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만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의 치료제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약이 있다.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렘데시버(Remdesivir)’다. 임상시험 자원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이 약이 치료제가 될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게다가 길리어드는 특허를 무기로 ‘생명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회사다.
임상시험 자원자 쇄도
미국 의약전문매체 스타트 등은 6일(현지시간) 길리어드가 만든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버 임상시험이 미국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료진들의 독립적 연구도 있지만 가장 관심 끄는 것은 길리어드가 후원한 2가지 연구다. 하나는 코로나19 중증환자 453명 대상으로 한 시험이다. 플라시보(위약)와 비교하기 위해 의료진과 대상자 모두에게 약의 진위 여부를 숨기는 이중맹검 방식으로 약 한 달 간 투약을 한다. 두번째는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환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실험이다.
렘데시버는 바이러스의 효소에 작용해, 바이러스가 제대로 증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으로 10년 전 개발됐다. 이 약이 투약되면 바이러스가 복제본을 만들어도 완전한 RNA게놈을 갖추지 못해 증식하지 못한다. 원래는 아프리카에 퍼진 에볼라나 마버그바이러스 등의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에볼라 감염자들에게 투약했을 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들이 있다. 동물 시험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사스, 메르스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올 1월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약을 치료제 후보로 주목했다.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두 시험 모두 이달 중으로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현재로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스타트는 보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료제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약의 특성상 투약 시점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바이러스가 이미 증식된 뒤라면 치료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약의 적용 방법을 개선할 수 있다.
미국에선 국립보건원(NIH)이 400여명을 모아 임상시험을 하고 있으며 노스캐롤라이나대, 밴더빌트대 등도 시험에 들어갔거나 준비 중이다. AP통신은 시험대상이 되겠다는 자원자들이 병원마다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국립보건서비스(NHS)의 지원으로 리버풀대학 등이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연말까지 100만명분 생산”
길리어드 최고경영자 대니얼 오데이는 지난 4일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약을 구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회사로 밀려들고 있으나 우리는 윤리적이고 책임성 있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14만명에게 투약할 수 있는 양의 렘데시버를 각국에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효과가 인정되면 양산체계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치료제로 인정받더라도 팬데믹이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수요를 따라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길리어드측은 10월까지 50만명분을, 연말까지는 100만명 투약분을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길리어드의 약속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에 본사를 둔 길리어드는 1987년 존스홉킨스의대 출신 의사 마이클 리어던이 창립했다. 항바이러스제, B·C형간염 치료제, 인플루엔자 치료제 등을 주로 생산한다. 설립 당시 이름은 올리고젠이었으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길르앗의 유향’으로 알려진 전통약재의 지적재산권을 확보한 뒤 회사 이름을 길리어드로 바꿨다.
1997년 이 회사는 도널드 럼즈펠드를 영입했다. 럼즈펠드는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이사회장으로 있었고, 장관이 된 뒤에도 정부 윤리지침을 어겨가면서까지 길리어드 주식을 내놓지 않아 거센 비판을 받았다. 럼즈펠드와 길리어드의 공생관계는 양쪽 모두에 큰 이익이 됐다. 타미플루 덕분이었다.
WHO가 2009년 신종플루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뒤 치료제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WHO가 제약회사들과 결탁했다’는 비난이 일었고, 뒤에 WHO가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당시 세계 언론의 타깃이 된 것은 로슈였지만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회사는 길리어드였다. 다만 길리어드는 대량생산 능력이 없어 로슈에 라이센스를 넘기고 특허료를 받아 챙겼다. 미국 정부는 타미플루를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였고, 이 과정에서 길리어드와 럼즈펠드 모두 이익을 챙겨 눈총을 받았다.
‘생명 장사’ 반복된 논란
길리어드는 2006년 코러스파마라는 회사를 사들이면서 호흡기질환 치료제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했다. 이를 포함해 2000년대 내내 해마다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몸집을 불렸다. 2012년에는 미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에이즈 예방약’으로 불리는 트루바다의 판매승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 가격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소포스부버 성분으로 만들어진 이 약을 길리어드는 1정 당 1000달러씩에 팔았다. 환자 한 명이 12주 동안 치료를 받으려면 8만4000달러를 써야 했다. 이 약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상원에서까지 문제를 삼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렸다.
2000년대 중반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맞서 제너릭(카피약) 생산을 늘렸다. 인명을 살릴 필수약들에 대해선 제약회사들의 특허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세계에서 일어났고 세계무역기구(WTO)도 특정 약품에 대해서는 개도국들 주장을 받아들여줬다. 그러나 길리어드는 인도 등 개도국 제약회사들에게 불공정한 경쟁조건을 강요하면서 반발을 샀다. 지난달 길리어드는 렘데시버에 대해서도 7년간 판매수익을 독점하는 희귀의약품(ODS)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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