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인들은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싶어한다. 최근 대법원이 분리독립 지도부에 중형을 선고하자 거센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 땅이지만 아일랜드 섬에 붙어 있는 북아일랜드 주민들은 브렉시트에 불안해 한다.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는 오랫동안 분리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지금은 폭력투쟁을 포기하고 자치를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여러 나라에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았다. 하지만 전쟁 기간 독일의 유대인들은 학살·추방당했고, 동유럽의 독일인들은 전후 독일로 추방됐다. 이런 강제이주로 인해 한 나라에 ‘대표민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쪽으로 민족적 동질성이 강화됐다. 이주자들이 많이 늘었다지만 독일인의 81%는 독일계, 이탈리아인의 92%는 이탈리아계다. 전쟁 전 폴란드에서는 소수민족이 32%였으나 지금은 3%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럽에는 민족적·언어적 소수집단들이 많이 남아있다. 어떤 집단은 규모가 크고 자치를 확보한 반면, 어떤 집단은 고유 언어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사멸 단계다.
산타클로스가 아닌 사미족의 땅
핀란드, 스웨덴,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라플란드는 사미족의 땅이다. 사미족은 10만명 정도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다. 노르웨이의 사미족은 기원이 1만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가 이들의 활동무대였으나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쪼그라들었다. 평등과 인권의 나라라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도 사미족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미족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닌다. 빨간 옷을 입은 현대의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사의 광고 캠페인에서 시작됐지만,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다니는 이미지는 사미족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라플란드는 산타클로스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올여름 유럽 폭염 같은 기후변화 때문에 사미족은 ‘기후 난민’이 될 처지다. 유럽연합(EU) 사미위원회의 엘레 옴마 위원장은 지난 8월 유로뉴스에 “우리의 순록 목축과 어업은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광산업과 석유·천연가스 채굴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면서 EU 차원의 토착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폴 매카트니는 ‘망크스’
비틀스 멤버로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까지 받은 폴 매카트니의 조상은 망크스인이다. 영국령 작은 섬인 맨 섬에서 기원한 망크스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74년 망크스어를 모어(母語)로 썼던 마지막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게일어와 혼합된 방언만 일부 남았다. 망크스의 후손들은 현재 4만명 정도 남아 있다. 맨 섬의 망크스 의회인 ‘틴왈드’는 역사가 1000년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의 맨 섬은 조세회피처로 더 유명하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채널제도에도 고유 언어를 가진 이들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다 영어 사용자로 바뀌었다. 맨 섬과 마찬가지로, 채널제도의 주요 섬인 건지 섬과 저지 섬 모두 조세회피처로 전락했다.
소르브의 부활절 달걀
소르브인은 폴란드와 접경한 독일 동부에 산다. 서슬라브계 소수민족으로, ‘세르비아’와 어원이 같다. 유전적으로는 체코, 폴란드계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로 보면 로마가톨릭과 루터파로 나뉘어 있다. 인구는 6만~8만명으로 추정된다. 손재주 좋은 소르브인들의 대표 상품은 정교하게 세공된 부활절 달걀이다. 오리 깃털을 이용해 색색깔 염료로 화려한 전통문양들을 그린다. 독일 정부가 소수언어집단으로 인정해주고 있지만 20세기를 거치며 독일어권에 흡수됐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젊은 세대 소르브어 사용자는 거의 없다.
스페인은 자치지역도 많고 언어도 많다. 프랑스와 인접한 북부 아란 계곡에는 옥시타니아계 방언인 아란어를 쓰는 이들이 산다. 바스크주와 나바르주 북부에는 바스크족이 산다. 카탈루냐에서는 카탈루냐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쓰이고, 동쪽 지중해의 발레아레스 제도에서는 발레아레스어를 쓴다. 발렌시아에서는 카탈루냐어 방언인 발렌시아어가, 갈리시아에서는 갈리시아어가 공용어다. 북부 아스투리아스주에는 별도의 ‘아스투리아스 공국’이라는 작은 자치국이 있다. 이곳에선 아스투리아어를 쓰지만 관광산업을 매개로 점점 더 통합되면서 언어 사용자가 역시 줄어들고 있다.
북구의 섬, 페로 사람들
덴마크령 페로 제도의 푀로잉야르, 즉 ‘페로인’들은 게르만계다. 2만1000명의 페로인 중 대부분이 덴마크인이지만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도 적은 수가 살고 있다. 국적이 덴마크일지라도, 페로인들은 자기들만의 헌법을 갖고 있으며 독립적인 공동체임을 자랑한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도 덴마크와 별개의 팀으로 출전했으나, 지난달 예선전에서 스페인팀에 4 대 0으로 패했다. 그린란드와 덴마크 본토 사이에 있는 페로제도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페로제도 관광당국은 2020년 개봉 예정인 007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를 이곳에서 찍는다고 소개했다.
섬이 아닌 산 속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해온 이들도 있다.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 돌로미테 계곡에 살아온 라딘족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영향력 속에서도 이들은 살아남았다. 구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거주해왔다는 라디니들은 지금은 알프스의 비경을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며 먹고 산다.
‘멸종된’ 리보니아어
옛소련에서 갈라져나온 라트비아에는 리브 혹은 리보니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인도-유럽어족 계열이 아니라 핀란드어와 유사한 알타이계 언어를 썼고, 지금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북부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살았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유럽의 영토쟁탈전 속에 언어와 문화를 빼앗기기 시작했고 20세기에 소련은 이들의 전통방식 항해와 그물낚시를 금지해버렸다.
모어로 리보니아어를 쓴 마지막 인물인 그리젤다 크리스티나가 2013년 사망하면서 이 언어는 ‘멸종’됐다. 올 1월 라트비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제2언어로 리보니아어를 쓰는 사람이 167명 남아 있다. 2002~2018년 사이의 통계로 볼 때 에스토니아에 22명, 러시아에 7명, 미국에 2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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