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228

빚받기 운동을 펼쳐 나라를 살리자?

어제 한 선배와, 아지님과 맥주를 한잔 했습니다. 이라크 갔다온 얘기를 하던 중에 빚 얘기가 나왔습니다. 개요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이라크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돈이 13억달러 정도 됩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우리한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 아닐까 싶은데요. 이라크는 1970년대 오일붐 때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을 많이 불러들였죠. 여행기에서 썼던 훌륭한 인프라, 예술적인 대형 건물들이 다 외국 기업들에 맡겨 지은 것들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돈 못받고 불량채권만 안게 된 겁니다. 러시아가 약 90억달러, 프랑스가 약 50억달러의 이라크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또 때릴..

평상심

돌아오자마자 축구 얘기. 바그다드로 떠나면서 맘에 걸렸던 것이 애기, 그리고 축구였다. 이 둘을 못 본다는 것이 영 아쉬웠다-물론 이 둘에 등가의 가치를 매겨놓고 산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용케도 돌아오기전 암만의 호텔에서 아랍어 방송을 틀어놓고 바르셀로나-바야돌리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뭐랄까, 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다소간의 회의가 들었더랬다. 암만의 호텔에 앉아 축구를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과연 나의 실재인가- 그 경기는, 내게 서울을 떠올리게 만든 하나의 코드였던 셈이다.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지네딘 지단의 커다란 초상화(거의 사담의 초상화만했던)를 보면서,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정상세계의 낯익은 사물을 본듯한 반가움을 느꼈던 기억도 덧붙일 수 있겠다. 어제 공항에서 집으로와 짐을 팽개쳐놓고 회사..

[이라크]시아파 사원 방문기 (2)

바로 그 후세인의 유골을 안장한 모스크(사진)에 갔더니 이란에서 온 순례객 여성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기도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란에서 왔다, 저들은 파키스탄인들이다라고 구분해 설명해주는 유씨프에게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국적을 아느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당신들은 나에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묻지만 우리끼리는 서로 구분한다"고 말해줬다. 유씨프의 설명으로는 흰 옷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은 파키스탄인들이고, 이라크 사람들과 비슷한 옷차림에 단체로 돌아다니며 무슨 책자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이들은 이란인들이란다. 하지를 다녀왔냐고 유씨프에게 물어봤다.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한번은 해야 하는 의무사항인데 이라크에서는 45세가 넘어야만 하지를 할 ..

[이라크]시아파 사원 방문기 (1)

원래 모스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라크에 있는 동안 여러곳-정확히 말하면 7군데의 모스크를 돌아다녔다. 앞서 쓴 바 있는 바그다드의 카디미야 황금돔사원과 바라싸의 시아파 사원, 명성 높은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의 부인 주베이다가 잠들어 있는 셰흐마루프 모스크에 들렀고 또 사마라의 칼리프 사원에도 갔었다. 바그다드의 알 카디미야 황금돔 사원 그러나 역시 가장 아름다웠던 건 시아파 지역인 케르발라, 나자프의 사원들이었다. 사실 말은 이라고 했지만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다수이고 순니파가 더 적다. 그런데 후세인 정권이 굳이 따지자면 순니파이기 때문에 시아파 지역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남부에는 특히 시아파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남부 중심도시 디와니야의 시아파들은 1991년 걸프전 때 후세인 정..

[이라크]바그다드 카페

바그다드 교외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몬수르의 알사아 레스토랑에 들렀다. vm라이드 치킨과 햄버거 같은 스낵을 함께 파는 간이 레스토랑 겸 카페인데 세련되고 서구적인 분위기여서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몬수르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인데, 알 사아의 카페 안에서도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여러쌍 보였다. 어떤 이가 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우리식과는 전혀 다르다. 차(茶)도 역시 마시는 방법이 다르다. 투르키쉬(Turkish coffee)라고 부르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탄 것인데 독특한 향내가 나고, 가루같은 것이 녹지 않고 씹힌다. 특히 작고 좁은 커피잔의 바닥에는 그 가루가 진흙처럼 가라앉아 있어서, 잘 모르고 끝..

인터뷰/ KOTRA 바그다드 무역관 정종래 관장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은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며 부국의 기반을 만들었다. '중동'이라는 말을 들을 때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석유와 함께 흑백사진 속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땀에 젖은 얼굴일 것이다. 70년대 '오일붐'을 거쳐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90년대 걸프전으로 이어지면서 중동의 정세는 계속 변화해갔고 한국의 경제력도 비교될 수 없게 커졌지만, 여전히 중동은 우리에게는 석유라는 천혜의 축복을 받은 부러운 땅이다. 언제고 다시 다가올 엄청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라크에서 국내 기업들을 위해 홀로 '수출전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바그다드무역관의 정종래(鄭宗來·40) 관장. 티그리..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더니.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이라크 경제가 딱 그렇다. 바그다드 중심의 사둔 거리에는 상점들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바그다드의 시장들은 보통 오후 5시면 문을 닫지만 전자제품과 의류, 시계 따위를 파는 사둔의 상점가는 예외였다. 가게에서 파는 상품들은 볼품 없었고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고화질TV와 LCD 전화기, 보석류 같은 '사치품'들도 종종 눈에 띄었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어 보였다. 잇단 전쟁과 오랜 금수조치 속에서도 이 정도의 경제를 유지하는 바탕은 물론 석유다. 한때 식량과 약품이 모자라 아이들이 죽어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96년부터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계획'이 실시된 뒤로 해마다 1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원유를 수출하면서 '굶어죽는다'는 ..

[이라크]산티아고와 함께 한 여행

오늘이 몇일인지, 지금 서울은 몇일인지 선뜻 계산이 되지 않는다. 서울을 떠나온지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새 날짜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엿새전 나는 서울에 있었고, 오후 4시에 요르단의 암만에서 온 이메일을 받았었다. 이라크에 오려면 빨리 암만으로 오라는. 이라크 정부 초청으로 대선 참관인단을 바그다드에 불러들이는데 거기 한숟가락 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부랴부랴 출장 신고를 했고, 겨우 2시간만에 정말 ‘번개불에 콩궈먹듯’ 결재를 받고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음날 나는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을 거쳐 19시간 동안 비행을 했고, 10일 새벽에 어느새 나의 존재는 암만으로 이전돼 있었다. 이번 여행(업무가 아닌 나의 개인적인 감상의 측면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로 한다)을 떠나기 전 나는..

말 나온 김에, 사담의 가족 이야기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가족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커다란 금기인 듯했다.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국가의 권력을 나눠 갖고 아버지의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들 두 아들의 관계나 후세인의 가족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철저하게 터부시되고 있었다. 특히 후세인의 '버림받은' 부인 사지다의 이야기를 꺼내면 화제를 돌리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후세인은 8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첫째 부인은 1958년 후세인과 결혼한 사지다 타르파다. 생후 9개월에 고아가 된 후세인은 외삼촌인 카이랄르 타르파 슬하에서 자랐는데, 카이랄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반영(反英) 투쟁을 벌였던 인물로 후세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지다는 바로 카이랄르의 딸로, 학교 교사 출신이다. 후세인..

이라크 국민투표 참관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7년 임기 연장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15일 오전 11시. 바그다드 시내 알 자마에 설치된 투표소에서는 공무원들의 독려를 받은 시민들의 투표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투표함에 용지를 집어넣었고, 옆에서는 각국에서 온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투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당독재식 투표'로 진행된 이날 투표장의 모습은 후세인 정권이 주장해온 '이라크 민주주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투표장 밖에서는 '나암 나암 사담 후세인(후세인에게 찬성표를)', '사담은 우리의 유일한 선택' 따위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라디오와 TV에서는 하루종일 후세인 찬가를 틀고 있었다. 전통 머리덮개 '아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