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승자의 도시, 그늘진 도시 카이로

딸기21 2004. 8. 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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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Cairo)는 이집트의 수도다. 이 도시에 대해서 ‘이집트의 수도’라는 말 외에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먼지 가득한, 역사의 더께가 덕지덕지 앉아있고 부패와 빈곤과 어수선함이 가득한 도시.

현지어로는 ‘알 까히라’(Al-Qahirah)라 부른다. 나일강 델타 끝부분, 지중해를 바라본 곳에 위치해 있다. 면적 83㎢, 인구 약 1500만명. 1922년 이집트가 독립했을 때만 해도 인구가 60만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격히 늘었고, 지금도 팽창이 계속되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 25㎜의 사막기후로, 연간 한두차례 적은 양의 비가 내리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나일강 때문이다. 7월 평균기온 27.7℃, 1월 평균기온은 12.7℃다.
사막기후라고는 하지만 위도가 높은 편이고 건조하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이나 이집트 남부 아스완 같은 지역에 비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더위는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쾌적한 편이어서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정도다.

알렉산드로스에서 무바라크까지

고대 이집트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됐고,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이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됐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마저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로마제국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 멸망한 뒤 이집트는 유럽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교가 등장하고 아랍인들의 정복전이 벌어지면서 642년 아랍에 넘어갔다. 당시 아랍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점령한 아무르 이븐 알 아스는 나일강 하류(나일강은 북쪽이 하류다) 바다 가까운 곳,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인접한 푸스타트에 군영을 설치, 통치 거점으로 삼았다.
 
870년 바그다드(오늘날의 이라크) 칼리프와 다마스쿠스(오늘날의 시리아) 칼리프들이 서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아흐마드 이븐 투른은 반(半)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고 푸스타트 북동쪽에 신도시 카타이를 세웠다.
그러나 카타이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고, 100년 뒤인 969년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무이즈가 다시 이집트를 정복해 카타이 바로 옆에 새 도시를 만들었다. 무이즈는 이 도시에 ‘카히라(승리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알 카히라, 오늘날 카이로의 출발이 됐다.



당시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는 여러 지구(하라)로 구획됐고, 하라에는 모스크와 시장(스쿠), 공중목욕장(하맘) 같은 생활공간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기독교세력에게서 수복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후 앗딘(서방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져 있다)은 이집트의 군주이던 시절(12세기) 카히라로 도시를 확대했고, 이후 카이로는 바그다드를 대신해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됐다.
1517년 오스만투르크의 셀림 1세의 정복으로 이집트는 속주가 됐고 카이로도 영광의 빛을 잃었지만 주민 수는 계속 늘었다. 나폴레옹의 원정 같은 수차례 전쟁을 겪고 19세기 무하마드 알리 왕조 아래에서 근대도시 카이로가 정비돼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알리 왕조의 올드 카이로를 비롯해 피라미드가 있는 기제, 헬리오폴리스 등을 모두 포함한 메갈로폴리스다.

현대의 카이로

카이로는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지에 있어 오래전부터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기능해왔다. 이집트는 물론, 북아프리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지금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밀려 중동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지만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해온 이집트의 수도로서 카이로가 가진 위상은 무시 못한다.

그러나 실제 도시는 전형적인 개도국의 대도시로서, 20~30년씩 된 낡은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오염돼 있다. 수천년을 버텨온 파라오 람세스의 거석상이 환경오염 때문에 훼손될 지경이 되어 중앙역사인 람세스2세역 앞 광장에서 2005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정도다.
1960~70년대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에 아직까지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탓에 성장하지 않아 도시 외관은 매우 낡고 허름하다. 주택난과 교통체증, 인프라 부족, 학교 부족 등 도시생활기반이 열악하고 때로는 식료품 같은 생필품 품귀현상도 일어난다. 1990년대 이래 몇차례 테러 공격을 받은 바 있고, 2005년부터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거센 시위가 때때로 일어나는 등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도심은 나일 델타(삼각주)가 두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 바로 상류에 있다. 가지가 뻗듯 갈라진 나일강이 여러갈래로 카이로를 흐르는데, 다운타운은 주로 나일강 오른쪽 연안과 중간의 섬인 게지라섬·로다섬, 강 왼쪽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지와 서구식 신시가지로 나뉜다. 노벨상 수상 작가 나깁 마흐푸즈의 소설들의 배경이 됐던 구시가지는 남쪽 ‘올드 카이로’에서 동족 모카탐 구릉까지 이어진 넓은 땅에 펼쳐져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올드 카이로는 이집트 최후의 왕조인 무하마드 알리 파샤의 알리 왕조(1805∼1952) 시절 건설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총독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알리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독자적으로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 재건에 힘썼으며 근대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집트는 1882년 영국 군사점령에 들어갔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알리왕조는 1952년 이집트혁명으로 붕괴됐다.
알리가 세운 올드카이로의 고풍스런 시타델(궁전)의 성곽과 거대한 알리 모스크는 지금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명물이 되어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매표소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올드카이로를 제외한 그 주변 구시가지는 많이 낙후돼 지금은 슬럼가가 되어 있다. 이집트는 물론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대학과 알 아즈하르 모스크도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신시가지는 운하를 매립해 만든 포트사이드에서 나일강 서쪽을 따라 펼쳐진다. 시내 중심은 타흐리르(해방) 거리와 람세스 거리. 정부 청사와 시청, 중앙우체국, 호텔 등이 몰려 있다.
투탕카문의 황금마스크와 람세스2세의 미이라 등 이집트가 자랑하는 보물들이 간직돼 있는 카이로이집트박물관과 카이로대학, 아메리카대 같은 교육기관도 이 일대에 위치해 있다. 가든시티와 가말릭, 마아디, 두키, 헬리오폴리스 등 신시가지에서 공항으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있다. 반면 람세스2세역 북쪽 슈브라에는 공장이 많고 노동자주택지가 형성돼 있다.

카이로 국제공항은 시 외곽 사막에 위치해 있다. 카이로 남서쪽에는 고대 근동 7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유명한 피라미드들과 스핑크스가 있는 기제가 있다. 기제에는 쿠프, 멘카우레, 카프레 등 고대 파라오의 3대 피라미드가 있으며 그보다 더 시기가 앞선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나 후니 파라오의 굴절식 피라미드를 보려면 사카라(고대의 멤피스) 같은 곳으로 더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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