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석유 생산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정정불안과 종파갈등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산유시설 복구가 늦어진데다 거대 에너지자본들이 투자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갖고 있는 이라크는 누가 뭐래도 `석유대국'이지만, 미국의 예상과 달리 산유량은 사담 후세인 정권시절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산유시설 복구가 안 된다
지난달 이라크의 1일 석유생산량은 200만 배럴에 그쳤다고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2일 보도했다. 전쟁 직후 미국 정부와 석유전문가들은 "전후 2년이 지나면 하루 400만배럴의 석유가 생산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과거 후세인 시절 유엔의 제제 속에서도 250만배럴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그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국 불안으로 산유시설 복구가 지연됐기 때문. 미국은 2년간 송유관 복구에 20억달러(약 2조원)를 쏟아 부었지만 시설 복구율은 30%도 안 된다. 최대 유전이 있는 키르쿠크 일대에서는 저항세력의 송유관 파괴와 사보타주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이 지역을 장악한 쿠르드족은 자치지역 내 유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1980년대 이라크 석유장관 지낸 이삼 알 찰라비는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석유전문가회의에서 "이라크 내에서 석유가 점점 `정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족-종파 간 갈등 속에서 석유가 각 세력의 국내정치용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눈치 보는 에너지자본
전쟁 전에도 다국적 에너지회사들이 앞 다퉈 이라크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눈치 보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저항세력의 공격이 수그러들더라도 국가체제 정비가 끝나지 않으면 서방 자본이 쉽게 이라크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당장 이라크는 아직 헌법도 안 만들어진 상태다. 서방 에너지 기업들은 이라크의 권위 있는 정부와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하지, 단순고용 형태로 채굴이나 수송에 참여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특히 영국석유와 셸 등 유럽계 에너지회사들은 최근 재생가능에너지 쪽으로 개발 투자의 비중을 높이면서 유전개발에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계 엑손모빌과 셰브론텍사코도 기술적인 부분에서 좀더 `관망'이 필요하다는 입장.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 공격 전 "석유를 팔아 전후재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었다. 공언과 달리 외부투자가 없어 시설 복구가 안 되고, 다시 투자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 1000만배럴'은 꿈인가
이라크는 확인된 석유매장량이 1120~1400억 배럴로 전 세계 매장량의 10.7%를 차지한다. 탐사가 진행되면 2,200억 배럴까지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유 채굴비용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현재 확인된 80개 유전 중 한번이라도 채굴 들어간 것은 17개에 불과하다. 그만큼 `미개척지'라는 얘기다.
이라크 석유는 세계 석유시장 판도를 바꿀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현재 석유시장은 하루 생산량 100만 배럴 증감에도 출렁이는 형편인데 키르쿠크 유전이 복구되면 1년 안에 그곳에서만 하루 80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석유수입국들은 이라크 석유에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 내 낙관론자들은 10~15년 뒤에는 이라크에서 하루 최대 1000만 배럴이 생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라크 산유량을 `사우디 수준'으로 끌어올려 세계 석유시장의 과도한 사우디 의존도를 낮추고, 좀더 `자유롭게' 에너지정책을 구사하겠다(‘그놈의 기름 땜에 사우디 왕족들 비위까지 맞춰주는 짓은 안 하겠다’)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라크 정국이 안정돼도 유정에서 기름을 퍼내기까지는 수많은 투자・계약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낙관론에 일침을 놓는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석유전문가 허먼 프랜슨은 NYT 인터뷰에서 "2010년까지 1일 400만 배럴만 뽑아내도 큰 성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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