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 시집이 한 권 있었다. 일월서각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제목에 '제3세계'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집은 지금까지도 '왜 못 챙겨놨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 중의 하나다. 그 책에 나왔던 글들, 아주 신랄하면서도 처절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을 그 뒤에는 보지 못했다. 파블로 네루다니, 옥타비오 빠스니 하는 이름들을 알게 된 것도 그 책을 통해서였다. 중남미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시인들의 작품도 꽤 많이 들어있었는데 모두 내게는 문화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의 가난을 촌철살인의 문구로 찔러대는 글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시아라 하면 타고르밖에 몰랐던(그것도, '동방의 등불') 나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이나 유럽 아닌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