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자식도 형제도 없던 술탄…오만의 왕위 승계와 미-이란 관계

딸기21 2020. 1. 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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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타계한 오만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2019년 1월 14일 수도 무스카트의 베이트 알바라카 왕궁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날 당시의 모습이다.  무스카트 AP연합뉴스

 

반세기 동안 권좌를 지켰던 오만의 술탄이 세상을 떠났다. 자식도, 형제도 없는 술탄의 타계 뒤 권력승계가 어떻게 이뤄질 지 관심이 집중됐으나, 생전에 남긴 ‘편지’가 개봉되면서 곧바로 사촌이 즉위를 했다. 뉴스에는 잘 등장하지 않지만 물밑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걸프의 왕국 오만에서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타계한 술탄이 미국과 이란 사이의 숨은 중재역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중동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오만 국영 ONA통신은 지난 10일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결장암을 오래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튿날인 11일 술탄 카부스의 사촌인 하이삼 빈 타리크 문화유적부 장관(65)이 곧바로 즉위했다.

 

세상을 떠난 '계몽 군주'

 

술탄 카부스는 1940년 당시 ‘무스카트·오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걸프의 왕국에서 술탄 사이드 빈 타이무르 알사이드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4대째 이어온 알사이드 왕실의 후계자였던 그는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영국군에서 복무했다. 영국이 ‘인도양의 진주’ 오만을 통치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66년 귀국한 술탄의 외아들이었음에도 권력다툼을 걱정한 아버지의 핍박을 받고 가택연금을 당했다.

 

1970년 카부스는 아버지에 맞선 궁정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고, 국가 이름을 현재의 ‘오만 술탄국’으로 바꾼 뒤 노예제 폐지를 비롯한 근대적 개혁을 단행했다. 아라비아반도 남동쪽 끝, 걸프에 면한 오만은 넓이 30만㎢에 인구는 460만명이다. 오만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지만 국경을 맞댄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혹은 인접한 카타르 등에 비하면 적다. 석유 매장량은 53억배럴, 천연가스 매장량은 6510억㎥로 추정된다.

 

11일(현지시간) 오만 무스카트에서 ‘중동의 비둘기’로 불렸던 술탄 카부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오만TV·AFP연합뉴스

 

여전히 국가 수입의 4분의3을 에너지 자원에 의존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오만은 정유기술을 향상시키고 산업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관광산업을 키우고 선박·물류에 투자했고, 국민들 교육수준을 높였다. 2017년 교육비가 국내총생산의 6.8%를 차지했다. 문자해독률은 96.1%인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남성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4만6000달러에 이르고, 삶의 질은 높아졌고, 도시화가 85% 이상 진행됐다.

 

서방 학자들은 걸프의 다른 산유국들에 비해 자원보유량이 적은 오만이 ‘탈석유 경제’로의 전환에 더 일찍 눈떴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카타르나 두바이처럼 화려한 이벤트와 건축물들로 세계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내실을 기해왔다는 것이다. 2011년 중동 전역에서 ‘아랍의 봄’ 시위가 일어났을 때 오만 왕실은 재정을 털어 반발을 잠재웠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한국외대 백승훈 박사는 “인도양에 면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오만은 중국 일대일로 계획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술탄 카부스도 일대일로가 자국의 외교력과 정치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만 국민들은 50년 가까이 집권한 그를 ‘건국자’이자 근대화의 아버지로 기억하며 애도하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고아들과 빈자들의 아버지, 짓밟힌 이들과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떠났다”며 애도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오만 무스카트 시내에 11일 술탄 카부스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무스카트 로이터연합뉴스

 

아들도 형제도 없던 술탄

 

UAE의 경우 7개 에미리트들의 연합체로 아부다비 에미리트와 두바이 에미리트가 양대 축이다. ‘맏형’인 아부다비의 군주(에미르)는 아들이 승계한다. 사우디에서는 초대 군주의 아들들이 형제 승계로 권력을 이어왔고,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현 왕세자가 집권해야 3세대로 넘어가는 것이 된다. 카타르에서는 하마드 빈 칼리파 전 국왕이 카부스처럼 아버지에 맞선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개혁을 실시했고, 2013년 아들인 셰이크 타밈 현 국왕에게 권좌를 물려줬다.

 

그런데 오만의 개혁군주 카부스에게는 자손이 없었다. 그는 한 차례 결혼을 했고 3년 뒤 아이 없이 이혼했다. 이후 독신생활을 고집했고, 그 자신이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형제도 없다. 이 때문에 권력승계 문제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헌법에 따르면 술탄이 공석이 되면 사흘 안에 ‘왕실’이 회의를 열어 후임자를 골라야 한다. 카부스 타계가 전해지자마자 왕실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됐다.

 

혼란은 없었다. 카부스가 1997년 이미 후임자를 적어둔 편지를 남겼다. 누가 후계자인지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카부스는 2011년 법을 정비해 승계 절차를 완성시켜놨다. 왕실은 그가 타계하자 편지를 개봉해 술탄 하이삼의 즉위를 결정했다. 하이삼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고 1980년대에 오만축구협회장을 지냈으며 1986~94년 외교장관을 지냈다. 이후 2002년까지 외교총괄역을 맡았고 문화유적장관도 겸임했다. 공개석상에 잘 나오지 않는 카부스를 대신해 오만의 얼굴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오만의 새 술탄 하이삼 빈 타리크가 11일 즉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무스카트 AFP연합뉴스

 

카부스는 11일 곧바로 왕실 묘역에 안장됐다.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 중동의 관심은 그의 타계가 가져올 역내 영향에 쏠려 있다. 중동 여러 나라들이 전쟁과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에도 오만은 조용했다. 늘 안정된 상태였고, 뉴스에 등장할 일이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물밑에서 카부스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카부스가 아버지에 맞선 무혈 쿠데타로 집권할 적에 영국과 함께 이란이 도움을 줬다. 당시만 해도 이란은 반미국가가 아닌 친미 파흘라비 왕정이 집권하고 있었다.

 

미-이란 중재 누가 맡을까

 

사우디가 주도하는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이었지만 오만은 이웃들과 달리 이란과의 관계를 유지해왔고, 미국과 이란이 극도로 적대할 때에도 물밑에서 대화를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다. 2015년의 핵합의를 이끌어낸 숨은 공신이었으며, 사우디와 예멘 후티 반군의 협상도 오만이 중재했다. 2017년 사우디·UAE가 카타르와 단교하며 싸울 때에도 중립을 유지했다. 2018년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오만을 방문해 카부스를 만나기도 했다.

 

오만인들이 이슬람 내에서도 독특한 이바디파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20년, 약 650년 무렵에 형성된 이바디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지기 전에 형성된 종파로, 주로 오만에만 존재한다.

 

미-이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이 시점에 ‘중동의 비둘기’였던 카부스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중재할 사람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 술탄 하이삼은 즉위 일성으로 “평화적인 외교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영TV로 방영된 연설에서 “작고한 술탄의 길을 따르겠다”며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주권과 국제협력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전임자처럼 분쟁 중재자 역할을 계속하려 할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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