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해리 왕자 '독립'으로 도마에 오른 영국 왕실 재정

딸기21 2020. 1. 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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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2017년 11월 런던의 켄싱턴궁에서 찍힌 모습이다.  런던 AFP연합뉴스

 

영국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35)와 부인 메건(38)이 최근 ‘독립선언’을 해 영국이 시끄럽다. 해리 왕자는 왕실 돈도 받지 않을 것이며 ‘왕실 고위 구성원’에서도 빠지겠다고 했고, 급기야 할머니인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13일(현지시간) 샌드링엄의 왕실 소유 저택에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회의 뒤에 여왕은 “해리가 왕실 가족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본인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어릴 적 말썽쟁이 취급을 받았던 해리는 형 윌리엄에 이어 왕립군의 일원으로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며 악동 이미지를 씻었다. 겨우 10주 동안 전선에 투입된 것을 가지고 왕실이 ‘영웅 만들기’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왕실 생활이 평탄치는 않았다. 2013년 그는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방탄복을 입고 지뢰제거 운동에 동참했다.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해리의 어머니 고(故) 다이애나비가 주도했던 일이었다. 다이애나비에 적대적이었던 왕실은 내심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또 돌았다. 2018년 이혼 전력이 있는 미국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하면서 왕실과 충돌했다는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결국 해리는 지난 8일 말 많고 탈 많은 왕실 생활을 청산하고 개인의 삶을 찾겠다고 선언했고, 재정적으로도 독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금과 보안 문제, 왕실 규정 등이 있기 때문에 재정적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영국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이 공식 웹사이트에 올린 글.

 

해리 부부는 웹사이트에서 “새로운 워킹 모델”을 찾겠다고 했다. 공식 호칭이 ‘서섹스 공작’과 ‘서섹스 공작부인’인 이 부부는 양말부터 엽서까지 ‘서섹스 로열’이라는 브랜드를 붙인 제품들을 팔 계획이다. 결국 왕실 배경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어서 완전한 독립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선데이타임스는 “해리의 돈은 3명의 여성에게서 나온다”며 “할머니인 여왕, 글로벌 스타였던 어머니 다이애나비, 그리고 미국 태생의 배우 출신 아내”라고 썼다.

 

왕실 고위 구성원에서 빠지겠다고 했지만 정부가 돈을 대는 경호는 그대로 받으며, 연간 240만파운드의 세금을 지원받는 여왕 소유 주택에서 계속 살게 된다. 당분간 캐나다로 가 있겠다고 했으나 현지 경호비를 누가 낼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캐나다 측이 비용을 내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나 빌 모노 캐나다 재무장관은 13일 “논의된 것은 없다”며 부인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버킹엄궁의 재정이 다시 여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해 왕실 재정을 분석해보니 왕실의 자산은 여왕과 찰스 두 사람이 거의 다 갖고 있었다. 여왕이 부동산 등으로 2070만파운드(약 310억원)를, 찰스는 2160만파운드(약 323억원)를 벌었다.

 

여왕 직속 랭카스터 공작령의 부동산은 5480만파운드의 가치가 있는데 트러스트로 묶여 있고, 여기서 수입이 나온다. 그러나 여왕의 개인 수입은 자세히 공개되지는 않는다. 찰스의 수입이 여왕보다 더 많았던 것은, 찰스가 가진 콘월 공작령의 부동산 가치가 9238만파운드로 훨씬 높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 왕실은 자체적으로 부동산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으나 납세자들이 낸 세금으로 지원받는 돈이 훨씬 더 많다.  런던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금이 8220만파운드(약 1230억원)로 훨씬 많았다. 여왕이 번 돈은 여왕에게 갔고, 찰스가 번 돈은 찰스와 아들들에게 배분됐지만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 지원금은 이들 모두에게 들어갔다.

 

1760년 영국 왕실은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대가로 의회에 영지 대부분을 내줬다. 그것이 지금껏 세금을 통한 지원으로 이어져왔다. 세금은 버킹엄궁을 비롯한 왕실 자산의 유지보수와 의전에 주로 들어간다. 연간 지원되는 돈은 관리 대상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과 연동돼 있는데, 2017년부터 버킹엄궁이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가면서 증액됐다.

 

다이애나비가 숨지고 찰스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왕실폐지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여왕은 ‘세금이 아깝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살림살이에 신경을 많이 써왔다. 랭카스터 공작령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알뜰히 재투자해 불리고, 왕실 요트를 처분하는 등 씀씀이를 줄이고,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냈다.

 

 

골칫거리 아들 앤드루와 에드워드에게는 1990년대부터 세금으로 받는 돈을 주지 않았다. 당시 두 아들은 나란히 시끌벅적하게 이혼을 해 말이 많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왕실의 평판을 위해서 철없는 자식들과 거리를 뒀던 것이다. 그러나 두 아들들은 여전히 엄마의 ‘개인 수입’으로부터는 돈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 망나니로 유명했던 앤드루는 영국의 무역특사를 맡으면서 이미지를 바꾸나 싶었는데, 지난해 자살한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을 둘러싼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윌리엄과 해리가 높여 놓은 왕실의 평판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왕의 막내아들 에드워드는 TV프로덕션을 운영하다가 문 닫고 엄마 돈으로 살고 있다.

 

2013년 아프리카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하는 해리 왕자(왼쪽). 오른쪽은 생전에 같은 활동을 했던 고 다이애나비의 모습이다. 게티이미지

 

버킹엄궁은 ‘스타 파워’가 높은 해리 부부의 탈왕실 선언 때문에 왕실의 브랜드 가치가 더 줄어드는 걸 걱정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그러나 해리가 왕실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결국 나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해리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해리와 메건의 아프리카 여행’이라는 다큐필름도 제작했던 절친 톰 브래드바이는 일간지 선에 12일 ‘악의로 가득한 궁전에서의 탈출’이라는 글을 기고, 해리의 독립선언 뒷얘기를 폭로했다. 왕실 식구들이 너무 비우호적이라 해리 부부는 사실상 쫓겨난 것이며, 독립할 것이라는 사실도 왕실에서 유출했다는 것이다. 3년 전 약혼을 했을 때부터 메건이 흑인 혼혈이라는 점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고,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적대적인 질시’를 받곤 했다고 적었다. 몇몇 언론들은 해리가 메건 문제로 왕실과 불화를 겪다가 뛰쳐나왔다며, 브렉시트에 빗대 ‘멕시트(Megxit)’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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