양 다리가 지탱해야 하는 몸무게는 그 동물의 부피(길이×길이X길이)에 따라 변한다. 이러한 형태 변화에 대한 연구를 ‘축척 이론(scaling theory)’이라고 한다. 그 연구 덕분에 포유류의 몸무게가 생쥐에서 고래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0만 배로 증가하는 동안 그 형태도 뚜렷한 규칙성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든 포유류에서 몸무게에 대한 뇌 무게의 관계를 이른바 ‘생쥐-코끼리 곡선’(또는 뒤쥐-고래 곡선)으로 그려 보면, 일반 법칙을 나타내는 하나의 곡선에서 벗어나는 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옮겨 감에 따라 뇌의 무게는 몸무게가 늘어나는 속도의 3분의 2의 속도로 증대하는 데 그친다. (사람은 병코돌고래와 함께 그 곡선의 위쪽으로 가장 크게 벗어나는 영예를 차지한다.)
포유류의 ‘생쥐-코끼리 곡선’을 보면 소형 포유류에서 대형 포유류로 가면서 심장 박동 시간은 몸무게가 늘어나는 비율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의 비율로 증대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른바 생명의 불(火)이라는 신진 대사 비율이 포유류의 경우 몸무게가 늘어나는 속도의 4분의 3의 비율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생존을 계속하기 위해 대형 포유류는 소형 동물과 같은 정도의 단위 부피당 열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다. 몸집이 작은 뒤쥐는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포유류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신진대사의 불을 계속 지피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먹이를 먹고 있다. 그것에 비해 위엄 있게 물속을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흰긴수염고래의 심장은 온혈 동물 중 가장 느린 리듬으로 박동한다.
(404~406쪽)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1387-1455년)와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년)가 그린 날개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깃털을 달고 있었지만 어딘지 굳어 있고 생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Annunciation (Leonardo)
그런 다음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가 그린 가브리엘의 날개는 너무도 부드럽고 우아해서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브리엘의 얼굴을 조사하거나, 그가 마리아에게 준 충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이 왜 그처럼 차이가 나는지 깨달았다. 새를 연구했고 날개의 공기 역학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작동 가능한 날개를 가브리엘의 둥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 날개는 아름다운 동시에 기능적이었다.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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