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얀마 쿠데타
2021년 2월 1일 군부(땃마도)가 쿠데타, 민주선거로 집권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원들을 축출. 민 세인 대통령 대행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선언.
그 전 해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 승리. 그 결과 뒤집기 위해, 의원 선서 전날에 쿠데타. 수지 국가고문은 구금, 국가재난법 위반, 통신법 위반, 불안 선동 등으로 기소. 지난해 12월 징역 33년형 선고. 올해 77세, 정치활동 아예 못하게 하려는 것.
[CFR] Myanmar’s Troubled History: Coups, Military Rule, and Ethnic Conflict
군사정권 기구 국가행정위원회(SAC)는 1월 31일 비상사태를 연장.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새 정당법에 따라 재등록하라는 요구 거부. NLD를 선거의 들러리로 세우기 위해 지난달 군부는 감옥의 수지 국가자문까지 끌어들여서 당 중앙위원들을 억지로 만나게 하려 했지만 수지 고문이 거부. 그러자 군부는 정당 재등록 거부한 NLD 등 40개 정당 해산.
그러면서 독립기념일 대규모 퍼레이드, 수도 네피도에 거대한 사원 짓고, 최근 흰 아기 코끼리와 2,800캐럿짜리 루비가 발견됐다며 정권 정당성 보여주는 신의 징조라는 주장까지. 불복종 운동과 시민들 시위는 동력을 잃고 있음. 군부는 체포와 구금, 고문으로 고강도 탄압. 저항 세력과 연계된 소셜미디어에 '좋아요'만 눌러도 최대 징역 10년형 선고할 수 있다고 발표. 소수민족 지역엔 공습, 폭격.
배경- 미얀마 역사는 억압과 저항의 역사
1948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 수지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독립 영웅. 하지만 독립 10년 뒤인 1958년 첫 군사정권 들어선 이래로 거의 대부분 기간을 군사독재정권이 지배. 특히 1962년 정권을 잡은 네윈 장군은 무려 26년간 장기집권. 시민 자유를 억누른 것은 물론이고 민족/종교집단 간 분열을 조장, 지금도 계속되는 민족갈등을 구조화. +국제적 고립.
시민들의 저항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88년의 '8888 항쟁'. 영국에 머물던 수지가 돌아와 경제난과 식량부족 등에 항의하는 시위의 구심점이 됨. 군부는 무차별 탄압으로 대응. 3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 수지는 민족민주동맹(NLD)을 만들었지만 1989년 투옥됐고 2010년 풀려날 때까지 21년을 가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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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압박과 제재에 밀린 군부는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 2008년 새 헌법이 만들어짐. 그러나 의원 4분의1을 군부가 임명하게 하고/개헌하려면 의원 4분의3 넘어야 가능하게 해놨음.
2011~2015년 단계적 민주화. 2015년 선거에서 NLD가 승리했지만 수지는 대통령이 될 수 없어 국가고문으로. 헌법상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외국 국적의 자녀를 둔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규정(숨진 남편과 두 아들이 영국 국적). 하지만 2020 총선에서 NLD는 2015년 선거보다 더 큰 표 차이로 승리. 의석 476석 중 396석을 차지. 반면 군부 대리정당은 33석에 그침. 군부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더니 결국 쿠데타.
군정과 싸우는 국민통합정부
반정부투쟁 이끄는 최대 조직은 국민통합정부(NUG). 쿠데타로 축출된 의원들이 중심이 돼 구성한 망명정부. 옛 집권당 NLD와 소수민족 단체, 다양한 군소정당 대표들 포괄. 군부는 불법 테러조직이라 주장하지만 유럽 의회는 NUG를 미얀마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 미국,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 체코, 호주, 한국에 대표 사무소 설립. 군부가 만든 2008년 헌법 무효 선언, 국가통합자문위원회(NUCC)를 만들어 새 헌법 초안 작성. 2022년 1월 민주진영 인민의회가 ‘연방민주주의헌장’을 비준.
쿠데타 직후 세계에 비쳐진 모습, 세 손가락 항의 표시를 하는 평화시위대. 하지만 요즘 나오는 것들은 총탄에 맞은 시신, 불타버린 마을, 난민 가족의 이미지. 즉, 사실상 내전 상황.
[더디플로맷] 2 Years of Turmoil: Myanmar’s Spiraling Civil War
태국에서도 2014년 군부 쿠데타, 오랫동안 계엄통치에 지금도 억압 계속. 하지만 태국과 달리 미얀마에서는 내전 양상으로. 1) 민주화 10년 동안 성인이 된 젊은 세대는 군부에 격렬하게 저항. 군부의 민주선거 약속 믿지 않음. 2) 특히 평화 시위에 실탄이 난사되자 민주화 운동가들은 무장 저항으로 돌아섰음. 3) 게다가 변경지역에 이미 소수민족 무장집단들 다수 존재. 주요 조직만 20개가 넘음. 저항에 나선 젊은이들이 그런 무장집단 들어가 군사훈련 받고 무장투쟁 나섬.
2021년 5월 NUG는 인민방위군(PDF) 결성, 9월에는 군사 정권에 맞서 '인민 방어 전쟁' 선포. NUG 병력은 인민방위군+ 소수민족 무장단체(EAO)들로 이뤄져 있음. 무력 투쟁으로 나아간 것이 이전의 망명정부와 다른 점.
1월말 전국 비상사태를 연장하는 연설에서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이 말한 것을 보면 미얀마의 330개 지역 중 60%는 ‘평화롭다’, 20%는 ‘치안 강화 필요’, 또 다른 20%는 ‘효과적인 치안 필요’. 군사정권 확실한 통제하에 있는 곳이 60%라는 것을 군부 지도자가 인정한 꼴.
[미국 평화연구소] Support for Myanmar’s Junta Only Prolongs the Country’s Conflict
국민통합정부 진영은 지난해 10월 “2023년 안에 군부 축출하겠다” 올 2월 말에는 저항군이 전국 절반인 154개 지역 행정팀 구성해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 하지만 여기에도 좀 과장이 있는 것 같고. 내전은 교착상태.
군부와 저항군 양측의 한계
군부가 주요 도시와 도로 통제하고 있지만 친, 사가잉 같은 국경지대 저항세력 거점들 접근하려면 헬기 의존해야. 저항군이 통제하는 ‘해방지역’들을 노리고 공습.
[구정은의 '수상한 GPS']군부 vs 소수민족, 다시 부상한 미얀마의 싸움
1960년대부터 26년 집권한 네윈 독재정권 시절 만든 군 정보국(MIS), 영어 모르는 농촌 주민들도 ‘엠아이’라 하면 알 정도로 전국에 퍼져있던 정보기관이자 두려움의 대상. 그런데 2004년 정보국 숙청 뒤 군부의 전국 장악력 약해짐. 최근 중국 감시기술 도움 받고 ‘달란’이라 불리는 정보원 네트워크들 만들면서 정보기구 재건 중.
하지만 병력 부족. 지휘관들이 추가수당 받고 병력모집 할당량 채운 것처럼 보이려 수치 조작. 실제 유효 전투력은 10만~15만 추산. 거기에 무장경찰과 예비군, 민병대 등 더해야겠지만 군부 병력이 그리 많지 않음. 군부는 올해 군사비 지출을 국가 예산의 25%가 넘는 27억 달러로 늘리고 저항군의 자금, 식량, 정보, 신병모집 끊는 ‘4컷(Four Cuts) 전략’.
그러나 저항군은 사라지지 않고 있음. NUG 대변인 작년 7월에 “200만 저항군이 있다” 이건 너무 과장. 전략정책연구소(ISP-Myanmar)에 따르면 인민방위군 20만명. 하지만 실제 전투원 수는 5만~10만 추정, 무장상태도 열악. 그럼에도 3D 프린팅 총기, 상업용 드론, 지뢰, 총기 제작 진전 이루며 비대칭전에 적응하고 있음. 군 기지와 호송대 습격해 무기 격차를 메우고 있고. 대체로 검문소 등에 매복해 땃마도 군을 공격하고 재빨리 철수하는 방식. 땃마도군 탈영과 ‘수박’이라 불리는 내부 동조자들도 상당수.
다만 저항군도 지역별로 500여개 부대가 제각기 독자적으로 행동, 통합 지휘구조 없는 한계.
교착상태로 가다 보니 인명피해가 커짐
지난 11일에는 사가잉 지역의 한 마을에 수차례 공습, 아이들 포함해 170명 이상 사망.
군부는 국내 언론 장악하고 인터넷 통제, 망명언론들은 대부분 저항세력 선전. 정확한 정보 파악하기는 힘든 상황. 하지만 대략적인 추산은 가능. 미국 무력충돌 위치·사건 데이터(ACLED) 프로젝트, 쿠데타 뒤 정치 폭력 사망자 약 3만2천 명 추정.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숨진 소수민족 반정부군이 약 2만명. 2년간 무력 충돌 약 6,100건, 남동부 태국 접경 카렌족 지역만 4100건 넘는 전투+정부군 폭격. 북서부 사가잉과 마그웨이 지역 사망자 많고, 카렌족 지역도 큰 피해. 국민통합정부는 “정권 군대 2만명 이상 사살” 주장하지만 아마도 과대선전하는 것 같고.
시위, 저항 나섰다가 유혈진압에 희생된 사람은 약 3200명. + 17500명 가량 구금 상태.
인도적 재앙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지난달 미얀마 인구 3분의 1인 1760만명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며 쿠데타 이후 1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보고. 교전 심한 북서부 90만명, 남동부 40만명. 카렌 지역은 주민 3분의1이 난민 됐다고. 불탄 집 약 5만채. 쿠데타 이전에 존재했던 국내 난민 33만명,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로힝야 난민 100만명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
유엔은 코로나19와 쿠데타의 이중 충격으로 국민 절반이 빈곤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임. 군부는 구호기구나 인도주의 단체 활동 극도로 제한. 여행허가, 강제 재등록 등의 조치를 무기화. 분쟁 지역 농업 생산량 줄어 식량 모자라고, 코로나19 관리도 실패.
절이나 고아원에는 정부군과 저항군 양측의 신병 모집을 피해 부모들이 떠나보낸 아이들. 빈곤과 사회 붕괴로 2년 새 학교 그만둔 아이 800만명 추정. 2020년 대입 시험 응시자 91만명, 올해는 18만명뿐. 미래를 잃는 것.
경제
쿠데타 뒤 미국은 군부 제재하고 미국에 있는 미얀마 정부자산 10억달러 동결. 미얀마에 들어가 있던 일본 스즈키 자동차, 양곤 산업단지 개발 중이던 태국 기업 아마타, 프랑스 에너지회사 토탈 등등 사업중단. 포스코도 2021년 4월 미얀마 군 소유 기업과의 협력 중단. 그러나 쿠데타 뒤 미얀마 경제 잠시 위축됐던 미얀마 경제, 세계은행은 올해 3% 성장 예상.
그럼에도 국민들 절망은 커지고 있고 노동력 탈출 가속. 교육수준 높은 젊은층이 대거 외국행. 통화가치 반토막, 부채 위기설도 나돌고. 군부가 모든 경제충격을 국민들에게 전가한 탓.
[이라와디] Myanmar’s Dictators Have Always Relied on a Brutal Secret Police Force
카렌족과 정부군의 싸움
미얀마 5700만명 인구 중 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등. 공식 민족집단만 135개. 과거 군부정권은 변경지대 자원 채취하면서 소수민족 거주지 파괴하고, 주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 라카인주 등에 살던 로힝야 3만명 학살, 국제사회는 제노사이드(종족말살)로 규정.
미얀마 민주화는 수지 정부의 기반인 주류 버마족들만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비판도. 주류 버마족은 소수민족 탄압에는 상대적으로 눈을 감음. 군부의 힘이 남아 있는 탓도 있지만 권력과 개발의 결실을 버마족이 독식. 소수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다수가 눈감을 때 결국 그 억압이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군부가 주류 버마족의 이반을 막으려면 소수민족과의 분쟁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고강도 탄압하는 수밖에. 쿠데타 직후 유엔 미얀마 특사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소수민족 학살 우려하며 안보리 비공개 회의에서 “피바다(blood bath)가 임박했다” 경고. 실제로 가장 심각한 상황은 소수민족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음.
그 중 하나가 카렌족. 카렌주, 카인주 등에 약 160만명. 미얀마가 버마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이듬해인 1949년부터 소수민족 배제에 반발해 카렌민족동맹(KNU) 만들고 분리 투쟁을 시작. 자체적으로 세금 걷고 태국과의 국경무역에서도 돈을 거둬 조직을 운영. 산하 무장조직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땃마도에 맞서는 최대 세력.
민주화 시작되자 2012년 정부와 휴전협정. 그런데 재작년 쿠데타 뒤 군부의 공격이 재개되자 다시 무장저항 시작. 정부군이 20년만에 전투기 띄워 카렌 공습한 것은 쿠데타 일으키고 두 달도 되지 않은 2021년 3월말.
민주진영은 쿠데타 뒤 소수민족들에게 손짓. 군부가 만든 헌법 없애고 미래 다시 만들 연방국가 헌법 작성. 독립 당시 아웅산 장군이 그런 연방국가를 꿈꿨는데 안타깝게도 암살당하면서 무산.
중서부 라카인주의 아라칸 민족은 2009년 아라칸군(AA) 결성, 2015년부터 정부수립 선언. 최근 반정부 매체 이라와디 보도, 국민통합정부가 아라칸군대에 창설 14주년 축하메시지 보내며 공동의 적과 싸우자 요청했다고.
지금은 버마족 민주진영 태도 바뀐 것 같고 소수민족들도 협력하고 있지만, 다른 민족들이 버마족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가 관건. 쿠데타 뒤 양곤에서 시위대 3000명 죽어나가자 민주진영은 세계에 도움을 호소. 물론 엄청난 학살. 그런데 로힝야 3만명 학살당할 때 그들은 뭘 했나. 미얀마 민주진영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놔야.
국제사회의 무관심
태국이 망명 중인 민주화 운동가 3명 미얀마로 강제송환,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 비판.
2021년 4월 자카르타 아세안 정상회의 때 군부 지도자 민아웅 훌라잉 참석. 다만 국가원수로 명시되지는 않음. 국민통합정부 지도부도 아세안과 접촉했지만 초대받지 못함. 그해 5월 유엔이 미얀마 결의안 만드는데 무기 금수 조항 삭제하라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9개국 정부가 요구.
1)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밀려남
2) 미국과 유엔이 미얀마 학살 규탄했지만 미국도 큰 관심 없으며 군부 제재는 개인/단체 제재에 그치고 있음. 활동가 단체 ‘미얀마를 위한 정의’는 미얀마 군부에 미국 등 22개국 에너지회사들이 계속 수익을 내주고 있었다고 폭로. 셰브론 등 미국 회사들은 미얀마 군부 광범위한 제재에 반대하는 로비를 했다고.
3) 중국과 러시아는 군부 비호, 국제사회의 포괄적 무기 금수조치나 외화 유입 차단도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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