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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와 만나다

딸기21 2009. 8. 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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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이데아(이상향)와 같습니다. 어떤 나라도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이란 정부의 인권탄압에 맞서온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 여사(62.)가 아시아기자협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란의 민주주의 탄압 실태와 대선 소요에 대해 알리고 국제적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나선 에바디를 9일 저녁 서울 충정로의 숙소에서 만났다. 이란 보안당국의 탄압과 살해 위협 속에서도 힘겨운 투쟁을 벌여온 에바디는 “이란이 성별·종교·인종·빈부 차별이 없는 나라, 검열 없는 나라,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이슬람권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에바디는 “현재의 이란 이슬람 정권은 종교를 정권 유지에 이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지난 6월 12일 이란 대선을 앞두고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정작 투표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대선 전날 스페인으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번도 귀국하지 않고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프랑스 파리 등을 돌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부의 언론탄압과 대선 이후 소요사태에 대해 알리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의 한국 방문은 2006년 광주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 참석에 이어 두번째다. 

그는 “(개혁파) 동료들은 내가 테헤란에 머물기보다 세계에 우리의 현실을 알려주길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바디 뿐 아니라 유명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이란의 개혁파 인사들은 당국의 탄압을 피해 외국을 돌며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대선 전후 상황에 대해 그는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는 아마디네자드가 승리했다고 발표했다”며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고 못박았다. 앞서 이란 선거결과를 검토한 혁명수호위원회는 “일부 부정행위가 있었으나 선거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에바디는 개혁파냐, 보수파냐 하는 것보다 정부의 부정직한 태도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에바디는
“이란의 개혁파와 보수파 정권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큰 차이는 없다”면서 개혁파에 대한 ‘환상’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에바디는 “이란의 인권 상황이 좋았던 적은 한번도 없지만, 특히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보수파 정권이 들어선 뒤 언론 검열과 탄압,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공격이 잦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법정에서도 정당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17세 이하 청소년 구금자가 최근 몇년 새 크게 늘어난 것이 이란의 인권 악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에바디 자신에 대한 탄압도 가중됐다. 그가 운영하는 테헤란의 인권단체 사무실 2곳은 지난해 12월 비밀경찰의 급습에 아수라장이 됐었다. 에바디는 “그들(비밀경찰)은 사무실의 간판을 부수고 우리 집 벽에 스프레이로 비방 낙서까지 했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들은 보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대선 뒤 에바디가 해외를 돌며 정부를 비판하자 보안당국은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죽이겠다’는 위협을 남겼다고 했다.

1947년 이란 북서부 하마단에서 태어난 에바디는 테헤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75~79년 파흘라비(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최초의 여성 법관 중 한 명으로 근무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파흘라비 정권이 백색테러를 일삼으며 민주주의를 탄압하자 에바디는 법관 신분임에도 이슬람혁명 세력 편에 서 샤(국왕) 정권에 맞섰다. 하지만 샤를 몰아내고 집권한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신정은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칼날을 돌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법관직을 빼앗기고 ‘혁명의 배반’을 체험한 에바디는 80년대 인권변호사가 되어 핍박받는 여성들과 대학생 운동권들을 위한 변론 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호메이니 정권 시절 비밀경찰의 암살타깃이었던 에바디는 시대가 바뀐 지금도 살해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서울에 도착한 에바디는 9일 천주교 서울교구청을 방문해 정진석 추기경을 접견했으며 서울 경동교회와 봉은사 등의 종교시설을 잇달아 방문했다. 10일에는 국회를 방문하고 한국여성의전화 등에서 강연을 한다. 12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관하는 만해대상을 수상하고 다음날 한국을 떠난다.

(어렵사리 인터뷰 시간을 잡긴 했지만 섭외가 늦어진데다 에바디 여사의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서, 만남은 20분여 밖에 되지 못했다. 게다가 에바디 여사는 시차 적응도 못한 채 이날 새벽 4시30분부터 일어나 움직여야 했고, 다음날도 새벽부터 조찬모임이 잡혀 있어서 몹시 피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가 편안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속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던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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