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32

[구정은의 '현실지구']중국 대체한다고? 인도의 힘겨운 '반도체 드림'

폭스콘 때문에 인도가 시끌벅적했다. 발단은 대만 반도체칩 제조회사 폭스콘이 인도의 베단타와 조인트벤처 사업을 하기로 했다가 “안 하겠다”며 지난 10일 뒤집어엎은 것이다. ‘아이폰 만드는 회사’로 유명한 대만의 폭스콘은 지난해 인도에 칩을 생산하는 합작 공장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업규모가 195억달러에 이르는 프로젝트였다. 물 건너간 이유는 베단타 측과 협상이 원활치 못해서였다고 한다. 로이터통신은 합작회사의 기술파트너로 유럽의 칩 제조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확정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폭스콘이 베단타의 재정상태를 못미더워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베단타는 원래 전자제품이나 정보기술(IT)과는 관련 없는 광업회사다. 인도의 고아, 카르나타카, 라자스탄, 오디샤 등에..

[구정은의 '현실지구'] 산불 걱정 유럽, "소방 비행기가 필요해"

“항공기 편대를 2배로 확대한다.” “스웨덴 4대, 크로아티아·키프로스·체코·프랑스·독일 2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말 발표한 내용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한 안보 계획이 아니다. 여름마다 점점 거세지며 유럽을 휩쓰는 산불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항공 소방편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소방용 경비행기 4대, 스페인은 중형 스쿠퍼(소방항공기) 2대, 포르투갈은 경비행기 2대, 체코는 헬리콥터 2대 등을 내놓기로 했다. 산불이 잦은 그리스는 이웃들 도움을 많이 받는 만큼 비상시 지원에도 열심이다. 중형 스쿠퍼 2대, 경비행기 2대, 헬리콥터 1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산불은 최근 몇 년 새 EU의 ‘공동안보’ 과제로 부상했다. 2021년 남유럽을 비롯해 지중해 주변 ..

[구정은의 '현실지구'] 사나운 하마에겐 사정이 있다

이달 중순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하마가 배를 뒤집어 강을 건너던 사람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난 곳은 말라위 호수에서 발원해 동남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하천인 잠베지강으로 합류하는 슈레이 강. 사방이 땅으로 에워싸인 내륙국가 말라위에서는 가장 큰 물길이지만 수상교통 인프라는 형편없다고 한다. 말라위 남쪽 하천도시 은산예 부근에서 배가 전복됐고 14명은 어찌어찌 헤엄쳐 목숨을 구했지만 나머지는 숨졌다. 한국보다 약간 큰 면적(12만㎢)에 인구는 2000만명 남짓인 말라위는 ‘니아살랜드’라는 이름의 왕국이었는데 영국의 ‘보호령’으로 사실상 지배를 받았다. 오늘날 짐바브웨가 된 지역과 합쳐져 잠시 독립도 아니고 점령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가 1964년 말라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1970..

[구정은의 '현실지구'] 독재와 학살, 수단 충돌과 다르푸르의 그림자

아프리카 북동부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수단에 다르푸르라는 지역이 있다. 사하라 사막이 커지고 목초지가 줄어들자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아프리카계 농경민들과 충돌했고, 중앙정부의 묵인과 방조 혹은 지원 속에 무장집단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쫓아냈다. 2003년부터 10년 넘게 세계의 ‘인도적 재앙’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분쟁이었던 ‘다르푸르 사태’다. 수단은 면적이 190만km2에 이르는 큰 나라다. 다르푸르만 해도 면적이 50만km2, 한국의 5배다. 그런데 수도 하르툼의 중앙정부는 다르푸르를 늘 무시하고 소외시켜왔다. 그러던 터에 사하라 주변 건조지대인 사헬의 가뭄이 심해졌고 기근이 일어났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다르푸르 서부 아랍계 주민들은 1980년대부터 잔자위드라는 ..

[구정은의 '현실지구'] 마약, 납치, 성폭행…아이티의 그 많은 총은 어디서 왔을까

재난이 ‘만성화’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그곳을 떠난다. 특히나 200개 가까운 나라 가운데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도 적고 가난한데다 이렇다할 자원조차 없으면 더욱 그렇다. 중미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 섬 반쪽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티. 전쟁통도 아닌데 폭력 때문에 피란민이 생기고 농부들이 밭을 버릴 지경이 된 아이티의 사정이 딱하다며 유엔이 연일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큰발톱단(Baz Gran Grif)’ 등등의 갱조직이 설쳐대면서 올들어 석달여 동안 530명 넘는 이들이 숨졌다. 갱 조직들이 총을 쏘아대는 바람에 유탄을 맞고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피살된 뒤 아이티의 행정기능은 마비됐다. 이달 초 유엔마약범..

[구정은의 '현실지구'] '작은 우크라이나'와 브라질의 난민 정책

프루덴토폴리스는 브라질 남부 파라나 주에 있는 도시다. 면적 2308km², 서울 4배 크기의 땅에 5만2000명이 산다. 오스네이 스타들러 시장의 소셜미디어에 들어가보니 숲속에 흩어진 집들을 잇는 도로를 까는 모습, 수도관을 설치하는 사진들과 함께 색색으로 꾸며진 부활절 달걀이 올라와 있다. 동방기독교라고도 불리는 ‘정교’의 부활절이 지난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교하게 장식된, ‘파이산키’라 부르는 우크라이나식 부활절 달걀이 눈길을 끈다. 주민 75%가 우크라이나계인 이 도시의 가게 간판들에는 포르투갈어와 함께 우크라이나어가 적혀 있다. 브라질 우크라이나계 매체 ‘라디오 스보보다’에 따르면 2021년에는 시 의회가 만장일치로 우크라이나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했다. 지난해 이맘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

[구정은의 '현실지구'] 세계 경제는 러시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의 4층집. 빨간 발코니와 빨간 간판에 “인도 최대 경제 마하라슈트라” “웰컴 투 마하라슈트라”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에 맞춰 인도 마하라슈트라주가 매입한 건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집의 이름은 ‘러시아 하우스’였다. 러시아의 포럼 참석자들이 숙박을 하기도 하고, 참석자들을 불러모아 경제발전을 선전하고 투자를 받고 거래를 트는 데에 쓰던 공간이었다. 경제무역장관을 지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막심 오레슈킨, 푸틴 측근 겐나디 팀첸코가 지분을 가진 화학회사 시부르 등이 이 건물을 사서 2018년부터 운영해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다보스에 대표단을 못 보내게 된 올해 이 ..

[구정은의 '현실지구']석유에서 햇빛으로, 걸프의 변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한 2022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며 한 해를 보낸다. 전쟁 속에서 세계는 안녕했을까. 남의 나라 전쟁보다는 코로나 터널이 끝나가는 것에 한 숨 돌리며 안심한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비애에 시민들은 공감과 연대를 보냈으나 국가들 간에는 이 전쟁을 놓고 힘겨루기 혹은 편가르기가 벌어졌다. 그래도 에너지 대란이나 식량대란은 오지 않았다. 유럽은 난방비가 올라가 추운 겨울을 맞았다지만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대신에 ‘탈탄소, 탈러시아’로 더 빨리 더 굳세게 가려는 듯하다. 에너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의 핵심 관심사가 되고 지정학적 변수가 된다. 이를테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밀착 같은 것..

[구정은의 '현실지구'] ‘우주에서 보이는 산호초’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계곡. 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박트리아라는 고대 왕국이 있었던 이곳에는 간다라 불교미술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유적과 성소들이 있었다. 2001년 3월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탈레반 정권은 거대한 불상들을 파괴했다. 인류 전체의 비극이었다. 2003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 유적지를 ‘위험에 놓인 유산’ 목록에 올렸다. 이라크의 사마라. 바그다드 북쪽 130km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지만 한때는 거대한 압바스 제국의 수도였다. 아름다운 사원과 ‘바벨탑’ 이미지의 원형이 된 거대한 미나레트(이슬람 사원의 탑)가 있는데 미군과 수니파 반군의 충돌 와중에 역시 파괴를 겪었다. 유네스코는 사마라도 2007년 ‘위험 유산’에 집어넣었다. 시리아의 팔미라. 고대 셈족의 사원터에 기원 전후..

[구정은의 '현실지구'] "그래도 중국" 베이징에 간 베트남 총비서와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다. 예상됐던 일이지만 경제가 커진 것과 거꾸로 가는 중국의 과거회귀는 놀라울 정도다. 민주화의 전망이 사라져가는 중국을 국제사회가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두 나라 정상이 베이징의 문을 두드렸다. 한 사람은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이면서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라온 베트남의 실권자이고, 또 한 사람은 독일 총리다. 오랜 악연을 뒤로 하고 최고의 환대를 받은 베트남 정상의 모습과 독일 총리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유럽의 논란은 ‘시진핑의 중국’을 마주한 세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응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베이징에 도착하자 중국은 21발의 예포로 환영했다. 양국 정상이 마스크 없이 베이징 인민대회당 환영식에서 만나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