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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딸기21 2023. 9.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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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의 정치 1, 2
한스 모겐소. 이호재, 엄태암 옮김. 김영사

 

일단 우리가 특정 개인들과 집단이 악의 근원이라고 동일시하고 나면 그들 개인과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인과적 연결 고리를 이해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귀신론적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공산주의건 아니건 국가의 권력이라는 진정한 위협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즉 매카시즘은 러시아 세력이라는 실제 위협을 대부분 허상에 불과한 국내 전복세력의 위협으로 대치했던 것이다.
-92-93
우리 시대 특유의 두 가지 사실은 미국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의 상대적 중요성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먼저 이 책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미국은 지구 상의 가장 강력한 두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실재적, 잠 재적 여러 경쟁국과 비교해볼 때 미국의 대외 정책이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지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이 강력하지는 못하다. … 미국은 위험한 존재인 동시에 취약한 국가며,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불안해하는 국가가 되었다.
-124
우리가 권력이라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힘을 가리킨다. 정치적 권력이란 공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또 그들과 일반 대중 사이에 통제력이 발휘되는 상관 관계를 의미한다.
정치권력은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들과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관계를 말한다. 이때 영향력은 세 가지 원천에서 생기는데 보상에 대한 기 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사람과 제도에 대한 존경이나 애정이 그것이다. 이런 개념 정의를 고려한다면 네 가지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권력과 영향력 간의 구분, 권력과 무력 간의 구분, 사용 가능한 힘과 사용 불가능한 힘, 그리고 합법적 권력과 불법적 권력 간의 구분이 그것이다.
-132
‘과학적' 국경을 찾는 일은 18세기 후반부에 시작되었다. 영토를 분할하고 합병할 때 배분되는 영토 조각의 상대적 가치가 토양의 비옥도, 인구의 숫자와 질 등 어떤 객관적 기준을 근거로 결정되던 무렵이었다. 이리하여 영토 경계를 확정하는 일은 일종의 수리적인 작업이 되었다.
'지정학'은 외교정책 전반을 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정치 문제를 과학적 명제들로 축소하는 이런 경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158

국내적으로 자유주의가 거둔 승리는 정치 영역의 독특한 축소로 이어졌고 따라서 비정치적 영역은 폭이 확대되었다. 결국 비정치 영역은 별도의 합리적 검토를 받게 되었다. 과거에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투쟁에서 상처럼 여겨지던 목표들이 이제는 냉정하게 사실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접근되고 있으며 경제학, 행정 혹은 법률의 특별한 기술과 더불어 숙달되고 있다. 맨 먼저 자연과학과 종교가 정치의 지배권에서 분 리되어 독자 영역을 구축했다. 그다음은 자유주의인데, 국가를 정복함으로써 정치의 직접 지배에서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자유롭게 했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는 국가 영역에서 정치마저 내몰아버리고 정치 그 자체를 과학으로 만들어버린 듯 보였다.
-167


‘제국주의 구별하기’ 재미있었음.

‘제국주의'라는 개념은 이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가운데 그 자체의 구체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1. 한 국가의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모든 외교정책이 반드시 제국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제국주의를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 둘 혹은 그 이상의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역전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권력관계의 본질적 측면은 해치지 않은 채 부분적인 조정만을 추구하는 정책은 여전히 현상유지정책의 일반적 범주에 속한다.
2. 이미 존재하는 제국을 보존하자는 목적의 외교정책이 모두 제국주의인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동적인 과정과 동일시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제국을 유지, 방어 그리고 안정시키려는 모든 노력과 동일시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정적이고 보수적 성격의 국제적 정책에다 이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 제국주의란 현상유지정책과 대조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우 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 개념은 영국에서 나온 것으로,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이끄는 보수주의자들이 1874년의 선거 유세 도중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이후 조지프 체임벌린, 1836-1914과 처칠이 발전시킨 이 영국 제국주의라는 개념은 애초에 보수주의자가 자유주의자의 이른바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었다.
-181-182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한 개인적 이득이나 경제 문제의 해결은 나중에야 생각나는 유쾌한 궁리요. 신나는 부산물이지 제국주의 정책을 불러일으키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역사적 사례를 자세히 조사해보면 대부분 정치가와 자본가 사이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관계가 성립한다. 제국주의 정책은 보통 이들 정책을 지지해주도록 자본가를 소집한 정부가 제창한다. 조지프 슘페터 교수의 말을 빌려보자면, "자본가가 국제정치를 지배한다는 얘기는 신문에나 실리는, 사실과는 어이없게 딴판인 동화 같은 얘기일 뿐이다". 몇몇 개인 자본가를 예외로 치면,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전 쟁을 부추기기는커녕 제국주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예도 드물었다.
-192


외교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또 다른 기본적인 실수는 여태까지의 논의와 정반대되는 상황이다. 현상유지정책을 제국주의 정책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국지적 제국주의에 대해 세계적 제국주의에 알맞은 대응정책으로 응수할 경우 오히려 피하려던 위험을 자초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221, 230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행보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모겐소의 지적대로 ‘아직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국주의로 가는’ 경우에 중국이 해당될 수도 있겠고.

권위정책의 궁극적 목표로는 국위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과 현상유지 정책이나 제국주의 정책의 보조 수단으로 국위를 추구하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보통 후자의 경우가 더 흔하다.
무모한 이기주의자만이 국위의 증가 그 자체를 위해 권위정책을 추구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근래 빌헬름 2세와 무솔리니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새로이 획득한 국내적 권력에 도취되어 그들은 국제정치를 자국을 추켜세우고 다른 국가를 모욕함으로써 자기의 개인적 우월감을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로 생각했다.
한 사람이 지배하는 국가, 즉 절대군주국이나 독재 국가는 지배자의 개인적 영광과 그 국가의 정치적 이익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동일시는 외교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에 중요한 결함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국가 이익과 동원 가능 한 국가적 능력을 무시한 채 국위 자체만을 위한 권위정책을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965년에서 1972년 사이 미국의 대인도차이나 정책이 바로 이런 시각에서 파악될 수 있다.
-246-247


베트남전을 권위만 찾다가 실패한 케이스로 본 것은 재미있다. 맥나마라는 “진짜로 도미노를 걱정했다”고 했었는데 ㅎㅎ

패배한 전쟁으로 인한 특정 현상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복할 수 있는 '힘의 공백 때문에 제국주의 정책이 추진될 때에는 부당한 실정법에 대항하고 공정한 자연법을 요구하는 새로운 도덕적 이데올 로기가 생겨나 그 정복을 불가피한 임무라고 정당화하게 된다.
… 그러나 제국주의를 숨기고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언제나 '반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다. 1914년과 1939년에 양쪽 진영 은 서로가 상대방의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271-272


이거 완전 러시아네.

한국 얘기도 몇 번 나옴.

혜택과 정책 면에서 강한 동맹국이 허약한 동맹국에 비해 유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소국이 강대국과 동맹을 가급적 체결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한미관계가 바로 그런 예다.
-445

국제연합 회원국 전체의 군사력에 비해서는 작은 일부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런 원조조차도 대규모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기 전에 북한의 침략을 물리치기에는 충분했다. 중국의 개입이 한국 전쟁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중국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이 전쟁은 거의 비슷한 두 동맹 세력이 대치하는 전통적인 전쟁과도 같은 성격을 띠게 되 었다. 강력한 세력이 침략자 쪽에 가담한 순간부터 그 막강한 침략군에 상응하는 집단안전보장의 노력만이, 다시 말해 강대국에 대한 총력전만이 침략군을 무찌를 수가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현상유지의 도구인 집단안전보장은 만일 침략국이 강대국일 경우에는 전면전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한국 전쟁은 집단안전보장의 이런 모순을 완전히 노출시키지는 않았다. 전쟁에 참가한 강대국들의 이익이 이 전쟁을 한반도 안으로만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2/224


뒤에 몇몇 논문들이 붙어 있다. 모겐소는 이미 1980년 사망했고 뒤에 제자들이 개정판을 몇번 냈는데, 한국어판의 원서는 2006년판 즉 7차 개정판이다. 개정판 나온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라크 전 이후의 상황을 해석하는 글도 붙여놨다. 그런데 그조차도 실은 근 20년 전이라는 말이지.

고전 현실주의자들은 도덕적 관념들이 국제정치적 관행의 필수적이면서도 필요한 부분이며, 이상향적 전망이 없고 도덕성을 결여한 정치적 현 실주의는 공허하고 지향점이 없다는 점을 아주 명백히 주장했다. … 왈츠의 권력 구조 이론은 도덕성에 대한 관점이 없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논의가 없는 도덕 구조 이론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정적인 모습이 되고 만다.
-2/530 새뮤얼 바, ‘현실주의적 구성주의’
투키디데스의 저서에서 현실주의는 형이상학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어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을 가지고 정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전통을 수립했다. 정치학에 대한 이런 이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대한 실제적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을 낳게 되었고, 현실주의 프로그램은 정치적 결과를 의도대로 이루어내는 기술을 실질적으로 일반화하려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최종 단계에 이르러 현실주의 프로 그램은 단순한 기술적 통제를 넘어 종국에 가서는 모젠소의 저서에서 나타나듯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경험적인 지식을 생산해내는 형태로 욕망을 구현하는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마키아벨리, 투키디데스, 모겐소는 모두 질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갈등과 분쟁의 실체를 지배의 불가피성이라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서도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 학자는 마키아벨리가 유일하다. '국가’라고 일컬어지 는 질서 형성의 실체를 만들어내고자 개인들이 어떤 절차를 거치는 지,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국가들이 그 이후 국제정치 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는 마키아벨리뿐인 것이다.
-애슐리 텔리스 ‘모겐소:  권력 투쟁으로서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 다시 읽고 있는데, 눈여겨 봐야겠다. 투키디데스도 읽어야 하려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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